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다해 연중 제17주일 (루카 11,1-13 )
제1독서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8,20-32
그 무렵 2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혹시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명 때문에 온 성읍을 파멸시키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파멸시키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또다시 그분께 아뢰었다. “혹시 그곳에서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0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1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스무 명을 보아서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2,12-14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의 말씀나눔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루카 11,4)
주님의 자비를 부르는 오늘의 의인
신앙인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기 위해 사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결코 이 세상을 외면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은 온갖 죄악으로 타락한 소돔을 멸망시키시려는 하느님의 분노를 막으려고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용서를 청합니다(창세 18,22-32).
그러나 소돔은 썩을 대로 썩은 죽음의 도시와도 같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하느님께 철저히 등을 돌리고 그분의 자비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열 명의 의인만 있어도 주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의인이라고는 롯과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간절한 청에도 불구하고 소돔은 하늘에서 쏟아진 유황과 불로 멸망합니다(19,24).
주님께서는 분노에 더디시며 재앙을 내리시다가도 후회하시고(요엘 2,13), 극소수의 의인을 보아서라도 용서해주시며(창세 18,32),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는 분”(콜로 2,13)이십니다. 그러나 소돔 사람들은 주님의 그토록 깊고 넓으며 끝이 없는 자비를 외면하고 타락과 부패 때문에 자멸하고 만 것입니다. 롯과 그의 가족의 의로움만으로는 그 타락한 도시는 정화될 수 없었고 창조의 새로움을 회복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실 보이지 않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으려면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또 언제 응답을 주실지 알 수 없을 때도 많지요. 그러나 내 힘과 돈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누리며 사는 것은 얼마나 달콤하고 매력적입니까? 그러나 그런 것들은 영혼을 피폐하게 하는 우상일 뿐입니다.
우리 현실 속에서 자행되는 온갖 부정과 부패, 그리고 타락은 바로 이런 우상들을 섬기려다가 생기는 결과입니다. 권력형 부정부패, 사회 지도층의 타락, 경제 정의의 실종, 인권탄압, 빈부격차와 사회적 차별, 폭력, 인신 매매, 성범죄 등 우리 사회의 어두움은 우상에 사로잡힌 부패한 영혼의 쓰레기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인인 우리는 주님의 한없는 사랑에 응답하기 위하여 자신의 우상을 버리고, 이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실행해야겠습니다.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도 늘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답게 조건없이 우리를 용서해주시는 그분의 자비 안에 머물러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루카 11,4).
무엇보다도 '아빠'이신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사랑의 영을 호흡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내가 누구이며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 누구인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의 영을 지님으로써 주님의 자비를 나누는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고, 그 의로움이 세상의 어둠을 밝힐 것입니다.
오늘 한국사회는 불의와 부정부패, 국가권력에 의한 국민의 주권 무시, 인간 차별과 소외의 심화, 성적 일탈 등 소돔성에 못지 않은 상황이 일상화 하고 있습니다. 소돔 성처럼 오늘 우리의 현실도 주님의 자비를 부를 열 사람의 의인을 그리워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신앙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속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유익이나 안전만을 꾀하는 집단 이기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비를 품고 아브라함처럼 인내로이 다른 이들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헌신하고,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놓음으로써 하느님의 선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외면하지 않고,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고 좋은 성령을 주시라고(11,13) 그분께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며(11,9) 다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순례를 시작할 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