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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10일(수)
<빛 바랜 은빛 수의(壽衣)>
― 화려함이라는 이름의 정교한 굴레
밤은 늘 찬란한 것들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수백 년 된 성곽의 테라스에서 유리잔을 기울인다. 황금빛 액체는 달빛을 머금고, 오래된 오크통의 시간은 향기가 되어 혀끝에 내려앉는다. 누군가는 별을 달고 있는 식당에서 한 점의 요리를 마주한다. 접시 위에는 계절이 놓이고, 셰프의 이름은 예술가의 이름처럼 불린다. 그리고 사각의 화면은 그 모든 순간을 포착하여 우리에게 건넨다.
보라. 이것이 성공이다. 이것이 행복이다. 이것이 인간이 도달해야 할 풍경이다.
화면은 그렇게 속삭인다.
사람들은 그 빛 앞에서 잠시 눈을 감는다. 자신의 삶을 잊고,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본다. 손에 쥔 것은 작은 기계뿐이지만, 마음만은 잠시 성곽의 주인이 된다. 대리된 황홀경. 허락된 환상. 화려함은 그렇게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인간의 영혼을 포획한다.
그러나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있다.
성곽의 돌벽을 올려다보면 아름답다. 그러나 돌은 스스로 그 자리에 쌓이지 않았다. 오래전 바람이 매서운 북방의 산악지대에서 이름조차 남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을 날랐다. 굶주림에 떨던 손이 돌을 들었고, 피로 얼룩진 발이 길을 만들었다.
오늘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와인을 따른다. 누군가는 접시를 닦는다. 누군가는 밤늦도록 주방의 열기 속에서 시간을 태운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반짝이는 것은 식기이지만, 그 반짝임을 위해 닳아가는 것은 인간의 생애다.
역사는 강물처럼 흐르지만, 물의 모양만 바뀔 뿐 강바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때 인간은 칼에 의해 복종했다. 귀족의 문장과 왕의 인장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했다.
이제 인간은 광고에 의해 복종한다.
더 부드럽고, 더 세련되며, 더 아름다운 방식으로.
자본은 말한다.
"조금만 더 견뎌라."
"조금만 더 일하라."
"조금만 더 소비하라."
그러면 너 역시 이 찬란함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사람들은 그 약속을 믿는다. 하루의 귀족이 되기 위해 일 년의 시종이 된다. 한순간의 황홀함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저당 잡힌다. 그리고 다시 다음 황홀함을 위해 노동한다.
수레바퀴는 돌아간다.
누군가는 땀을 흘리고, 누군가는 이익을 계산한다.
누군가는 재주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것에 가격표를 붙인다.
세상은 자유를 말하지만, 자유의 축제장 한가운데에는 보이지 않는 사슬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구조물은 언젠가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너무 높이 세워진 탑은 바람에 흔들리고, 너무 멀리 날아간 화살은 결국 땅을 찾는다.
우주를 향해 나아가던 탐사선조차 언젠가는 마지막 전류를 소진한다. 인간이 만든 모든 체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것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모순에 의해 먼저 늙어간다.
그리고 지금, 어쩌면 우리는 그 노화를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는다.
가난 때문만은 아니다.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짊어진 굴레를 또 다른 생명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침묵의 선언. 아무 구호도 외치지 않지만, 그 어떤 시위보다 근본적인 거부.
씨앗이 심어지지 않는 들판은 결국 수확을 멈춘다.
체제는 소비자를 원하지만, 대중은 미래를 포기한다.
그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다.
게다가 인간이 수행하던 노동마저 기계에게 넘어가는 날, 오래도록 유지되던 균형은 더욱 흔들릴 것이다. 필요 없는 손들이 늘어날수록, 잉여가 된 삶들은 자신이 왜 이 거대한 기계 속에서 소모되어 왔는지를 묻게 될 것이다.
질문은 언제나 위험하다.
모든 권력은 질문보다 무관심을 사랑한다.
그래서 오늘도 화면은 더욱 화려해진다.
더 눈부신 여행. 더 고급스러운 식사. 더 완벽한 성공.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은 해가 떠오르기 직전 가장 찬란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축제로 기억하지만, 어떤 불꽃은 축제가 아니라 종막의 신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수많은 화려함은 무엇일까.
번영의 증거일까.
아니면 끝을 두려워하는 시대가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피워 올린 마지막 조명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인간이 인간을 발판으로 삼아 세운 궁전은 결국 인간의 무게 때문에 흔들린다는 것을 안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은 깊어진다.
그리고 저 멀리, 아직은 찬란하게 반짝이는 제국의 어깨 위에서, 은빛 수의 한 벌이 바람에 천천히 바래어가고 있다.
그것은 방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시작된 계절의 문제다.
남은 것은 오직, 시간뿐ㅡ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해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눈박이로 대답하지 않은,
눈도 못 내린 골목길을 돌아서 가던
그 눈 내린 찬란한 선율을 주겠다.
보리밭에 달린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새벽까지 너와 함께 걷겠다.
https://youtube.com/shorts/sU5RzcgCWYc?si=N_8TIglTiubaXmEq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송설 작성시간 26.06.12
별켜님.
주신 글 읽으며 여독을 풀으려합니다.
대부분 공감하며 빛에는 그림자가 있음을
터득한지 오래인지라....
저도 우리의 미래가 어찌 될지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모두들 잘 짊어지고 가지 않을까요?
주어진 자기 자리에서...
오랫만에 찾은 괴산.
나무를 좋아하는 짝꿍은 귀한 미선나무자생지에
촛점을 맞추고
역사를 좋아하는 저는 우암 송시열과 일완 홍범식선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아 본 여행이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선물은
더없이 좋았고요^^ -
답댓글 작성자불을끄고별을켜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4 ㅡ;
제가 너무 비관론을, 사실 멈춰야 했던 부분이 많다 싶습니다?
우리는 늘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잘 적응해 왔으니까요.
좋은 추억 가득 안고 돌아오신 듯합니다.
남은 주일, 편안한 휴식 취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