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메시아닉 쥬 (Messianic Jews) - 유대인이면서 예수를 메시아로 따르는 사람들. / `메시아닉 유대교`에 대하여
작성자에스더s작성시간16.04.03조회수209 목록 댓글 0메시아닉 쥬 (Messianic Jews)
유대인이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르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예후딤 메시히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말을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적인 개념으로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들의 핵심적인 특징은 예수를 유대인과 모든 인류의 "메시아(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기독교와 또 다른 점은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지키지 않고 있는 유대교의 절기나 의식 그리고 관습 등을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따르는 것입니다.
메시아닉 유다이즘은 19세기 중반에 히브리-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의 런던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히브리-기독교 운동은 “브네 아브라함(아브라함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불과 41명으로 구성된 작은 단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메시아닉 유다이즘”이라는 말은 1895년에 유대인으로써 기독교 교인이지만 유대교에 더 가까웠던 이들을
기독교에서 일반적인 기독교도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붙여졌던 이름이었습니다.
1925년에 창설된 메시아닉 이스라엘 연합회(The Messianic Israel Alliance)는 그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닉 유대이즘은 유대인들의 모임이며,
예수 안의 메시아 되심을 인정하고 유대인의 삶 속에 있는 언약적인 책임을 감당하고,
토라에 근거하여 전통에 표현되어 있고 새 언약의 배경 속에서 새롭게 되고 적용된 정체성에 따른다.”
Messianic Jews Symbol (메시아닉 쥬의 상징)
Messianic Jews Synagogue(메시아닉 쥬 회당) 에서 예배드리는 메시아닉 쥬
Praise Him with the dance (찬양하면서 춤을 추고 있는 메시아닉 쥬)
메시아닉 유대교(Messianic Jews)의 종교적 부흥은 1960년대와 70년대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메시아닉 유대교는 종교운동으로써 복음주의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지는 종파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를 유대교의 메시아와 삼위일체의 성자로 인정하지만 일부는 삼위일체설을 믿지 않기도 합니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메시아닉 유대교도가 히브리 성서(구약 성서)와 신약 성경, 모두를 하나님에 의해 기록된 권위적인 성서라고 믿고 있습니다.
메시아닉 유다이즘의 신학은 예수의 메시아이심과 사도 바울의 신학 사상도 구약 성서를 근거로 하고 있으므로 구약 성서와 함께
신약 성서를 정경으로 하여 성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죄, 사탄론, 그리스도의 대속, 삼위일체 등의 기독교 교리들을 수용하고 믿고 있지만
신약 성서를 구약성서의 영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주석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613개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는 토라(모세 5경)를 언약적인 개념에서
'디모데후서 3:16~17'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처럼 가장 기본이 되는 성서로 믿고 있습니다.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정지하심, 그리고 자비하시면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쉐마의 고백(신명기 6:4~5)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 되심을 믿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1:14)의 말씀처럼 예수의 신성(Divine Character)을 믿습니다.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들은 종말론적인 신앙을 고수하여
'종말', '예수의 재림', 이스라엘의 구원과 제 3의 성전 재건', '죽은 자의 부활과 천년 왕국' 등을 믿습니다.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s)의 ”죄 사함“에 관한 신학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죄 사함을 믿으며,
생활 속에서 범하게 되는 죄에 대하여서는 속죄의 기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메시아닉 유대교는 예수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여야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또한 모든 죄가 예수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속죄되었다고 믿으며,
유대법과 유대 관습은 단지 문화적인 것일 뿐 구원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믿으며 또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류 기독교 에서는 메시아닉 유대교를 기독교의 한 종파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메시아닉 유대교 신자들은 그들이 유대교의 한 종파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최고 법원은 이들 메시아닉 유대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가 아니라, 기독교의 한 종파라고 정의하였습니다.
