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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녹)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작성자Thomas|작성시간26.06.11|조회수37 목록 댓글 0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 백성이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8,20-39
그 무렵 아합 임금은 20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바알의 예언자들을 카르멜산에 모이게 하였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시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
23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십시오.
그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골라 토막을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말게 하십시오.
나도 다른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24 여러분은 여러분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겠습니다.
그때에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자 백성이 모두 “그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
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26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27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28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29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30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이리 다가오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백성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31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32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다.
33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34 그러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하고 일렀다.
그런 다음에 그는 “두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35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36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자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37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38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
39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아합 임금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바알의 예언자들을 카르멜산에 모이게 합니다.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합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1열왕 18,21)

백성 앞에 하느님의 예언자 엘리야는 혼자이고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 오십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바알 신과 야훼신의 경합이 벌어집니다. 바알을 섬기는 예언자들은 황소를 골라 제물로 올려놓고는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지만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엘리야가 야곱의 수대로 돌ㄷ을 열두 개 가지고 와서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둘레에는 도랑을 파서 사람들이 네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 번제물과 장작 위에 세 번이나 날라다 붓습니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는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1열왕 18,36-37)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물에 젖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 도랑에 있던 물까지 타 내워버립니다.

백성이 이 광경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습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18,39)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바라다보는 눈빛은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반항아, 선동자 정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안식일을 어기고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예식도 지키지 않는 행동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전통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이런 고정관념과는 달리 주님께서 정반대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이 말씀에 이어 주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나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18절)

여기서 본문에서는 ‘한(헨 ἓν) 자(요타 ἰῶτα) 한(미아 μία) 획도(케라이아 κεραία)’에 대해서 좀 더 보면 희랍어 문자 ‘자(ἰῶτα)’에서 시작하는 그리스 문자 중에서 제일 작은 자, 요타(ἰῶτα)는 그리스 말 중에 가장 짧은 글자인 점처럼 작은 요타 ’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왜 하시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 호렙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주신 법을 오랜 세월을 거치며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유대인들의 관습과 전통에서 법을 해석하다보니 본연의 법 정신이 흐려진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주신 법을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원래 법 정신을 회복시키 시려는 뜻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자주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치유행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노동을 하지 않는 것부터 세부적인 사항들을 정해서 율법을 왜 지켜야 되는지 보다는 자동적으로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조건 법을 지키는 데에 목을 매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주님께서 보시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으십니다.

율법학자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주님께서도 지적하셨지만 그들은 율법을 공부하고 가르치기는 해도 직접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형식적이고도 율법만을 고집하는 그들이다 보니 주님 보시기에 실천 없는 그들은 위선자일 따름이었기에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19절)라고 주님께서 명확하게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철저한 유대인의 교육을 받았던 사도바오로는 놀랍게도 문자에 묶여 있던 과거에서 새롭게 열리는 구원관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코린 3,6)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모세를 통한 과거의 율법도 존중하며 성령에 의해 맡겨지는 직분에 대해서 또한 명쾌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단죄로 이끄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 다면, 의로움으로 이끄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8-9절)

유대인인들 처음부터 율법주의자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잃고 세상 각처로 흩어져 살면서 그들에게 소중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이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말에 ‘마실 길’이라고 표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확이 끝나고 농부들은 노동에서 해방되고 일 때문에 소원해진 관계를 화투다.

음식을 해 먹는다해서 서로들 마실을 다녔지요. 농사철에는 농작물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텅 빈 밭에 마실 길이 나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돌아다니던 길이 임시 지름길이 생긴 것이지요. 그러다가 봄이 되면 없어지고 굳어진 길을 일구어 다시 농작물을 심고 마실 길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실 길은 사람들이 편하고 싶은 심리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율법과 비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때로 율법이 버거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위주로 해석하다보니 나름대로 해석하는 길이 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봄이 되면 마실 길이 없어지는 것처럼 자유롭게 하던 율법해석이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 와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밟으면 밟을수록 굳어지는 것처럼 그들의 해석에 관습이 붙고 전통이 더덕더덕 붙으며 굳을 대로 굳어 버려 고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원래의 하느님 말씀으로 회복시키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통과 관습이 굳을 대로 굳어버린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종교지도자들은 이미 틀이 되어 버린 안식일 법과 손 씻는 예식을 어기는 자로 예수님을 몰아세우며 철저하게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수님께서 인간의 전통으로 굳을 대로 굳은 형식적인 법을 반대하여 법 정신을 새롭게 하시며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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