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의 기원*
먹[墨]의 시초는 중국의 한대(漢代) 초라는 정설이 있다. 붓은 진대(秦代)의 몽염(蒙恬)이, 종이는
한대의 채륜(蔡倫)이 발명하였다고 하나, 먹의 발명자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붓을 쓰기 시작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발명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먹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문자를 골편(骨片)이나 금석(金石)에 새겼다.
이를 갑골시대(甲骨時代)·금석시대라 한다. 그 후 인지(人智)와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문자의 사용범위가 넓어지고,
갑골문이나 금석문만으로는 기록하기가 어려워지자 대나무 조각이나 나뭇조각 또는 천 등에 문자를 쓰게 되었다.
이때를 죽간시대(竹簡時代)라 한다.
당시 죽간에 쓰던 것은 붓이 아닌 죽정(竹挺)이란 것으로 옻[漆]을 묻혀 썼다.
그래서 그 문자의 획이 마치 올챙이 모양과 같다 하여 죽첩과두문자(竹牒蝌蚪文字)라고 하였다.
공자나 맹자가 쓴 글씨도 모두 이 죽간칠서(竹簡漆書)였다.
견백(絹帛)이란 천(명주)은 종이보다 다소 먼저 발명되었다. 죽간시대에 이미 명주에 글씨를 썼으며,
이 글씨는 붉은 단서(丹書:붉은 광석이나 돌가루를 반죽하여 그것을 붓에 묻혀 쓴 글씨) 아니면 검은 묵서(墨書)였다. 이때 묵서의 원료는 자연산 석날(石靭)이라는 일종의 광물이었다. 석날이란 오늘날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黑鉛)의 일종인 듯하며,
거기에 옻을 섞어서 썼던 모양이다. 그 후 문화가 발달됨에 따라 점차 그을음, 즉 연매(煙煤)를 옻 대신 썼다.
이어서 아교풀과 섞어 쓰게 되면서 드디어 제묵(製墨)의 단계로 옮겨지게 되었다.
전한(前漢)시대에도 오늘날과 같은 먹은 만들지 못한 듯, 당시에 쓰였던 얇고 편편한 벼루와 마묵구(磨墨具)가
낙랑채협총(樂浪彩瑩塚), 그 밖의 한대(漢代)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25∼220년 후한(後漢)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오늘과 같은 먹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은 종이의 발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처음에는 송연묵(松煙墨)을 생산하였고, 유연묵(油煙墨)을 사용하게 된 것은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에 이르러서다. 당시 남당(南唐)의 후주(後主)가 먹의 사용을 장려하여
이정규(李廷珪)와 같은 유명한 묵공(墨工)이 나왔고, 그 후 송(宋)·원(元)·명(明)·청(淸) 등으로 이어져
오면서 많은 묵공이 배출되고 일품(逸品)이 생산되었다.
한국의 제묵 연혁을 살펴보면, 고대부터 먹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위만·낙랑시대에 중국의 것을 본받은 것이
사실인 듯하며, 신라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정품(精品)의 먹이 생산되었다.
신라의 양가(楊家)·무가(武家)의 먹은 모두 송연묵으로서 그 품격(品格)이나 질이 매우 좋았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조선묵(朝鮮墨)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일본에서도 먹은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그들이 먹을 처음으로 만든 것은 고구려의 담징(曇徵)이
제지법과 제묵법을 610년에 전해준 데서 비롯되었다. 일본인 자신들도 이 사실을 시인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신라의 먹을 수입하여 매우 소중히 여겼다 한다.
*먹의 종류*
먹에는 크게 송연묵과 유연묵으로 나뉜다.
송연묵은 소나무를 태워 얻은 그을음으로 만들며 약간 푸른빛이 돌고 그을음의 입자가 조금 거칠다.
