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야간순찰), 1642>, 렘브란트 판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363 X 483 cm
작성자박서영작성시간10.10.11조회수236 목록 댓글 4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야간순찰)> 이라는 작품은 렘브란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손꼽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역동적인 힘과 드라마를 잘 나타내주었기 때문이다.
즉, 빛과 색채의 인상적인 대조, 각 인물들에 대한 개별 묘사, 복잡한 구성을 아우르는 그림 전체의 통제력으로 인해
이 시기는 렘브란트의 경력에서 최고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위의 그림은 그룹 초상화라 할 수있는데, 렘브란트는 주로 초상화를 즐겨 그렸다. 렘브란트는 역사화가가 되기를
바랬지만 개신교 공화국이였던 네덜란드에는 종교나 역사, 신화 주제의 대작을 주문할 교회나 궁정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수요자는 네덜란드의 시민, 즉 상인으 중심으로 한 중산계급이였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렘브란트는 상인을 중심으로 한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모델은 바닝 코크와 부관인 반로이텐부르흐, 그리고 16명의 부대원이였으나
렘브란트는 이들을 정확하게 하나하나 묘사하기 보다는 단체사진, 혹은 기념사진 찍듯
같은 복장으로 나란히 그리지 않고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로 그렸다. 즉, 34명의 인원 중 16명만이 실존인물 일 뿐 나머지는 다 가상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부대원 외에 십여 명의 외부인과, 민병대의 상징인 닭을 매단 소녀와 같은 우의적 인물을 추가하기도 하였으며
저마다 다른 복장의 대원들이 다른 동작으로 화면 뒤에서 앞으로 걸어나오면서 대열을 정비하는 구도를 화면에 담았다.
그는 이 행렬의 활력넘치고 생동력 있게 나타냈으며 강렬한 빛으로 화면을 정돈하였으며 그림 속에 비춰진 오후의 빛은
대원들의 긴장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깃발을 든 사람 바로 뒤에 키 작은 남자는 바로 렘브란트 자신의 얼굴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야간순찰을 그린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다기 보다는 한 낮의 즐거운 행진을 묘사한 것이다.
이가 야간순찰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유는 시민군이야간에 순찰을 하기 시작하고 그림에 노란 유약이 칠해지면서 더욱 어둡게 변한 1800년경이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인생을 최고의 정점으로 평가받게 하는 작품이지만 내리막길로 치닫게 한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우연히 사랑하는 아내 시스키아가 죽던 해에 그려졌다. 삼십대 초반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아내의 죽음은 렘브란트에게 일어난 수 많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1642년 렘브란트의 예술과 삶에 있어서 불운이 시작되었는데 후에는 이 그림이 수차례 도난당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