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7일 주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세상의 생명을 위한 빵, 성체성사>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6.08조회수19 목록 댓글 02026년 6월 7일 주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신명 8,2-3.14ㄴ-16ㄱ; 1코린 10,16-17; 요한 6,51-58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몰랐던 양식을 먹게 해주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8,2-3.14ㄴ-16ㄱ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4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15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
16 또 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너희가 먹게 해 주신 분이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0,16-17
형제 여러분,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51-58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세상의 생명을 위한 빵, 성체성사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하느님 말씀은 그리스도교 삶의 중심인 성체성사로 우리를 이끕니다. 모세는 광야의 긴 여정을 회상하며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만나를 먹게 해주셨다.”(신명 8,3)라고 말합니다.
“기억하다”(זָכַר, 자카르)는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행하신 일을 현재의 삶 안에 다시 살아 있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힘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느님의 손에 의지해 살아왔음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풍요 속에 살아가지만 마음은 굶주려 있습니다. 의미에 대한 갈망, 진실한 관계에 대한 갈망, 사랑받고 싶은 갈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성체성사는 인간이 소비와 성공만으로 살 수 없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사도 바오로는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1코린 10,17)라고 말합니다.
“친교”(κοινωνία)란 그리스도의 생명과 형제들의 삶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의 위기는 단지 경제적·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붕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외롭고,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성체성사는 이러한 개인주의를 무너뜨립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사람은 가난한 이들, 이주민, 외로운 노인들,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영성체는 서로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51)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ζωή)은 단순한 육체적 생존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충만한 생명을 뜻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당신 살을 “먹는다”라고 하실 때 사용하신 동사 트로고(τρώγω)는 실제로 씹어 먹는다는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참된 양식으로 내어주십니다.
관계가 피상적이고 가상화된 시대에 성체성사는 하느님께서 멀리서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상처 입은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오시고 우리와 함께 머무르십니다. 그러므로 성체 앞에 무릎 꿇는 공동체는 단지 전례를 잘 거행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자비를 실천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 신비를 누구보다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숨어 계신 그리스도의 겸손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성체성사는 단순한 신심 행위가 아니라 모든 이를 형제로 받아들이게 하는 원천이었습니다.
제대 위의 그리스도의 몸을 흠숭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상처 입은 형제 안에서도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생산성과 효율만을 중시하며 사람을 쉽게 버리는 오늘의 사회 안에서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모든 인간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존엄을 바라보라고 초대합니다.
오늘 우리는 제대 앞으로 나아가며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내 안의 진짜 굶주림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몸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가?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또다른 성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시간을 나누고, 인내로이 들어주며, 가진 것을 함께 나누고, 상처 준 이들과 화해하며, 소비주의 속에서도 절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양육되어 자신 또한 다른 이를 위한 빵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을 필요로 합니다. 성체성사는 미사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합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