유연묵은 식물의 씨앗에서 얻은 기름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들며 약간 붉은빛이 돈다. 태울때 심지의 길이를 이용하여 입자가 아주 가는것을 얻을수 있다. 유연묵은 송나라때 등장하여 이른바 수묵화의 발묵과 파묵등 여러가지 기법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그이유는 유연묵에 극 미립자의 그을음이 많기 때문에 삼투압과 표면장력현상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송연묵시대인 당나라때의 그림을 보면 피마준이나 오대당풍식의 선 위주의 그림을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송연의 그을음이 유연보다 극 미립자를 많이 함유하고 있지 않아서 다양한 기법을 적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그당시에는 숙지를 쓰는 것이 보편화되어있었기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요즘과 같은 본격적인 수묵화를 선보인 것은 미불이라는 걸출한 화가 덕분인데 미불은 송연묵대신에 유연묵을 쓰고 숙지 대신에 생지를 사용하였다. 그당시로 봐서는 이것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으로 미불이 각각의 재료의 특성과 사용법에 얼마나 정통하고 있었는지 알려주는 일화이다.
현대의 대부분의 먹은 유연먹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위에서 처럼 식물의 기름으로 먹을 만들기보다는 석유찌거기를 태워 얻은 그을음으로 만든다. 값싼먹은 폐차의 타이어등을 태워얻은 카본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먹은 서화에 쓸수없다.
제대로된 유연먹은 너무 고가여서 쉽게 구입하기가 힘들다. 일본 고매원의 홍화먹이 대표적인 유연먹이다. (고매원 먹이 꼭 좋다는 것은아니다)
현대의 송연먹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얼만큼의 소나무를 태워야 먹이 될지. 소나무 값이 얼만데 그것으로 만든 먹은....
대부분 유연에 쪽을 섞거나 푸른 안료를 섞었다고 봐야 한다. 청먹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인데 이것 또한 상상초월하는 고가이다.
또한 칠연묵이라는 것도 있고 오동나무 기름으로 만든 동연묵도 있고 주문해서 만드는 고가의 먹도 있으나 여기에서는 현실적인 먹만 다루기로 한다.
청먹이 푸른기운이돌고 유연먹이 붉은 기운이돌아서 둘을 반반씩 갈면 회색빛이도는 먹물이된다.(이것은 담묵이었을때를 말한다. 진하게 갈면 물론 검은색이된다) 작가가 알아서 사용할 수 있다.
청먹은 여름풍경그릴때 좋고 유연먹은 바위를 그릴때 좋다고 하는데 사실 그리다보면 청묵은 별 필요가 없다. 청먹이 담묵일때 좋고 유연먹이 농묵일때 좋다고들 하는데 거의 유연먹으로 그리고 담채를 하는경우가 많기때문에 굳이 청먹을 따로 구입할 필요는 없으나 다양한 먹빛을 원하는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쯤은 구입할 필요도 있다. 중국산 먹은 청묵이든 유연먹이든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교의 질이 좋지않으며 우리나라와 기후가 맞질않아서 조각조각 다 갈라져 버리는 수가 허다하다. 꼭 쓰고싶다면 스카치 테잎을 먹의 몸통에 감아서 사용하면서 조금씩 떼어내면서 사용하면 어느정도 갈라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것이다.
중국의 좋다고하는 먹을 이것저것 사용해보았으나 좋은점도 있었으나 총괄하여 평가한다면 그리권할만 하지 않았다.
[출처] 먹의 종류|작성자 월든
*농묵이란 먹을 진하게 갈아서 그리는 것이고 담묵이란 먹의 농도를 흐리게 해서 처리하는 방법이다.
*발묵이란 농묵이 담묵이나 물기를 따라 번지고 퍼지는데 따라 나타나는 변화를 이용하는 기법이다.
*파묵이란 담묵으로 윤곽등을 일차적으로 칠한 다음 농목으로 덮어 윤곽선을 깨트리거나 한계를 분명히 하는 법이다.
*삼투압은 저농도에서 고농도로가는것입니다. 즉 세포가 필요한 물질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방법
*표면장력현상은 액체의 자유표면(自由表面)에서 표면을 작게 하려고 작용하는 장력.
* 먹만드는 방법 *
먹을 만드는 주요 재료는 그을음, 아교, 향료 등이다.
먹을 만드는 주요 성분은 극히 작은 탄소 입자이다. 원형의 탄소 입자는 그 크기가 고를수록 좋은 먹이고 입자가 불규칙하면 좋은 먹이 되지 않는다. 먹을 만들 때는 반드시 아교로 응고시키는데, 아교는 동물의 가죽 또는 연골을 삶은 즙으로 만들기 때문에 냄새가 좋지 못하다. 그래서 먹에 향료를 섞는다.
