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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주변 마을

16~11 보은군 회남면 새실(조곡)마전마을 이야기

작성자푸른솔|작성시간17.02.02|조회수39 목록 댓글 0

2005년 3월

경칩이 얼마전에 지나서인지 나른한 몸을 깨워

대청호 호숫가를 내달린다.


어부동 지나 남대문교 아래엔 그물을 드리우는 어부가 여유로운

손놀림으로 내일 아침을 그린다.

분저실 입구를 지나 승곡교 직전에서 오른쪽 시멘트 포장길로

잠시 오르다가 이내 멈추어 선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대청호 전경이다.


새가 나는 하늘이 가까워서였는지 아니면 새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새실이란 이름이 살갑다.

이 곳은 새실마을 중에서도 마전사 마을이다,


국사봉 아래 좁은 골자기에 은둔한 듯 예닐곱 가구가 살고 있다.

가이당(계단) 조심혀서 내려가믄 왼손편으로 가야혀!

가는 길을 일러주던 어르신이 염려를 뒤로하고 바쁜 걸음으로 마전사

터에 오르려니 단순미와 정성이 배어나는 돌탑 두 기가 눈에 들어온다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이 없는 절터이다.

절터 앞 600살 정도 되는 은행나무와 400살 정도는 넘는 은행나무에게

물어보고 싶으나 나무와 소통할 방도가 없으니 어찌하랴

꼼꼼하게 땅을 살피고 헤치며 찾아 낸 몇 가지 흔적들이 모여진다

삼국시대 토기조각,고려시대 기와조각,조선새대 분청사기

조각들이 대부분이다.


적어도 고려에서 조선새대 중기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번창했을 시기 절으 영역을 알아보려 동쪽 언덕을 오르려니

구멍이 숭숭 난 고목이 길을 막는다.

딱따구리종류 새들이 살던 보금자리이다.

좀더 편안한 집으로 이사를 갔는지....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세조가 속리산에 순행할 때 마전사에서 삼일동안 머물면서

베옷을 빨아 말리고 사슴도 사냥하였다. 하여 마록사 라고도 불렀다. 하고

은행나무는 나라의 변고가 생길 징조가 있으며

증~~증~~하고 울어어 미리 알려주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도 한 달 전부터 울었고

한국전쟁 때는 일주일을 두고 깊은 밤중에도 울었다고 하니

신령이 깃든 뒷산 국사봉과 은행나무에 정월 열 나흗날

십여 년 전까지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스스로의 도술을 최고인 양 뽐내던 마전사 주지스잉 잘난 체 하다가

벼락맞아 급사했다고 전해지는 벼락바위 를 찾아 보았으나

탄광에서 버린 잡석들로 겨우 머리부분만 남은 채 겸손해라!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고개를 드니 국사봉 동쪽 매봉에서 날아온 매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맴돈다.

험한 길 조심해서 가라는 배웅인가 보다

해주가 본관이신 오성하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서쪽 달기봉 아래로

난 길을 올라 잿마당 고개를 넘어간다.


돌을 정성스레 쌓아 만든 밭두렁에 눈길도 주고 멀리

호점산성의 원경을 보는 여유도 생긴다.


♥원경~먼 거리에서 보는 경치

♥순행~차례로 감

♥예닐곱~대강 어림쳐서 여섯이나 일곱쯤

★찾아가는길

대전~세천고개~어부동~회남 분저실 녹색체험마을

이정표 8km 표시 200m 직진 승곡교 직전 우측의 오르막

시멘트 포장길로 2.2km

※참고

시멘트 포장길 중간에 여러 번 갈림길이 있으니

큰길로 진행하여 잿마당고개 정상을 넘어 가파른 경사길 따라

내려가면 협소한 주차공간이 있음

다른 차량과 교행이 불가하며 특히 내려막길은 아주 위험함

고개로 향하는 중간 1km 정도에 주차공간이 있으니

걸어서 다녀오시길 권함

   ~~~~오감만족 대청호체험 책에 실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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