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죽이는 입술만의 영접주의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참된 회개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눈물의 회개없이
"입술만의 영접주의"를 선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영약한 복음주의에 도취되어
영적 빈곤상태에 빠져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하여야 하는데 대가없는
"값싼 은혜주의"에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앵무새처럼 믿음을 고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된다는
"안일한 믿음주의"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하다면, 심령의 변화를 일으키는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상당수 교인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것은 언제나 예수님 혼자 죽은 십자가로만 여길 뿐,
정작 자신도...
십자가에서 죽어야 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됨의 대가를 지불하여야 하고,
예수님 혼자 죽는 십자가가 아니라,
자신도 같이 죽는 십자가가 생명의 신앙 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좇는 그리스도인이 참된 그리스도인 입니다.
자기 자아를 죽이지 않고는 절대로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단지 나의 구세주로만 영접할 것이 아니라,
나의 주인님, 나의 왕으로 받아들이고
삶 속에서 중심이 "내가 아닌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나라"를 포기하고
나의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야
그것이 참다운 믿음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상당수 교인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어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다"
라고 말하는 것에 안주하려 합니다.
즉,
"내가 큰 죄의 빚을 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보내주셨고
주께서 나의 모든 죄값을 대신 청산해 주셨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기만 하면
나의 모든 죄는 사함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연약한 복음주의에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 하십시요.
물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골고다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시어
우리들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신 구속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믿음으로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구원을 함부로 쉽게 재단할 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함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면서까지 죄를 절대로 용납 못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교인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뒤집어
씌우고는 십자가에서 가혹한 형벌을 그대로 가하셨습니다.
죄인인 인간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이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았거늘,
하물며 죄가 많은 인간들이 어찌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피할 수 있으리요.
이러한데도,
우리는 날마다 죄를 짓고 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교회에서 세례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날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시고,
타협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시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즉, 회개해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생명얻는 회개의 중요성"이
오직 믿음이란 단어속에 파뭍혀 경시되고 있습니다.
믿음 속에는 자연스럽게 회개가 내포되어 죄 사함 받은 것이라고
성경에도 없는 말을 서슴없이 우기는 경향이 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가르치시기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 15 )
사도 베드로도 우리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행전 2 : 38 )
즉, 성령님은 우리들의 회개를 통해 우리 안에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회개란 생명 얻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 하였으며
(고린도 후서 7 : 10 )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신다(로마서 2 : 5 )라고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회개하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 : 3, 요한복음 3 : 5 )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진실로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 거룩해진 믿음을
진정한 믿음으로 인정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 얻고 구원에 이르는 참된 회개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선물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임했다는 것은
성령님을 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우리들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철저히 깨닫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들의 죄를 철저히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기를,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디모데 후서 2 : 25 )
즉, 회개는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져야
참된 회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참된 회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목이 곧은 자는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로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도로 전서 5 : 5 )
성경은 분명히 회개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회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은혜"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권에 속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의 은혜는
각 사람의 삶의 방식과 자질과 환경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으로 주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이 정의한 참된 회개는
죄를 끊고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마음과 행동의 철저한 변화를 뜻합니다.
죄를 혐오하고 증오하며 멀리하고
세상으로 향했던 마음을
온전히 예수님께로 180도 확 돌아서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를 한 자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항상 조심 합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이 깨끗케 되기를 원하며
마음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기를 갈망합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변화시키고
죄로부터 나를 건져주실 수 있음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곧바로 죄가 엄습함을 깨우칩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그에게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죽이는
"입술만의 영접주의"에 머물지 말고,
생명 얻는 "회개의 은혜"를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해야 합니다.
죄로부터 돌이키겠다는 결단의 의지와 함께
내 자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때가 되었다 여기시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어 죄를 깨닫는
회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마침내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이사야 49 : 8)
그리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를 깨닫고 진실로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나 거룩해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뜻대로 순종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회개하는 자)가
되어서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천국)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요한 계시록 22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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