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성도가 극히 적은 천국(신부단장의 길)
천국은 좁고 협착한 길이며 찾는 이가 거의 없어 극소수만 들어가는 곳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십자가 복음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채 넓은 길을 가면서 천국에 들어갈 줄로 착각하고 있다. 예수님은 넓은 길을 가는 성도들이 심히 많다고 하시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고로 우리가 천국을 넉넉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 복음을 온전히 깨달아야만 가능하다.
십자가 복음은 5가지 복음((죄사함의 복음, 임재의 복음, 옛사람 죽었음과 재창조된 새사람 삶의 복음, 구원상실의 복음, 회개의 복음))이 내포되어 있다. 십자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이 5가지 복음을 다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은 십자가 복음하면 죄사함의 복음만이 전부인 줄 안다. 그것은 죄사함의 복음만을 듣고 가르침 받았기 때문이다. 죄사함의 복음은 단지 오분의 일만 믿고 있는 복음이다. 그것은 십자가 복음을 바르게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복음은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복음이며 또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복음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주님만 볼 것이 아니라 못박힌 자신의 모습도 보아야 하며 주님과 함께 부활한 자신의 새로운 모습도 보아야 한다. 이것이 참된 십자가 복음 이다. 이 속에 이 5가지 복음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이 이 복음들을 누리지 못하도록 강한 연막을 치기 때문이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기 힘쓰지 않음으로 인해 성령님이 강제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A. 죄사함의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를 죄(( 과거, 현재, 미래의 죄)) 에서 구원해 주신 복음이다. 죄사함이 복음인 것은 예수님이 우리 힘과 노력으로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죄의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이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의인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죄인처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값을 다 지불해 놓으신 것이다.
즉, 우리의 죄를 다 짊어 지시고 우리가 친히 받아야 할 죄의 형벌(지옥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깨끗이 청산해 주신 복음인 것이다. 이렇게 죄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받치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것이다. 누구든지 이 죄사함의 복음을 듣고 성령의 역사로 그 복음이 깨달아져 믿어지면 그 순간 영적으로 출생한 자가 되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예수님의 부활 생명(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로 주님 안에서 재창조된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B. 임재의 복음은 이 죄사함의 복음을 믿는 순간 삼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영 속에 들어 오신 놀라운 영적 연합의 복음이다. 임재가 복음인 것은 주님이 자신의 생명을 누리며 살게 하시려고 내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도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와 교제하며 우리와 이런 사귐을 통해 우리 안에서 자신의 형상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이다.
우리가 내 안에 오신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면 누릴수록 삶 속에서 주님을 경험하게 되고 주님을 경험할수록 그 주님을 더 알기 원해서 주님과 친밀한 관계의 삶을 더 추구하게 된다. 우리가 임재 속에서 주님과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누릴 때 주님 안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주님은 영이시기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이 내 안에, 내 곁에, 내 앞에 계심을 믿음의 눈(속사람의 눈, 영혼의 눈,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주님을 의식하고 생각하며 주님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 임재의 복음이다. 매 순간 임재(주님)를 누리는 삶이 십자가 복음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의 주님을 놓치면 기독교는 생명 없는 종교로 전락하여 네 원수들 (사탄, 옛사람, 세상, 죄)의 종노릇하는 타락한 종교가 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임재를 놓치면 종교 생활은 가능하지만 신앙 생활은 절대 절대로 불가능하다.
임재의 삶이란 보이지 않는 공기를 지으신 주님이 공기 보다 더 가까이 계시며 공기 보다도 더 실제적으로 계시고 공기처럼 나를 안팎으로 감싸고 있음을 매 순간 의식하고 생각하며 그 주님을 즐기고 누리며 그 임재를 사탄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잘 지키고 보전하며 소중히 여기는 삶이다.
우리는 주님의 실제적인 임재를 선명하게 확실히 믿고 주님의 임재를 주업으로 누리며 임재 속에서 범사에 모든 일을 부업으로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임재를 누리지 않으면서 행하는 모든 일들은 다 헛 것이며 바리새적인 종교 생활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님의 임재를 누리며 행하는 모든 옳은 일들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 생활이다. 이런 임재의 삶을 누리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삶이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주님과 나누는 교제이고 데이트이며 쉬지 않는 기도이고 참된 영적 예배의 삶을 사는 신앙 생활인 것이다.
