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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천부교 역사>덕소신앙촌

작성자|작성시간20.03.29|조회수304 목록 댓글 4

단비야~! 천부교회 가자!

천부교 역사 덕소신앙촌

단비: 여기는 어디 교회야?
수정: 덕소신앙촌 교회~
덕소신앙촌은 1962년 7월 20일, 소사신앙촌에 이어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와 도곡리 일대 10만평 부지에 두 번째로 건설된 신앙촌이야. 경공업 위주로 사업을 했던 소사신앙촌과는 달리
덕소신앙촌에서는 제강.제철 공업과 같은 중공업에도 참여하는 등 사업을 더욱 확대하여 30여 공장에서 80여 품목의
제품이 생산되었대.

신앙촌 건설초기
'신앙촌에 들어가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가?'
'일도 않고 살게 되는 것인가?'

수정: 많은 사람들은 신앙촌에서의 경제활동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를 매우 궁금하게 생각했었대.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일하여 먹을 것을 만들고 입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 생산은 하지 않고 외국의 원조만 얻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합심하여 생산에 힘써야 한다”고 신앙촌
경제활동의 기본 정신을 말씀해 주셨어.
신앙인의 양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만드는
신앙촌 제품은 ‘좋은 품질’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널리
인정을 받고 있어.
또 덕소신앙촌에 입주한 교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초중고
학교가 개교 되었어. 특히 시온어린이합창단은
TV출연, 각종 대회 수상, 레코드 제작 등으로 돋보이는 활동을 보였고, 시온 어린이 농구부는 전국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하기도 했어.

신앙촌을 둘러 본 유명 인사들의 찬사도 잇달았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
“나는 놀랐소. 우리 힘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신앙촌을 건설한 것을 보고 눈물이 나왔소. 그리고 감사했소.
고마워요. 고마운 일이야. 나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망을 보았습니다.” –신앙신보 1965. 5. 24.-

전 건국대 총장 유석창 박사
“신앙촌은 신앙을 토대로 해서 유용한 생산을 해
나가는 곳으로서 국가경제 재건의 기초를 마련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신앙촌이야 말로 국가에
‘플러스'가 되는 종교단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신보 1963. 7. 22.-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언론인 최은희 기자
“내가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보고 여러 곳을 보아 왔지만
신앙촌과 같은 곳은 못 보았어요. 진흙 속에서 보석을 발견했다고 할까, 나라에서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에는
신앙촌이란 곳이 있다고 널리 알렸으면 해요.
신앙촌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의 보배예요” –신앙신보 1963. 9. 23.-

친구들 잘 보셨나요? 다른 편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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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마린 | 작성시간 20.03.29 잘읽고 갑니다
  • 작성자노란잠수함 | 작성시간 20.03.30 잘보고가요
  • 작성자cathrine | 작성시간 20.04.01 잘 보고 갑니다 ~
  • 작성자Rachmani | 작성시간 20.04.02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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