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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유화

[스크랩] [미국 미술] 앤드류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

작성자미샘|작성시간11.10.23|조회수409 목록 댓글 0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연 중에는 유난히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내겐 아이의 절친한 여고 시절 친구 하나가 그렇다. 우리 집이 학교 앞에 있다 보니, 아이의 친구들이 더러 쳐들어오곤 했었다. 그때마다 이 친구는 남아서 딸아이의 좁은 침대에서 함께 자곤 했다. 그녀는 이혼한 부모님과 어릴 때부터 떨어져서 자취를 했다. 그래선지 또래에 비해 조숙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우수와 침묵이 면사포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 애잔한 분위기가 늘 내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나는 그녀에게서 자주 내 어린 날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더 자주 안아주고 말을 붙이곤 했지만 딸아이와는 이야기를 잘 한다는데, 내게는 조개처럼 꼭 다문 입술을 열지 않았다. 그저 배시시 웃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독서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주말이면 꼬박꼬박 성당의 미사에도 참여하고 있어서 내심 다행스러웠다. 수능을 치고, 그녀는 부산에서, 딸아이는 서울로 진학하느라 친자매처럼 붙어 다니던 둘은 헤어졌다. 그게 벌써 4년이 지난 일이다.

 

며칠 전, 서울에 있는 딸아이에게 갔다가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올라 온 지가 두어 달 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는 그때, 멋모르고 잘됐다고, 서로 얼마나 위로가 되겠느냐고 좋아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능점수에 맞추어 진학한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휴학계를 내고 알바를 하던 중에 한 남자를 만났단다. 부모에게조차 마음을 닫고 산 지 오랜 그녀의 외로움은 뼛속 깊었다. 그러다보니 남자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나쁜 남자는 알바해서 모은 그녀의 돈까지 톡 털어 가버렸다고. 그녀는 크게 상처를 받았다. 돈을 빼앗긴 것도 충격이지만 돈보다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게 더 무서웠다고. 그 나쁜 남자가 계획적으로 접근한 걸 어렴풋이 느꼈는데도 자기 외로움이 너무 큰 나머지 그를 거부할 힘이 없었노라고 했다.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 끝에 그녀는 서울로 올라와 곧장 알바 자리를 구하고 이사를 했다.

 

어느 날, 딸아이가 그녀와 만나 저녁을 먹는데, 가방 속에 무슨 약 봉투가 있더란다. 가만히 보니까 신경정신과에서 받은 약이더라고.

딸아이가 물었다.

"너 정신과 치료받니?"

"응"

"의사가 뭐래?"

"우울증이 좀 심하대. 약 먹으면 괜찮아진대."

딸아이는 어쩐지 불안하고 두려운 생각이 밀려들었단다.

"너 나쁜 생각하면 나한테 죽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친구가 소리 없이 눈물을 후두둑 떨구는데 가슴이 아파 죽는 줄 알았단다.

"엄마 서울 올라오는 거 알고 있는데 같이 만나기로 해놓고 아무리 전화해도 안 받아. 문자도 씹고. 겁이 나. 이런 적이 없었거든."

딸아이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고요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본 앤드류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1948, 템페라, 81.9×121.3㎝)는 내겐 그 아이의 세계를 보는 것처럼 쓸쓸한 그림이었다. 그림 앞에 가만히 서서 화면 속의 텅 빈 공간을 바라보노라니 어쩐지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슴속에서 휑하니 찬바람이 일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극사실의 세밀한 묘사가 주는 고요함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드넓은 평원에서 '빛바랜 대합조가비 같은' 분홍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지평선 위에 선 집을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원피스 밖으로 드러난 여인의 팔은 뼈가 앙상하게 보일 것처럼 연약하다. 그녀는 그 가녀린 팔로 땅을 짚고 일어나 언덕위의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녀의 가녀리고 뒤틀린 몸으로 그곳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무력해 보인다. 그녀는 거기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다.

그녀가 자신이 사는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

 

이 여인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올슨이다. 올슨가는 앤드류 와이어스가 여름을 보낸 곳에서 구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곳에는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한 크리스티나와 자폐증인 남동생이 살고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앤드류 와이어스의 부인이 된 베티의 오랜 친구였다. 그녀는 수 년 동안 집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두 남매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이고도 무거운 생의 굴레를 느꼈다.