2003년에서 2007년까지 메시아닉 유대교는 예배당이 미국에서 150개에서 438개로, 이스라엘에서 100개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불과 몇 십 명이었던 유대인 기독교도가 650만 유대인 인구의 2% 정도인 13,000~15,000여명이 메시아닉 유대교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8년의 통계에 따르면 메시아닉 유대교 교인들은 최소 6,000여명에서 많게는 15,000여명 정도의 신자들이 이스라엘에 있고,
미국에는 약 150개의 메시아닉 유대교 회당이 있고 약 250,000명의 신자들이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숫자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있는 뉴욕의 메시아닉 쥬
유대교, 유대인들의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에 대한 시각
전 세계적으로 응급환자를 실어 나르는 구급차에는 붉은색 또는 푸른색의 십자가 마크가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구급차에는 적십자 마크가 그려져 있는 대신에 푸른색의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적십자가 예수의 십자가를 의미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일반적으로 산술 기호의 Plus로 “+”를 사용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그 대신에 “ㅗ”로 사용합니다.
그런가하면 교차를 만들 때에도 “+”의 모양을 피하기 위해 교차로 중앙에 동그란 화단을 만들고 로터리를 만들어 십자가 모양이 되지 않게 하였습니다.
왜 이스라엘에서는 이렇게 예수를 떠올릴 수 있는 상징인 “십자가”를 금기시하고 있을까?
유대교인은 이스라엘 안에서 정통주의, 보수주의, 개혁주의로 분류되는데, 그 중에서 “하시딤”이라고 불리는 정통주의 보수파들은
자기 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유일하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백성 또한 거룩한 백성이라고 주장하며,
거룩한 백성으로써의 이들은 일반 백성과 먹는 것이나 입는 것, 사는 방식 등 모든 것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직업을 갖지 않으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일 년 365일 경전만을 읽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을 일반인들이 받들고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 하시딤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서부지역보다도 예루살렘이 있는 서부에 살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선교나 전도를 하지 않습니다. 종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대교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며
흑인이나 동양인이 유대교를 믿는다고 해도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이 통일 왕국을 이룬 이후에 수 천 년을 페르시아와 로마 등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받았으며
또 그들의 식민지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나라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어려원던 상황에서 유대인은 늘 누군가 강력한 존재가 나타나서 이 지긋지긋한 억압의 현실 속에서 구원해주기를 바랬습니다.
그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Savior)가 바로 메시아(Messiah)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이스라엘을 회복하게 될 메시아가
거대한 천사 군대를 이끌고 이 땅에 내려와 로마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주기를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이 기대하여 왔던 메시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스라엘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메시아(그리스도)란 '기름부음(Anointed)을 받은 자'라는 의미인데,
이 기름 부음을 받을 자는 '왕(King)'이어야 하'며 '선지자(Prophet)'이어야 하고 또 '제사장(Priest, 또는 대제사장)'이어야 하는데
자신이 그리스도(메시아)라고 주장하던 예수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시골 동네 나사렛의 목수 아들인데다,
강력한 조직이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왕도 아니었으며, 더구나 대제사장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함께 몰려다니던 사람들은 고기를 잡는 어촌 또는 촌구석에서 끌어 모은 12명의 제자들이 전부였던 것입니다.
또 로마군을 무찔러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외치기만 하였던 무기력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또 예수는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따라오던 유대교 율법과 상반되는 말과 행동을 하고 다녔습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므로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는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면서 그 관례를 어기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는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준 일(행동을 해서 상황이 바뀌게 하는 것은 안식일의 교리를 어기는 일)을 하였는데
이러한 예수의 행위는 율법학자나 랍비들이 보는 관점에서는 율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이런 행위에 대하여 “양이 구덩이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도 그 양을 꺼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안식일에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또 유대인의 율법은 이방인과 대화를 하거나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금하는데 예수는 이방인을 만나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였으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바와 같이 죄인이라고 지목을 당하였던 세리장인 삭개오와 함께 그의 집에 있었던 일 등과 같이
예수의 말과 행동들은 유대교 율법학자나 랍비들은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율법학자, 제사장,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인정하기는커녕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로서 죽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반목
이후 유대인들과 예수를 믿는 이들(그리스도인들)과의 반목은 역사적인 사건들로 인하여 커져만 갔습니다.
이스라엘이 AD 70년에 로마의 디투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게 침략 받을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그리고 엣세네파가 있었고 소수였기는 하지만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나사렛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세파와 사두개파, 엣세네파는 로마에 대항해 싸웠지만 나사렛파만은 로마에 대항하지 않고 요르단 땅에 있는 페트라로 피난을 갔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4:6~16) "또한 너희는 전쟁에 대한 소식과 소문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라.