그을음의 채집방법은 등유를 연소시킬때, 아주 작은 화염을 만드는데 이때 유리를 사용하여 계속되는 화염을 덮으면 앞쪽으로 상승하려는 연기는 유리마개에 부착된다. 이런 것을 채집한 것이 곧 그을음이다.
그을음의 좋고 나쁨은 화염과의 거리로 말미암아 결정되는데, 즉 화염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은 그을음을 얻을 수 있게 되며 반대로 가까울 경우는 질이 좋지 못하다.
그을음은 기름의 품질과 종류에 따라 먹의 질이 달라진다. 채자유, 호마유, 춘유, 대두유에서 채취한 그을음이 좋고, 소나무 기름에서 채취한 송연묵은 먹중에서 가장 선명한 광채를 가지고 있는 고급품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소나무 원료가 부족하고 게다가 그을음을 채집하는 데 손이 너무 많이 가므로 제조하지 않고 그 대신 중유, 경유 등 공업유를 이용하여 먹을 만든다.
아교는 접착제로서 그 성분은 단백질이다. 합성수지라는 접착제를 만들어 내기 이전에는 아교를 사용하여 접착제로 썼다. 아교질은 야수나 물고기의 뼈, 가죽에서 나오는 액체를 건조한 후에 가공한 것이다. [묵경]에 의하면 "아교는 먹의 질을 결정시켜 주는데, 만약 좋은 아교가 없다면 아무리 조은 그을음이라 할지라도 우수한 먹을 만들 수 없다."고 하였다.
먹을 갈 때에 매끄럽거나 혹은 매끄럽지 않은 감각은 아교가 그을음을 억압하는 관계와 서로 조화된 관계에 달려 있다.
이 아교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향료를 섞어 쓰는데, 예로부터 묵향은 고귀한 향취로 사람을 그윽하고 심원한 세계로 이끌어낸다. 고대에는 천연향료를 사용하여 아교 냄새를 제거했고, 향료 중에는 사향노루의 사향을 최고로 여긴다.
그을음과 아교를 섞는 것을 연묵이라 한다. 연묵은 밀실에서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작은 탄소입자인 만큼 쉽게 바람에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또 그을음과 섞여 있는 혼합물을 제거하기 위하여서는 체로 쳐서 걸러낸다. 그런 연후에 약한 화로 위에 송판을 놓아 반죽한다.
요즘은 정연기가 있어 대량 반죽이 가능해졌지만 옛날에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반죽했다. 목판위에 보통 그을음 600∼700g, 아교 120∼140g의 비율로 반죽한다.
반죽하는 시기는 한랭한 늦가을이나 겨울철이 좋다. 묵장(먹으 만드는 사람)이 오랜 경험으로 비비고 문지르고 여러 번 반복하여 먹을 만든 다음 마지막으로 틀에 넣어 건조시키면 완성된다. 먹의 모양은 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먹의 문양, 글씨 등은 틀 속에서 만들어진다. 모형(틀)에 먹을 넣을 때는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가 적당하다. 만약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먹이 물러져 버리고, 또 낮으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모형에서 뜬 먹은 재 속에 넣어두어 완전히 물기를 제거해 낸다.
그 다음 먹을 짚으로 엮어서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매달아 건조시킨다. 다 마른 먹이 완전해지기까지는 30∼50년 세월이 지나야 좋은 먹색이 나는 먹을 만들 수 있다. 완전히 마른 먹은 광을 내고 금분잊나 은분 또는 청분, 붉은 색으로 문자나 문양을 도안한다.
