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그린 세월
저만큼 사라진다. 노을 속으로 사라진다. 가물가물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기억에서 점점 사라진다. 마음에서 서서히 지워진다. 때깔 곱던 단풍잎 낙엽처럼 휘날리다가 어디에 쌓일까. 사라졌던 것들이 뜬금없이 그리움으로 뾰족뾰족 일어선다. 빨간 꽃이라서 아름답다. 흰 꽃이라서 아름답다. 노란 꽃이라서 아름답다. 뒤엉켜 알록달록 아름답다. 큰 꽃이 아름답다. 작은 꽃이라 아름답다. 자연스럽게 뒤섞여 조화를 이루며 하나 되어 아름답다. 굳이 이름을 묻지 않고 애써 구분하지 하지 않아도 꽃이기에 아름답다. 보기만 해도 좋다.
자동차 굉음이 들린다.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새들의 감미로운 소리가 들린다. 여울물소리가 들린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비둘기 구구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잽싸게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사람소리, 공해소리, 세상소리가 몰려온다. 같은 듯 다른 것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다른 듯 같은 것이 반복되면서 귀에 익고 눈에 익다. 나름대로 나누고 보태고 더하고 빼면서 마음을 훈련시키며 다른 뭔가를 떠올린다. 낡았다고 버려지고 새롭다고 챙기면서 열리는 세상이다. 흉내를 내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한 발짝 나아간다. 그렇게 흐트러지고 모아지면서 만들어지는 공통분모가 있다. 거르고 걸러지면서 더는 낯설지 않은 익숙한 모습으로 다정다감하게 다가선다. 그것이 체험으로 값진 대가를 치룬 것일 수 있고 우연찮은 것일 수도 있다. 끝내는 흘러가고 지나가는 것 같아도 마음에 담겨서 그려지는 것이 있다.
그런가 하면 세월은 눈치가 없는 것인지, 시침 떼는 것인지, 옆을 보는 일 이 없고 뒤를 돌아보는 일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가고 있다. 어쩌다 아는 체해도 좋으련만 때로는 야속하기까지 하다.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서로 무관하다는 듯 한눈파는 일없이 고지식하게 제 길만 가는 외곬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누구에게나 편파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다소 불편해도 공평하면 참을 수 있어 투덜거리기보다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다만, 빠름도 늦음도 없이 항상 같은 속도인데 받아들이는 감정만 흔들리고 있다. 오늘도 마음에 세월을 들여놓고 세월을 찍어 그림을 그린다. - 2019.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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