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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 OFM 말씀나눔

2026년 6월 8일 (녹) 연중 제10주간 월요일<하느님 나라를 여는 가난>기경호프란치스코 ofm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6.08|조회수21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8일 (녹)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1열왕 17,1-6; 마태 5,1-12

 

제1독서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엘리야>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7,1-6
그 무렵 1 길앗의 티스베에 사는 티스베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2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3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
4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 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
5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다.
6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
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10주 월요일

하느님 나라를 여는 가난

 

오늘 독서에서 엘리야 예언자는 아합 임금 앞에 서서 가뭄을 선포합니다.

엘리야는 “살아 계신 주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생명의 힘을 주시는 주님께 의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과 정치 권력 안에서 안전을 찾으려 했지만, 엘리야는 크릿 시냇가에서 오직 하느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크릿”(כרת, karat)은 “잘라내다”, “분리하다”라는 뜻과 연결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세상의 소음과 권력으로부터 떼어 놓으시며 신뢰를 가르치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깊은 영적 가뭄 속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외로움과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소비와 성공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슬퍼하는 이들, 박해받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십니다.

“행복하다”(μακάριοι)는 말은 순간적인 기분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축복 안에 머무는 참된 충만함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과 고통 자체를 찬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기 힘에만 의지해 살기를 멈출 때 하느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경쟁과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씁니다. 젊은이들은 지쳐 있고, 노인들은 고독 속에 있으며, 많은 가정은 경제적·정서적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결코 멀리 계시지 않으십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 복음의 진리를 깊이 살아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가난을 동경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며 모든 이를 형제로 받아들이려고 자신의 부유함을 버렸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세상을 거부하는 태도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화해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병 환자를 껴안을 수 있었고, 가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인간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것은 재산의 부족이 아니라 소유와 무관심, 두려움에 굳어진 마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거리의 가난한 이들, 지친 노동자들, 우울 속에 갇힌 젊은이들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위험 속에 있습니다. 참행복은 바로 그들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의로움”(δικαιοσύνη)은 하느님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이는 단순히 공정한 제도를 넘어 하느님의 마음에 맞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거짓과 이기심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투명함과 자비, 겸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엘리야가 광야에서 까마귀에게 먹을 것을 받았듯이,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교회를 다시 세웠듯이,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세상이 약하다고 여기는 이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디에서 안전을 찾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다시 침묵을 배우고, 어려운 이들과 더 나누며,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고, 공격적인 말을 줄이며,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덕은 거창한 일보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인내로 들어주고, 용서하며, 덜 소비하고, 불안 속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삶입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힘에 만족하는 이들의 것이 아니라, 엘리야와 성 프란치스코처럼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이들의 것입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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