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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OFM 말씀나눔

6월 21일 (녹) 가해 연중 제12주일<"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28.31).>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Agatha|작성시간26.06.23|조회수31 목록 댓글 0

 6월 21일 (녹)  가해  연중 제12주일

예레 20,10-13; 로마 5,12-15; 마태 10,26-33

 

제1독서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20,10-13
예레미야가 말하였다.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5,12-15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6-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을 26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라반의  말씀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28.31).

이 말씀이 길지 않은 복음 대목 안에 세 차례나 반복됩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을 준비시키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일, 선하고 진실되고 바르고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늘 세상이 환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얽히고설킨 관계 안에 이해관계 역시 복잡하게 엉켜있기 마련이라 아무리 훌륭하고 고귀한 가치가 있는 지향이라도 제 이익을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리면 순식간에 적으로 규정해 버리지요. 예수님과 당시 종교 지배층과의 관계가 그러했고, 구약 예언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1독서는 그 대표적 목소리로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려줍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예레 20,10).

믿었던 이가 맞서거나 등을 돌릴 때는 으레 그러던 자들이 그럴 때와 달리 마음이 쪼개지고 산산이 무너내립니다. 살면서 이런 일은 안 겪으면 참 좋겠지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물론 예수님도 아프게 받으셔야 했던 상처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 이기주의와 차별로 가득찬 세상에서 하느님 말씀을 살고 전하는 예언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이나 사도들, 순교자와 성인들의 공덕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따름은 바로 그 위험하고 고독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예레 20,11)

참담한 처지를 토로한 예레미야가 곧바로 주님께 신뢰를 고백하며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힘은 그 운명을 뼛속 깊이, 내장 속속들이까지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송사는 인간이 맡지만, 예언자와 세상 사이의 송사는 하느님의 일이 됩니다(예레 20,12).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

이 증언은 잘 마련된 곳, 호의적인 군중 앞에서 준비된 내용을 선포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고사하고 말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들 틈에서, 때로는 적대감과 시기심이 가득한 냉소적 눈빛 앞에서 말과 행동과 삶으로 표현되는 증언까지 포함하지요. "나는 예수님을 압니다"라는 증언은 소리를 넘어 온 존재로 발산하는 파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증인이 되고 사도가 되려는 삶은 번번히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죄에 대한 의식이, 주님 사랑으로 충만해 의기충전해서 달려나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기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여겨 지레 사랑의 실천을 포기하고 물러서지요.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15).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하며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실존을 안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의 순례길을 걷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새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선사하신 새 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매일 넘어지고 주저앉는 죄스런 우리를 매일 일으켜 세웁니다. 이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외부적 악의 뿐만 아니라 내면의 어두움을 향해서도 유효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오히려 내편인 줄 알았던 자아 안에 스며든 실망과 좌절입니다.

제1독서와 화답송은 두려움 섞인 한탄에서 시작되어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반증하지요. 우리 머리카락 수까지 아시는 주님이 우리 곁에 힘센 용사처럼 현존하십니다. 우리 고통스런 외마디의 단 한 음절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귀기울이시는 분, 우리의 눈물 한 방울도 당신 부대에 다 담아두시는 분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사랑하는 벗님! 벗님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계시나요? 주님의 이 자상하고 든든한 격려로 위로받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다가오는 어둠에 힘내어 마주해도 좋습니다.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우리 바로 곁에 계십니다. 이런 든든한 빽을 지니신 벗님을 축복합니다.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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