 

들판 위를 기어가는 크리스티나의 고독과 우울

 

앤드류 와이어스는 올슨 집 2층 방을 작업실로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녀가 들판을 기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자신의 내면을 보았다. 섬약한 몸으로 오랜 병고를 이겨내야 했던 자신의 슬픔과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깊이 사색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왜 그림을 그려야하고 또 무엇을 그려야할지를 깨달았다. 그는 크리스티나의 고독과 우울속에서 조용하고 관조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는 크리스티나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끼고, 당신을 그리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는 몇 달 동안 걸려서 넓은 평원의 풀이며 멀리 지평선에 닿아있는 농가주택, 분홍 원피스를 입은 여인까지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냈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이 가진 특유의 고요함이 창조되었다. 그는 그녀의 심리적인 긴장감과 불안을 나타내기 위해서 원근법을 사용했다. 또 구도는 비스듬한 각도로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게 하고 대상은 단순화시켰다. 크리스티나의 고독과 고립감에서 오는 애수어린 분위기를 시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묘사해냈다. 마침내 '크리스티나의 세계'가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948년 내가 이 그림을 그린 이후, 지금 나는 적어도 한 주에 한 번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늘 알고 싶어 하는 전 세계의 애호가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크리스티나의 세계'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림이 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일화다. 사람들은 그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읽어내곤 했다. 앤드류 와이어스는 이후 1968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사랑하지 않는 여인을 그리겠나?"

 

크리스티나의 사후, 1970년부터 85년까지 15년 동안 그의 모델이 되어준 여자는 헬가였다. 그는 헬가를 모델로 그녀가 38세에서 시작해서 53세에 작업을 끝마칠 때까지 무려 246점이나 되는 작품을 철저히 미공개로 그렸다. 그의 부인조차 이 사실을 전혀 몰랐을 정도였다. 85년에 누드화와 초상화 등의 헬가 연작이 발표되고, 타임지의 표지화에 헬가의 누드가 실리자 미국 화단뿐만 아니라 매스컴에서까지 대단한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연인들'은 털이 빳빳한 평붓에 최소한의 물감을 묻혀서 종이에 색을 부분적으로 칠하는 방법으로 그린 드라이 브러쉬(Dry brush)기법으로 그린 최고의 작품이다. 햇빛과 바람이 순간적으로 정지해있는 나뭇잎 하나와 그 속에 등받이 없는 의자에 꼿꼿이 앉아 벽에 비친 보이지 않는 연인을 향해 고개를 돌린 모습의 누드화이다.

 

작품 제목인 '연인들'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사람들의 호기심은 꼬리를 물었다.

 

기자가 앤드류 와이어스에게 물었다.

 

"당신은 모델을 사랑했는가."

 

그는 대답했다.

 

"사랑하지 않는 여인을 그리는 화가가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헬가를 사랑한 것은 그림의 대상으로서 뿐이며 그 이상은 아니다."

 

헬가는 그의 이웃에 사는 독일계 여성이었다. 15년 동안 이웃은 물론이고 가족들조차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작업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작품이 공개되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의 예술을 위한 철저한 장인정신은 어쩌면 논리나 분석적 사고가 아니라 때묻지 않은 예술가적 순수성에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대중성과 예술성을 두루 획득한 미국 국민화가

 

하버드대학에서 그에게 순수미술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을 때였다.

 

"대학은 어디서 다니셨습니까?"

 

학장이 물었다.

 

"나는 학교란 곳을 다닌 적이 없습니다."

 

학장은 거의 졸도할 지경으로 화들짝 놀랐다.

 

그는 무학이었다. 분석적 사고를 강요하는 학교 교육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졌던 그의 아버지는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미술을 가르쳤다.

 

생각해보면 앤드류 와이어스 만큼, 동시대 어떤 화가보다 더 축복받은 일생을 살다간 화가도 드물 것이다. 30대에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헬가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부와 명예까지를 모두 얻은 화가. 젊어서는 병약했으나 바로 지난해에 91세의 나이로 자택의 침대에서 잠든 상태로 조용히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면서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2006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가진 회고전에서도 사상 최대의 관객이 들었을 정도로 그는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에서 인정받은 화가로 우리들 가슴속에 남았다. jul6090@hanmail.net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Wyeth, 1917~2009)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채즈퍼드에서 출생. 일러스트레이션 화가인 N C 와이어스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에게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앤드류 와이어스 집안은 3대가 모두 화가인 걸로도 유명하다. 그는 처음에는 수채화를 그렸으나 수채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느낌이 템페라화에 있다는 것을 알고 1948년에 그린 템페라화인 '크리스티나의 세계'로 유명해졌다. 86년에 발표한 헬가 시리즈로 미국을 대표하는 극사실주의 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채즈퍼드에 와이어스 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브랜디와인리버 미술관이 있음.

 

출처-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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