C. 옛사람 죽었음의 복음과 재창조된 새사람 삶의 복음도 우리가 죄사함의 복음을 믿는 순간 동시에 이뤄진 복음이다. 옛사람 죽었음이 복음인 것은 옛사람 죽었음을 믿어야 죄에서 해방 될 수 있고 새사람의 삶((하나님 중심, 주님의 생명으로 사는 의존적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우리 옛사람((내 중심, 내 힘과 내 노력으로 사는 독립심))도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옛사람의 죽음은 실제적인 죽음임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참된 성화는 이 옛사람 죽었음의 복음을 견고히 믿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옛사람 죽었음의 복음을 믿지 않으면 참된 성화는 절대 불가능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 옛사람 죽었음의 복음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 받고 행위로 성화를 이루려고 한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 악하고 추한 생각을 품은 채 그 생각이 죄인 줄도 모르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보려고 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정도 승리하며 열심을 다해 산 것 같으면 자신의 행위에 만족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이것은 옛사람의 죽었음을 믿지 않고 옛사람으로 행한 것이기에 그 행위가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더러운 의에 불과하며 예수님의 죽으심을 모독하는 것으로 다른 복음이며 저주받을 복음이다.
우리가 죄사함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고 임재의 삶을 누리고 있다 할지라도 옛사람의 죽었음을 깨닫지 못하면 참된 성화를 이룰 수 없기에 지금 자신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십자가에 못박힌 우편강도가 구원받고 십자가에 내려와서 다시 이 땅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옛사람 죽었음의 복음을 깨닫지 못한 채 육신(옛사람)으로 살다가 회개하지 못하고 죽었다면 그는 지옥 갔을 것이다. 고로 옛사람 죽었음의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우리는 옛사람의 죽었음을 깨닫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그것을 깨닫고자 힘써야 한다.
구원이 죄사함의 복음을 믿음으로만 되듯이 성화는 옛사람 죽었음의 복음을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죄사함의 복음을 믿고 누리며 또 임재의 복음을 믿고 누리듯이 옛사람 죽었음의 복음도 믿고 누려야 한다.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옛사람 속에 있는 옛성품, 타락한 자아, 죄성이 다 처리(제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옛사람 죽었음을 누리며 옛성품 제거되었음을 누리고 타락한 자아가 죽었음을 누리며 죄성이 제거 되었음을 누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도록 죄성을 제거하신 것이다. 이 토대 위에서 새사람의 삶을 누리며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새사람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부어 주신 하나님의 자원들(((주 임재, 주 생명, 주 성품, 주 말씀, 주 권세, 주 승리 등)))을 생각하며 누리는 삶이다. 즉,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하늘의 신령한 복( 하나님의 자원들)을 생각하고 누림으로써 내 안에서 먼저 마음의 천국을 누리는 삶이다. 다시 말해, 먼저 내 마음(생각)의 밭에서 부터 하나님이 주신 영적 복들을 누리는 삶이 차고 넘칠 때 이웃을 사랑하는 열매 맺는 삶이 밖으로 저절로 (결과적, 자연적) 흘러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 안에 거하는 삶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인 것이다.
우리는 옛사람이 죽었기에 옛사람에 속한 것들(옛성품, 죄성)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네 원수(( 사탄, 옛사람, 세상, 죄))들이 넣어 주는 생각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한다. 사탄은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절대 믿지 못하도록 간교한 연막을 치며 혼미케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옛사람이 처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가 속지 않는 한 그가 우리를 종노릇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옛사람에게 속한 모든 것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옛사람, 옛성품, 타락한 자아, 죄를 짓는 근원인 죄성이 다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탄은 이 모든 것이 서로 서로 별개인 것인냥 따로 따로 떼어낸 후 속이고 속여서 옛사람 죽었음을 믿지 못하도록 미혹하며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옛사람 죽었음을 깨달은 후 죄에 속아 넘어지면 타락한 자아가 있는 것처럼 속이고 또 타락한 자아 죽었음을 깨달은 후 죄에 속아 넘어지면 또 죄성이 있는 것처럼 속여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이 내게서 나온 것으로 믿게 하여 옛사람 죽었음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타락전 아담처럼 우리는 죄성이 없어도 사탄에게 속으면 죄에 넘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 임재를 놓치면(주님께 붙어있지 않으면) 백해무익한 존재인 것이다. 즉, 우리는 주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주를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 알의 밀이 전부 죽어야 새로운 새싹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옛사람이 모두 죽지 않고는 절대 새사람으로 재창조 될 수 없다. 예수님이 전부 죽으신 것처럼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도 전부 죽은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에 연합되어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죄성이 없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 된 것이다.