*먹의 기원과 역사*
먹의 기원은 은(殷: B.C. 16세기~11세기) 시대의 백도자기(白陶磁器), 옥기(玉器), 그리고 갑골문(甲骨文)에서 발견된 주서(朱書)와 먹의 흔적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은 시대에는 목탄(木炭)이나 석묵(石墨), 석묵을 물에 녹인 묵즙과 단사(丹砂)를 제련시켜서 만든 주(朱)액 등을 사용한 것이고, 주(周: B.C. B.C. 8세기~221) 시대에는 대나무 조각(竹片)에 칠묵(漆墨)으로 글자를 썼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고형체로 된 먹의 가장 오래된 유물은 B.C. 2세기 중엽의 것으로 추정하는 송연묵(松烟墨)으로서 한시대의 묘에서 잘게 부서진 상태로 출토되었다(김민정, 1987). 한 대의 〈후한서 後漢書〉와 〈동관한기 東觀漢記〉에는 2세기 초인 화제(和帝)때 각국에서 한나라에 먹을 헌납했고, 나라에 대사가 있을 때면 황제는 황태자나 고관, 학자에게 먹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박상균, 1991 : 778-779), 송대(宋代)의 문헌 〈묵경 墨經〉에는 한대에 먹을 소나무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김민정). 후한 허신(許愼)의 〈설문〉에서 먹이란 검은 것인데 송연으로 만든다.(정종미, 2001 : 138-139, 재인용)고 하였다. 한나라의 송연묵은 중국 산시성(陜西省) 유미(鄃麋)지방과 중난성(終南山)의 소나무가 사용되었다(정종미, 2001: 135).
위진(魏晉; 220~316년) 시대에는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묵환(墨丸; 둥근먹)을 만들었고, 이 묵환을 물에 타거나 벼루에 갈아 먹물을 만들어 썼으며(이겸노, 1989), 석묵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김민정, 1987).
당(唐)말에 해초(奚超)와 그의 아들 이정규라는 사람이 송연먹을 제조하였다고 하는데 한대부터 당까지는 송연묵이 제조되었다.
송대에 이르러 동유(桐油)에서 채취한 유연으로 만든 유연묵이 제조되었다. 송(宋)의 희녕 원풍(熙寧 元豊)연간에는 장우(張遇)가 유연(油烟; 기름 그을음)에 사향(麝香)을 배합하여 금박까지 입힌 소위 용향먹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 뒤로 묵공들이 속출하게 되고, 특히 엽무실(葉茂實)이라는 사람이 먹똥과 응어리가 안 생기는 청묵을 제조하였다고 한다(이겸노, 1989). 송대의 소동파(蘇東坡)는 명묵을 수집했으며 직접 먹을 제조하기도 했는데 그가 만든 먹을 동파법묵(東坡法墨)이라고 했다. 소동파는 홍화묵(紅花墨)을 개발하기도 했다(정종미, 2001 : 136).
원․명․청대는 송연묵과 유연묵이 함께 제조되었는데, 특히 명(明)대는 먹의 황금시대로서 소나무의 청연(淸煙)으로 만든 송연청묵(松烟靑墨)이 유명했다. 명대의 명묵(名墨)은 오늘날의 제묵법에서도 그 모델이 되고 있으며, 명․청대의 명묵을 당묵(唐墨)이라 한다(정종미, 2001 : 136).
청(淸)대를 대표하는 먹은 유연묵으로서 청대에는 일반 사대부뿐만 아니라 황실에서도 먹을 애호하였는데 특히 사화(書畵)를 사랑한 건륭황제(乾隆皇帝)는 건륭어묵(乾隆御墨)이라는 유연묵을 특별히 만들어 쓴 것으로 유명하다. 청대이후 먹이 양산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쓰는 양연(洋煙: 카본블랙)을 넣은 먹이 제조되었다(김민정, 1987).
우리 나라에서는 고구려시대에 송연묵을 당나라에 세공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명나라 도종의(陶宗儀)의〈철경록 輟耕錄〉에 나오고, 고구려 고분 중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가 발견된 경내의 전실정면(前室正面) 상벽(上壁)에는 종회으로 그어진 계선(界線)에 매항 10자 총 81항의 사경체(寫經體) 묵서(墨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먹이 성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는 소나무가 많아 송연을 얻기가 용이했기 때문에 품질이 매우 우수한 먹을 생산할 수 있었고 하는데, 현재 일본의 쇼소원(正創院)에 보존되어 있는 신라의 양가(楊家), 무가(武家)의 먹은 모두 송연묵이다. 통나무 배 모양로 된 이 먹의 한가운데에는 나무틀로 찍은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데, 그 모양이 배같다고 하여 주형묵(舟形墨)이라고도 하며, 크기는 30㎝ 정도이다.
