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 어리석은 세대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눅9:23)
분명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사실을 언급함에 있어 메시야 사역의 본질이 십자가 희생에 그 촛점을 맞추고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제시하신 제자로서의 조건은 먼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국 예수가 먼저 그리스도로서 해결해야 할 메시야로서의 사명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위치와 사명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영광의 광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은 하나님의 그림자를 대변해주시는 하나님은 신으로서, 보잘 것 없고 지옥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향한 아가페적인 사랑의 완성을 이루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지고가야 할 죄악의 십자가를 몸소 지시고 갈보리 언덕길을 오르셨고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될 그 순간에 죄없이 그 십자가에 매달리셨으며 내 손과 발이 대못에 박혀야 할 육신의 처참함도 대신 지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면서까지 내가 흘려야 할 물과 피를 거듭 흘리셨고 내가 마셔야 할 쓴 잔도 기꺼이 마셨습니다.
우리의 실상과 체질은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찬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살면서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싫고 흉하다고 해서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도 지고 가는 것을 꺼려 합니다.
이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교인수가 많고 목회자가 천지부지기수이건만 2000년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지고 가신 십자가의 의미를 상실한 채 그저 하루하루 소망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 산재해 있는 인생의 십자가는 반드시 인생들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짊어질 인생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부모자식간일지라도 각자 지고 갈 십자가는 마땅히 있는 법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기 싫다고 해서 타인에게 대신 지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는 나의 몫이며 상급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드문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고 가신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후부터 지고 가지 않은 십자가는 없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지고 가실 십자가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회피하셨습니까?
그런데 그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지시지도 않을 십자가였습니다.
한마디로 불법의 십자가였습니다.
바로 우리!
우리의 죄악 때문에 구원의 반열에 등급시키기 위하여 대신 지신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여기 개인으로서 반드시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부모로서 또는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아들로서 딸로서
고부로서 교회 직분자로서 반드시 따라오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무겁다고 해서 내팽개친다면 나 외에 대신 짊어지고 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종류도 여러가지이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처럼 인류를 위해 지신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나만의 십자가가 파도처럼 밀물처럼 밀려올 때가 많습니다.
밀물처럼 왔다고 해서 고난이 금방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법이 아니기에 산처럼 버티고 서 있는
나만의 십자가는 정말 눈물나게 합니다.
이는 오늘날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맘몬神 일 수도 있으며 잘못된 가치관이나 내 죄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으며 잘못된 신앙의 고리를 끊지 않고 지내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것은 내 잘못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특히 성도가 물질이 궁핍한 것은 내가 게으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옛말에 부자는 부지런해서 재물을 쌓는 재미를 누리지만
가난한 자는 게으르고 나태해서 재물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 (잠6:6)
이 말씀을 묵상하노라니 개미와 베짱이의 동화가 생각납니다.
아마도 이 동화를 안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베짱이는 한 여름동안 노래만 부르다가 개미가 땀흘려 일하는 모습을 보고 훈계까지 한 녀석입니다.
한 마디로 배짱아는 게을러서 겨울에 먹을 곳간에 양식을 부지런히 채우지도 않고 무식하게 땀흘려 일하는 개미를 무시한 결과로 게으름의 대가로 그 결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개미와 베짱이가 주는 교훈은 한마디로 부지런한 자만이 풍요롭게 산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3:10)고 선포하였습니다.
인생은 개미와 같이 부지런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베짱이와 같이 게으른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개미와 같은 부지런한 사람은 땀흘리는 노력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행위로 인해
응당 수고한 댓가의 지불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126:5-6)
이것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진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慢忽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갈5:7)
여기서 만홀이란 한자어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심지 않고선 無에서 有를 창조하신 하나님조차도 역사할 수 없게 만드는 역설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게 하시는 악한 종의 비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25:25-26)
한달란트 받은 악한 종이 일하지 않은 것은 결국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자기는 심지도 않고 묻어두면 되는 줄로 착각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은 심지도 않은데서 거두게 하시는 분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물론 교회조차도 무조건 조건적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마치 자기는 하나도 노력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이 뭐든지 해결해 주시는 '도깨비 방망이'라는 해결사로 생각하고
예수만 믿으면 현세에서 복을 받고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잘못된 신앙풍토가 만연해 있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신학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를 통해 인생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필연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교훈을 깨닫는 자라면 분명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의 진리를 하나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3:6-8)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듯이 "하늘은 스스로 일하는 자를 돕는다" 는 뜻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하늘이
결국 알아준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도 땀흘려서 제 그릇을 찾아가고 자기 몫을 누리는데 하물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올바른 신앙이 아닌 잘못된 믿음으로 심지 않고 거두길 바라는 도둑심보라면 이제라도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땀흘리지 않고 일하지 않는 악한 종에게는 일점일획없이 " NO! " 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는 기도를 심지 않고 기도가 응답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말씀을 행하지 않고서도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뿌리지도 않고도 좋은 열매를 거두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은혜를 사모하지도 않으면서 은혜받기를 간구하는 마음입니다!
애통해 하지도 않으면서 회개를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심지도 않으면서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베풀지도 않으면서 받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세상풍조에 휩쓸려 살면서도 축복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거룩한 척 하는 마음입니다!
잘못된 것을 심으면서도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입니다!
가증스런 마음으로 주여!주여! 찾으면서도 천국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분명 잠19:3절의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굳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이 세상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고 가신 그 십자가가 아닐지라도 내가 지고 갈 십자가는
끝까지 지고 가야 합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 ' 는 옛속담도 있듯이 남의 십자가가 비록 더 작아보일진 몰라도 내 십자가보다 더 큰 십자가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십자가가 무겁고 거추장스럽다고 해서 내 팽개치고 남이 대신 지고 가길 바라는 마음은 결코 온전한 믿음 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기 싫어하는 이 세대에 나의 십자가를 달게 지고 가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교회나 지고 가야할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이 적절한 때에 찾아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형벌을 대신 지신 십자가앞에 내려놓게 하십니다.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십자가를 내려놓게 하실 때까지 순종하고 나의 십자가를 달게 지고 가는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없는 십자가가 있을 수 없듯이 우리 또한 희생없는 십자가란 있을 수 없습니다.
희생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때에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실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 곁에 오시게 하실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희생은 자만입니다!
십자가 없는 노력은 무너짐의 앞잡이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나의 신앙이 반석위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상급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