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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 OFM 말씀나눔

2026년 6월 20일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

작성자Agatha|작성시간26.06.22|조회수51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역대 24,17-25; 마태 6,24-34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24,17-25
17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 유다의 대신들이 와서 임금에게 경배하자,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18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해가 끝나 갈 무렵,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왔다.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들어와
백성 가운데에서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
모든 전리품을 다마스쿠스 임금에게 보냈다.
24 아람 군대는 얼마 안 되는 수로 쳐들어왔지만,
유다 백성이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을 저버렸으므로,
주님께서는 그토록 많은 군사를 아람 군대의 손에 넘기셨다.
이렇게 그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였다.
25 아람 군대는 요아스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고 물러갔다.
그러자 요아스가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을 죽인 일 때문에,
그의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그를 침상에서 살해하였다.
요아스는 이렇게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지만,
임금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11주 토요일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

 

오늘 역대기 하권은 하나의 영적 비극을 보여줍니다. 사제 여호야다가 죽은 뒤, 요아스 임금은 주님을 버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성경은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저버렸다”(24,18)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저버리다”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을 떠난다는 뜻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계약 관계를 끊어버린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요아스의 죄는 눈에 보이는 우상숭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의 기억을 잃어버린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받은 은총을 잊어버릴 때 결국 다른 힘들, 곧 명예와 안정, 돈과 자기 자신을 섬기게 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내적인 비극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여기서 “재물”은 아람어 마모나(μαμωνᾶς)를 번역한 말인데, 단순한 돈이 아니라 하느님 자리를 대신하려는 거짓된 안전을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 역시 이러한 우상숭배로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많은 이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경제적 불안,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지쳐 살아갑니다. 심지어 신앙생활마저도 성공과 보호를 얻으려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노동과 책임 자체를 꾸짖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분열된 마음을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걱정하지 마라”(6,25)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여러 염려로 내면이 산산이 흩어지고 분열된 상태(μεριμνάω)가 되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현대인의 불안은 단지 물질적 문제 때문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과 성과에 달려 있다고 믿게 만드는 문화 안에서 더욱 깊어집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놀라운 예언적 표징이 됩니다. 그는 세상을 멸시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선물임을 다시 발견하려고 소유의 논리를 버렸습니다. 그가 태양을 “형제”, 가난을 “자매”라고 불렀던 것은 소비주의 사회가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자유를 드러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인간의 고통을 몰랐던 순진한 사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통제가 아니라 신뢰 안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한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새와 들에 핀 나리꽃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게으름을 권하는 말씀이 아니라 관상의 초대입니다. 관상하는 사람은 생명이 상품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도시와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사람의 가치를 효율성과 성과, 경제적 능력으로 판단하려는 유혹이 존재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 나라의 감각은 서서히 사라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6,33)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는다는 것은 두려움보다 신뢰 안에서, 경쟁보다 연대 안에서, 과잉보다 복음적 단순함 안에서 살아가기를 날마다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하느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의 선택은 두려움과 축적,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의해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구체적인 마음의 가난으로 부름받습니다. 더 많이 감사하고, 덜 소비하며, 더 많이 귀 기울이고, 덜 경쟁하며, 하느님의 섭리를 더 깊이 신뢰하는 삶입니다. 사목적 책임과 가정의 의무, 경제적 현실 한가운데에서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6,34). 오늘 복음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할 자유를 지닌 하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자유이며, 오늘날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소명입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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