고려시대의 먹으로는 청주 근처에서 발굴한 단산오옥(丹山烏玉)이 있다(정종미, 2001 : 137). 〈묵사(墨史)〉에 나오는 고려조에 의하면 관서지방의 맹주(猛州), 순주(順走), 평로성에서 생산되었던 먹이 주로 중국에 수출되었는데, 그중 맹주 먹이 가장 좋았고 순주 먹이 그 다음으로 손꼽혔다고 한다. 고려시대 송연묵은 묵광(墨光)이 번쩍이고 묵향(墨香)이 코를 쏘았다고 한다(박상균, 1991 : 778-779).
조선시대는 먹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는데, 이왕가(李王家)에서 만든 100년 정도 된 먹이 남아 있고, 또한 중기의 먹이 일본의 도쿠가와(德川)미술관에 보존되어 있다(정종미 : 137). 당시 황해도의 해주에서 만든 먹은 중국이나 일본의 먹에 비해 그 질이 월등히 우수하여 나라에 진상하고,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였으며, 평안도의 양덕에서 만든 먹은 송연묵으로서 향기가 좋기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서울의 묵동(墨洞), 묵정동(墨井洞)은 옛날에 먹을 만들었던 곳이었다고 한다(김민정, 1987 : 55-56).
*먹의 제조*
먹은 동양 고유의 그림 재료이다. 먹을 통해서 우리는 동양의 독보적인 예술을 이해할 수 있으며, 먹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먹의 제조법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나라의 〈고사촬요 攷事撮要〉와 〈고사신서 攷事新書〉에는 먹의 제조법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1554년 명종 9년에 어숙권(魚叔權)이 편찬한 는 조선시대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반상식 등을 뽑아 엮은 책인데, 거기에 실린 먹의 제조법을 요약하면 물 9근에 아교 4근을 넣고 불에 녹인 다음 순수한 그을음 10근을 넣어 잘 반죽한다. 이것을 다른 그릇에 옮기고, 남은 물 1근을 적당히 뿌려 가면서 잘 찧는다. 다음에 깊숙한 방에 평판을 깔고 습한 재를 한치 정도 깔고 종이를 덮는다. 그 종이 위에 먹을 옮겨 놓고 다시 종이를 덮고 위에 다시 습한 재를 한치 쯤 덮는다. 그대로 3일을 두었다가 각장을 바르게 네모로 자른다. 자른 먹 위에 마른 재를 한치 쯤 덮고 2, 3일 지난 후 꺼내어 으슥한 방 평판 위에 놓고 여러 차례 뒤집어 가며 말린다.(이겸노, 1989 : 64, 재인용)는 것이다.
1771년 영조 47년에 대제학 서명응(徐命膺)이 〈고사촬요〉를 개정, 증보한 책이 〈고사신서 攷事新書〉이다. 여기에 나와있는 조림매묵법(造林煤墨法)에 의하면 먹은 송연 열근과 아교 네근, 물 열근을 배합하여 먹을 만드는데, 구체적으로는 물 아홉근에 아교를 담가 동분(銅盆)에 넣어 녹인 다음 연(煙)이 섞일 때까지 나머지 한근의 물로써 세분(洗盆)하여 별기(別器)에 담아 물을 뿌리면서 수없이 찧어 만들어 낸다.(박상균, 1991 : 779, 재인용)고 하였다.
①그을음을 만든다―그을음의 종류는 송연, 유연, 칠연, 석유연, 그리고 교연 등이다. 순수한 탄소로 이루어진 그을음은 비중이 작아 가볍고, 탄소에 소나무의 회분이 섞이거나 불완전연소된 수지 등이 부착된 그을음은 비중이 커서 무겁다. 탄소 입자가 가볍고 고를수록 좋은 그을음이 된다.
②약재를 배합한다―먹을 만들 때는 약재를 적당히 배합한다. 약재는 색과 향을 내어 아교의 고약한 냄새를 제거할뿐만 아니라 먹의 수명을 길게 하고 교의 점성이 오래 유지되게 하며 먹빛이 퇴색되지 않게 하고 단단하게 한다. 또한 먹에 기름기를 주어 윤기가 나게 한다. 특히 향료는 정신을 맑게 해주는데 동물성의 사향(麝香)과 식물성의 용뇌(龍腦)를 귀하고 좋은 향기로 쳤다. 위나라의 위중장(韋仲將)은 진주와 사향을 섞어서 썼고, 북위 때 가사협은 물푸레나무, 계백, 진주, 그리고 사향을 썼으며, 당나라의 왕군덕(王君德)은 석류나무껍질, 코뿔소뿔가루, 단반(胆礬)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먹의 생산이 활발해짐에 따라 향료의 수요도 늘어나게 되어 합성 용뇌나 인조 사향을 만들어 천연 향료를 대신하게 되었다.