옛사람이 첫째 아담의 모든 것(죄성=죄의 성품)을 다 유전 받았듯이 새사람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모든 것((의의 성품=생명, 성품들, 말씀, 권세 등))을 다 유전 받았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우리 옛사람이 첫째 아담에 속한 생명으로 살았듯이 이제 우리 새사람은 둘째 아담인 예수님께 속한 생명으로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 생명으로 살아야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순종을 누릴 수 있고 사탄에게 속지 않는 한 죄짓지 않는 거룩한 삶이 가능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성품 등이 우리를 통해 흘러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놀라운 사실을 깨닫도록 사탄이 그냥 두지 않기에 옛사람 죽었음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깨닫기를 간절히 원할 때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신다. 사탄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사탄 자신이 우리 대뇌에 남긴 옛사람의 흔적(자국)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들을 넣어주며 그것이 우리에게서 나온 생각인냥 속이고 그런 것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에게 죄성이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죄성이 없기에 이런 것들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사탄이 주는 이런 생각들이 들어오면 즉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쳐서 주님이 이미 이뤄 놓으신 승리를 누림으로 승리의 열매를 천국 창고에 쌓아가야 한다. 그런데 물리치지 않고 나에게서 나온 생각으로 받아 들이는 순간 우리는 사탄에게 속아 죄에 넘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D. 구원상실의 복음도 죄사함의 복음을 믿는 순간 성도 안에 동시에 이뤄진 복음이다. 구원상실이 복음인 것은 자신의 구원이 상실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참된 회개로 죄를 끊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원한 속죄의 복음 안에 이 구원상실의 복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주님이 미래의 죄까지 영원히 속죄해 놓으신 것은 영원한 속죄의 토대 위에서 회개함으로 용서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영원한 속죄를 이뤄놓지 않으셨다면 다른 종교들같이 아무리 죄를 회개해도 용서 받을 길이 없다. 영원한 속죄를 이뤄 놓으셨기에 회개를 통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영원한 속죄는 하나의 거대한 면죄부 제도가 아니다. 미래의 죗 값을 다 지불해 놓으셨기에 죄를 지어도 천국 간다는 말이 아니며 죄를 짓고도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성도가 영원한 속죄를 잘못 깨닫고 네 원수와 타협하며 죄의 종노릇하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모독하는 것으로 실상은 영원한 속죄를 전혀 믿지 않는 것이며 행동으로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영원한 속죄는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에 넘어지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죄에 넘어질 때 그 영원한 속죄의 토대 위에서 회개함으로 죄 용서를 누리도록 이뤄 놓으신 속죄인 것이다. 그런데 넘어진 죄들에 대해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고 계속 죄가운데 거하는 것은 주님을 십자가에 다시 현저히 못박는 모독죄이며 영원한 속죄를 진실로 믿지 않는 것임으로 구원상실을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오늘날 옛사람으로 사는 대부분의 목사들과 성도들이 자신의 구원이 영원히 안전하다고 확신하기에 즉, 자신은 천국행 티켓을 이미 따놓았다고 생각하기에 네 원수들과 타협하며 또 WCC, WEA와 타협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E. 회개의 복음도 죄사함의 복음을 믿는 순간 성도에게 동시에 이뤄진 복음이다. 회개가 복음인 것은 회개만이 우리의 값진 구원을 보존해 주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속죄의 복음 속에 이 회개의 복음이 담겨 있다. 주님이 미래의 죄까지 다 영원히 속죄해 놓으신 것은 우리가 넘어진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2천년 전에 이미 이루어 놓으신 그 용서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주님이 우리 미래의 죄를 영원히 속죄해 놓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십자가에 계속 못박히시든지 아니면 우리가 구약 성도들처럼 계속 속죄제로 제사를 드리든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놓으셨기에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의 영원한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간단한 회개의 길이 마련된 것이다. 