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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캠벨 모건 간증

작성자시든들풀|작성시간26.06.22|조회수17 목록 댓글 0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심장이 산산조각 무너질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나는 거기 있었다.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붙든 채로!"

"공포가 얼굴을 드러낼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나는 거기 있었다. 공포에서 널 자유롭게 하면서!"

"환경이 고통으로 몰아갈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나는 거기 있었다. 네 고통은 나의 눈물이었다."

"어두워 앞을 볼 수 없을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나는 거기 있었다. 네가 갈 곳으로 인도하면서!"

"죽음이 최선이라고 여길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나는 거기 있었다. 삶의 목적과 안식을 베풀며!"

"폭풍이 둘러쌌을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나는 거기 있었다. 네 곁에서 팔로 널 꼭 안고서!"

"혼란에 빠져 방황할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나는 거기 있었다. 네 안에 평안을 채워 주면서!"

"원수가 둘러싸고 달려들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나는 거기 있었다. 너를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면서! 

그런데 내 아이야 내가 너를 부를 때 너는 어디 있었더냐"

"주님 죄송합니다. 너무 바빠서 듣지 못했습니다."
"네 회개를 들었다. 널 용서하마. 난 네 마음을 본다. 

네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날 불러라. 

난 네 곁에 항상 있을 것이다."

- 켐벨 모건

캠벨 모건은 1863년 12월 9일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인 

영국 남서부의 작은 도시 테트버리에서 출생했다. 

경건한 침례교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그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무디와 

그의 부흥집회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그의 영향으로 이미 13세에 첫 설교를 했으며 

15세 때부터는 정기적으로 주일 강단에 섰다. 

 

1883년부터는 

무디와 생키와 함께 영국을 순회하며 설교했으며 

이때부터 그는 탁월한 설교자이자 주해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무디가 죽기 3년 전인 1896년, 

무디는 캠벨 모건을 기억하고 그를 미국으로 초대했으며 

무디가 사망한 직후인 1899년에 그는 

무디 사역의 결과 몰려든 수천의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노스필드 컨퍼런스의 이사직을 수락하며 

수년 간 그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감당한다. 

 

그 후 영국으로 돌아온 캠벨 모건은 

1904년 10월 당시에 큰 명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리한 확장으로 재정적 위기에 빠져있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을 맡게 된다. 

 

이때 그는 탁월한 행정 능력으로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선교사업을 위한 십일조, 

금요 성경 강해 등의 현재 웨스트민스터 채플 시스템의 기초를 놓았다. 

매주 금요일 밤 웨스트민스터 채플에는 

그의 설교를 경청하기 위한 수천의 청중이 예배당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여러 요인으로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16년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사임하게 되고, 

그 후로는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 교수, 순회 설교가, 성경교사로서 다방면의 활동을 하게 된다. 

 

그는 1933년 웨스트민스터 채플에 다시 부임함으로써 

약 10여 년간을 영국에서 다시 사역하며 은퇴하게 된다. 

은퇴 2년 후이자 2차 세계 대전의 종결 직전인 1945년 5월에 사망한다. 

그는 탁월한 주해설교가였지만 

부흥설교가인 무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시에 자신의 후임으로도 탁월한 웅변설교가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를 알아보고 

그에게 웨스트민스터 채플을 위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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