이런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때는 아니다. 민족이 다른 민족과 싸우기 위해 일어나고,
나라가 다른 나라와 싸우기 위해 일어날 것이다. 여러 곳에서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해산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에 불과하다. 그 때, 사람들이 너희를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나 때문에 너희가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질 것이며, 서로를 넘겨주고, 미워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또한 불법이 더욱 많아져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모든 나라에 증거될 것이다. 그 때서야 세상의 끝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자 다니엘이 말한 '멸망케 하는 혐오할 만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읽는 사람은 깨달아라)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
이 일을 두고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는 나사렛파 일당을 민족의 배신자로 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AD 135년에 일어난 '바르 코크바 반란'이라는 사건이 예루살렘 성에서 있었는데,
이 사건을 주도하였던 '바르 코크바'는 유대인 저항단체의 지도자로써
로마군과 전투를 하여 여러 차례 큰 승리를 거두었던 적이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우상(Idol) 같은 인물이었으며
당시 유명한 유대인 랍비였던 '아키바'는 이 '바르 코크바'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줄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정하였을 정도였습니다.
이 때 그의 군대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나사렛파의 젊은 청년들이 모두 전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만을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정하였던 나사렛파의 젊은이들은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라고 여기고 있었던 바르 코크바가 이끄는 반란군에 동조하지 않아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투에 참여하였더라도 전투대열에서 이탈하기도 하였습니다.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이끄는 로마의 반란진압군에 의하여 이 “바르 코크바 반란”은 진압되었는데,
그 후 유대인들은 예수를 따르던 나사렛파 사람들을 민족의 반역자로 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AD 4세기 초,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하여 기독교가 승인되고 마침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였던 민족으로 유대인들이 지목되어 그들이 기독교(가톨릭)으로부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AD 636년에 이스라엘 땅은 아라비아로부터 생겨난 신흥종교였던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1096년, 이교도에게 점령되어 있었던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하여 십자군이 조직되어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였는데
이것이 제1차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표시가 가습에 그려진 갑옷을 입고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과 방패를 앞세운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자마자
첫 번째로 하였던 일은 무슬림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예수살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회당 안에 몰아넣고 불을 지름으로 태워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를 고난 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에게 복수를 한 것이었습니다.
이 때까지 예루살렘에 남아 살기고 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갔었던 유대인들이 그의 조상이 살던 곳으로 들어와 살고 있었던 유대인 숫자가 약 30만 명이라고 하였는데
그 중에서 29만 9,000명이 불에 타 죽은 유대인이라고 하니
유대인들의 가슴 속에 깊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와 예수에 대한 적개심이 얼마나 크겠는가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기독교(가톨릭)가 유럽 전체를 주도하고 있었던 중세시대에는 유대인들이 마녀사냥이라는 명목 아래에 수도 없이 죽어갔던 처참한 역사가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1483년 독일에서 태어나 가톡릭으로부터의 종교개혁을 주창하였던 가톨릭 신부, 마르틴 루터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해가 이 땅에 뜬 이래로 스스로를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 자처하는 유대인만큼 피에 굶주리고 복수심에 들끓는 족속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저주받을 저 고리대금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하늘 아래 불신자의 금과 은으로 입에서 악취를 풍기는 그들보다 더 탐욕스러운 민족이 없었고
또한 앞으로도 그런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친애하는 기독교 형제들이여, 알지어다! 사탄 다음으로, 진정 유대인이고자 하는 유대인만큼 우리에게 위험하고 독소적이며 골수에 박힌
적개심을 품은 적도 없음을......”이 라고 독설을 내뿜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독설을 하였던 마르틴 루터의 독설은 훗날 히틀러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에 논리적 기반을 제공하였던 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은 무고한 어린 생명들만이라도 구원해달라고 바티칸 교황청에 편지를 보냈으나
교황청에서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이상 무고한 생명은 없다”고 하는 답변뿐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수많은 역사적인 연유들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예수뿐만 아니라 기독교(가톨릭)의 교황,
그리고 마르틴 루터가 이끌던 개신교에 대한 적개심은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아주 깊이 남아 있습니다.
출처 : http://www.haeunchurch.com/index.php?mid=board_ljxq48&page=4&document_srl=18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