즉, 회개를 통해서 2 천년전에 이미 이뤄놓신 그 용서를 누릴 수 있게 해놓으신 것이다. 우리가 구원 받기전에 자기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회개함으로 2천년전에 이뤄놓신 그 용서를 누린 것처럼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넘어진 죄들도 이 영원한 속죄의 토대위에서 회개하여 2 천년전에 이미 이뤄놓신 그 용서를 누리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 넘어진 죄들에 대해 철저히 회개함으로 우리가 받은 값진 구원을 상실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우리는 죄에 넘어진 순간 즉시 회개하여 그 죄를 버리고 다시는 네 원수(사탄, 옛사람, 세상, 죄)에게 속아 넘어지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참된 회개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180도 돌이킨 후 다시 속지않겠다는 결단으로 주임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성경은 악의 모든 모양이라도 피하라고 명령하기에 우리는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신 죄들과 사소한 죄들 뿐아니라 아래와 같은 죄들도 주의하고 피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사탄이 쏘는 죄의 화살에 맞아 지옥에 끌려가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놓침으로 인해 화살에 맞을 때 주님은 우리가 그 순간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우리가 회개해야만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며 주님이 베푸시는 그 용서로 사탄이 우리를 지옥에 끌고갈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에게 속아 죄에 넘어진 줄도 모르고 그래서 그 죄 속에 계속 거하거나 죄인줄 알면서도 회개하여 돌이키지 않으면 주님은 지옥에 끌려가는 자기 자녀의 모습을 보고 피눈물을 흘리시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 눈, 귀, 표정, 말, 행동으로 범한 모든 죄들을 회개해야 한다. 즉, 장례예배((영정 앞에서 기도, 헌화, 식사, 분향한 죄))와 추도예배((벌초, 묘지 앞에서 기도한 죄))와 명절예배를 드린 죄, 죽은 영들(순국선열)에 묵념한 죄, 비인격체인 국기에 경례한 죄, 세상문화와 유행을 따른 죄, 문신과 술과 담배로 몸(성전)을 더럽힌 죄, 섹시하고 야한 옷을 입은 죄, 자위와 마음으로 음란을 즐긴 죄, 주일 성수하며 주안에 안식하지 않고 주일 날 일하고 장사하며 오락을 즐긴 죄, 십일조 하지 않는 죄, 미디어와 여행으로 세상 즐거움을 누린 죄, 부귀영화와 성공을 추구한 죄, 재물을 쌓아 이 땅에 소망을 둔 죄, 보험을 의지한 죄, 무익한 말한 죄 등 옛사람((자기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을 섬긴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또 옛사람의 죽었음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옛사람에게 종노릇한 죄들(((원망과 불평, 짜증과 분냄, 다툼과 분쟁, 시기와 질투, 미움과 쓴 뿌리, 비난과 정죄, 용서못함, 탐심, 돈과 명예사랑, 속임과 거짓말, 이해타산, 냉정함과 무정함, 무례함과 불친철, 자기중심과 자아실현, 책임전가, 인정과 존중 받고자함, 칭찬과 존경 받고자함, 자기편의 추구와 자기합리화, 이기심과 자기애, 자기이익과 자기만족, 자기 의와 자기교만, 자기자랑과 자기주장, 자기입장과 자기변호, 자기건강과 자기외모 추구, 자아의식과 자기보호, 자기연민과 자기정죄, 편견과 선입견, 고집과 불순종, 걱정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 우울함, 낙심, 실망, 절망, 포기 등등)))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위와같은 회개로 주님이 주신 의의 세마포 옷을 점과 흠과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도록 깨끗이 빨아 우리의 영, 혼, 육의 거룩을 잘 지키고 보전할 뿐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같은 온전한 십자가 복음의 토대 위에서 사는 것이 신부 단장임을 알아야 한다.
사탄이 악한 생각을 집어 넣으며 옛사람의 죽었음을 부인케 하려고 할 때마다 그 생각을 즉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쳐서 생각에서 부터 승리해야 한다. 주님은 생각을 행위로 보시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놓칠 때 네 원수의 공격으로 죄에 넘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주님의 임재를 생명처럼 붙들며 죄에 넘어진 순간 즉시 넘어진 죄를 회개한 후 임재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임재 속에서 하나님이 부어 주신 하늘의 신령한 복들(주 성품 등)을 누리는 새사람의 삶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삶이 바로 우리가 받은 기적같은 구원을 잃지 않고 잘 보존하는 길이요, 휴거 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주님이 공중 재림 하시는 날에 이런 삶을 잘 누리는 거룩한 신부만 휴거될 것이다.
-(고) 김응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