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에 내린 폭설
지난겨울은 최근에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여기저기서 수도계량기가 동파되었다고 아우성이었다. 아주 지긋지긋할 만큼 지루하고도 잔혹한 겨울이었다. 가까스로 긴 터널을 벗어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다. 절기상 춘분이면 자연스럽게 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밤사이 폭설이 기습적으로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생각지 않은 눈꽃이 만발하였다. 그것도 금년 들어 가장 많은 눈이라 할 만큼 수북하게 뒤덮었다. 기온마저 갑자기 뚝 떨어져 으스스하니 겨울로 되돌아갔다. 엊그제만 해도 두툼한 한겨울 옷이 좀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밤사이에 완전히 헛소리처럼 되었다. 매서운 꽃샘추위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가을 김장을 담글 때 빨갛게 버무린 양념을 배춧잎 하나하나 젖혀가며 골고루 넣는 것보다 더 빈틈이 없다. 나뭇가지마다 빠짐없이 하얗게 뒤덮었다. 봄비가 온다더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한겨울로 돌변하였다. 그런데 그 많은 눈이 하루 동안에 다 녹아버렸다. 그 수려하던 눈꽃의 설경은 자취를 감추었고 산수유나무 꽃 피어 노란 웃음을 실실거리고 울타리 쥐똥나무는 뾰족뾰족 움트며 목련은 봉오리 하얀 속살을 터트렸다. 그렇게 많은 눈이 왔어도 나무가 겨울눈을 맞고 꽁꽁 얼어붙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대세가 봄으로 기울었음을 아는지 나무는 봄과 눈이 맞아 겨울을 거침없이 밀쳐내고 있었다. 꽃샘일 뿐이라고 몰아치면서 일축했다.
그래, 춘분이면 아무래도 겨울이라기보다는 봄은 봄이었다. 잠시 헷갈려 착각했던 것이다. 뒤늦게 눈이 몰아쳤다고 계절의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갈망하는 봄의 도도한 물결이 사방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날씨도 더 이상은 반기를 들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오히려 봄기운이 더 강해지며 푸근해졌지 싶었다. 겨울의 뒤끝이 보기에도 밉살스러웠다. 그만큼 겨울로서 누릴 만큼 누렸으면 깨끗하게 승복할 일이었다. 겨울로서 며칠 더 행세해 보겠다고 강짜를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동계올림픽도 잘 치루지 않았더냐. 자연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부끄러움을 알아라. 뒤끝이 깨끗해야 아름답다고 하는 말을 잊지 않았겠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 잘 하는 것이 있으면 못하는 것도 있다. 한 쪽만 있으면 의미가 없다. 정반대이면서 버팀목처럼 서로 떠받들어야 그 존재를 분명히 하게 된다. 함께 공존을 하고 공생을 하는 셈이다. 좋은 것만 있으면 나쁜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못하는 것만 있다면 잘하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오로지 한 가지만 있으면 비교할 수가 없는 일상일 뿐이다. 그냥 거기에 있는 변화라고는 없는 바위와 다를 바가 없다. 겨울이면 겨울이고 봄이면 봄이다. 비도 아닌 것이 겨울도 아니면 어쩌자는 것인가. 박쥐처럼 어정쩡할 셈인가. 눈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비도 아닌 진눈개비가 되고 싶은 건가.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어질어질하다. - 2018.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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