③아교를 섞는다― 먹은 비친수성의 탄소 알갱이를 친수성 단백질인 아교와 섞어서 만들기 때문에 아교는 접착제의 역할을 하게된다. 그러므로 좋은 먹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교의 선택이 중요하다, 제묵용 아교에는 녹교, 우교, 마교(馬膠), 어교(魚膠) 등이 있고, 좋은 먹을 만들 때는 황명교(黃明膠)를 사용한다. 황명교에는 녹각으로 만든 백교(白膠)와 우피교로 만든 우교가 있다. 먹이 진득거리지 않고, 쉽게 갈라지거나 깨지지 않으려면 아교가 맑아야 한다. 아교을 섞을 때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 깨끗하고 밀폐된 방에서 불에 녹인 아교를 천천히 부어 스스로 흐르게 해야 하며, 밀가루를 다루듯이 주무르면 먹빛이 윤택해진다. 아교가 많아야 먹의 수명이 오래가는데 아교와 그을음의 함량은 약 10ː6 정도이다.
④찐다―주물러 놓은 먹을 찜통에 넣어 강한 불로 가열한다. 수증기가 새지 않고, 중간에 불을 끄지 않아야 찧기 좋은 상태가 된다.
⑤찧는다―30분 정도 지난 후 뜨거울 때 밀폐된 실내에서 절구에 넣어서 점착성이 없어질 때까지 찧는데 광택이 나면 그만 찧는다. 얼마나 더 찧느냐에 따라 먹의 우열이 좌우된다. 요즘은 대개 기계로 찧는다.
⑥단련한다―찧은 뒤 뜨거울 때 주물러서 긴 형태로 만들어 습포로 싼 다음 가마 안에 넣어서 따뜻하게 하고 하나씩 꺼내어 필요한 크기로 자르고 무게를 잰 다음 다시 나눠서 단련하는데 반드시 천번 이상 두들긴다.
⑦그늘에서 말린다―옛날에는 석탄재, 석회, 밀겨 등을 3㎝ 정도 두께로 깐 뒤 먹을 놓고 적당량으로 덮고 말렸지만 요즘은 그늘지고 서늘하며 통풍이 잘되는 실내에서 여러층의 선반 위에 먹을 놓고 자연풍을 쐬서 말린다.
⑧광을 먹인다―거친 헝겊으로 완전히 마른 먹을 깨끗이 닦아서 단단한 솔로 밀랍을 발라 광을 내고 바람을 쏘여 말린다. 대합조개껍질로 비벼 광을 내는 것은 옻을 칠한 것처럼 광택이 난다고 하여 옻광내기라고 부른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지만 먹이 굳게 마를 때까지 약 100일~200일이 걸리고, 다 마른 먹이 완전한 먹빛을 발하기까지는 30년~50년의 세월이 지나야 한다(김민정, 1987 : 44-51, 정종미, 2001 : 144-149).
먹
먹 (chinese ink, indian ink)은 단순히 화재(畵材)로서의 물리적 기능 이외에 물성 그 자체가 고도의 정신적 의미를 지님으로써 수묵이라고 하는 극도의 형이상학적이 회화양식을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이 지나치게 편중화하고 절대화함으로써 가장 기본적인 먹의 물성은 오히려 간과되어 버린 경향이 있다.
먹의 특성
먹은 중국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안료로서 이것의 장점은 수묵의 깊고 얕음, 농담, 건습 등으로 각종 사물이 갖춘 색과 빛을 표현해내는 것이다,
먹빛은 대체로 초(焦), 농(濃), 중(重), 담(淡), 청(淸) 등의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 만약 세분화한다면 더 많이 나눌 수 있다. 일반 회화에 사용하는 먹은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데 서예용 먹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서예용 먹은 단지 새까맣고 광택이 있는 것이면 된다.
그러나 회화용 먹은 반드시 농하고 검어야 하며 회암색(灰暗色)이 뜨지 않아야 하고 물을 써서 선염할 수 있으며 스며들거나 무리를 짓거나 헤쳐지지 않아서 층차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을음 입자의 크기에 따라 색의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종이나 비단 위에 먹 작업을 하게 되면 섬유의 표면에 있는 미세한 요철에 탄소가 밀고 들어가 고착되는데, 물에 섞인 알갱이가 미세할수록 물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번지므로 넓은 범위로 퍼져서 작은 틈 사이로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을음 입자의 크기도 물의 양 다음으로 색에 변화를 주는 요인이 된다.
알갱이의 굵기와 미세함은 채취 방법뿐 아니라 교의 질과 제작 방법, 제품화 이후 경과된 시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을음이 교액 중에 균일하게 분산되지 않으면 아무리 미세한 알갱이를 쓴다 해도 의미가 없다. 미세한 알갱이는 교 속에서 응집하기 쉽기 때문에 그을음 그대로 3만 번 찧고 교를 섞어서 3만 번을 찧는다.
동양화의 먹과 서양화의 잉크는 물질 자체가 지닌 개념부터 다르다. 서양화의 잉크는 단지 필기나 선묘를 위한 도구이지만 동양화의 먹은 현색(玄色)이라 하여 태양 빛에 의한 것이 아닌 태양이 없어도 존재하는 우주의 본색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이 지닌 농담 층차는 우주만물을 이루는 수만 가지 생의 풍성함을 의미하여 천변만화한다.
먹의 질을 시험해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생지에 그린 후 반나절 정도 지난 뒤 물로 선염하여도 스며들어 무리가 생기거나 퍼지지 않으면 좋은 먹이다.
둘째, 숙지나 혹은 비단에 그린 후 하루 지난 후에 물로 선염하여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약해지지 않으며 퍼지지 않으면 좋은 먹이다.
먹은 수분이나 습기, 바람을 가장 싫어한다, 습기를 받은 먹은 교가 풀어지고 그을음은 풀어지지 않는다. 바람을 맞으면 쉽게 파열되는데 신묵이라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할 것이다.
보관할 떄믄 종이로 싸서 건조한 곳에 둔다.
이미 습기를 받은 먹은 신묵과 섞어서 같이 갈면 검디검은 데다 무광이라서 그림에 쓰면 아주 좋다.
깊고좋은먹색은 좋은 벼루에 천천히 먹을 갈아야한다.
잘갈리는먹은 농도가 바로 짙게되지만 써보면 입자가 곱지않아 붓의움직임이나 먹색이 안좋은것을알수있다.
먹의 기본색은 검정이지만 어떤 원료를 사용했느냐에 따라서 먹빛이 세분화된다.
먹빛은 검정,쥐색,청색,갈색등으로 크게 청먹의 적자계와 청색계 그리고 다먹의 갈색 계통으로 구분된다. 먹색을 알아보려면 묽게 칠해보면 바로 알수있다.
먹은 그을음을 아교로 굳혀서 만든다. 매연의 주원료는 주로 식물과 광물로 크게 나눌 수가 있다. 식물중에서는 소나무와 식물성 기름으로 나누어지며 소나무는 송연먹이 되고 식물성 기름은 유연먹이 된다.어느 것이나 상급의 먹재료이며 비싼편이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싼 먹은 대게 광물을 원료로 하는것으로 중유,코올타르,조제나프탈린 그밖에 석탄계통의 기름등이다. 그리고 액체의 먹즙 원료는 카본블랙을 사용하고있다.
먹은 일반적으로 심하게 갈라지기 시작하면 먹의 수명이 다했다고말한다. 먹의 수명은 대략 15년에서 20년 정도이다.
먹은 호흡한다고 말한다. 완전히 건조되었다고 생각되는 먹도 먹 자체에는 수분을 어느정도함유하고 있기때문이다. 사계절을 통해 습기를 흡수하기도 하고 방출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먹은 반드시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보관하는것이 제일 좋다고 한다. 오동나무를 사용하는 이유는 급격히 건조하게 될 때 먹이 갈라지는 현상이 생기는데 이런 현상에 부드럽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습도조절이 잘되는 오동나무를 사용하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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