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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공부방

산수화의 준법皴法 / 채색화, 청록산수와 금벽산수

작성자조미영|작성시간13.04.22|조회수1,160 목록 댓글 0

 

산수화山水畵 Landscape Paintings

 

산수화는 자연을 그린 그림이다. 옛사람들은 항상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꿈꾸었으며 화가들은 자연을 살아 숨 쉬는 듯 느끼며 생동감 있게 그리고자 노력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삼국시대 무덤벽화의 산과 나무 표현에서 고대 산수화의 양상을 엿볼 수 있다. 통일신라 이후의 산수화는 전해지는 작품이 거의 없어서 자세한 모습을 알기 어려우나 고려시대에는 감상을 위하여 산수화를 본격적으로 그렸으며 주위의 산천을 그리는 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산수화는 남아 있는 작품이 많아 쉽게 시기별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화가들은 중국의 새로운 기법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이룩해 나갔다. 안견을 중심으로 한 조선 전기의 화가들은 산수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담은 산수화를 주로 그렸다. 김명국 등을 중심으로한 조선 중기의 화가들은 산수와 인물이 조화를 이룬 대범한 분위기의 산수인물도를 많이 그렸다.

산수화가들은 자연의 이치를 담은 마음속의 산수를 그리고자 하였다. 중국의 문인화풍인 남종화의 예술 사상과 기법은 조선 후기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한편 후기의 진경산수화는 조선의 산천을 우리식으로 표현하여 산수화의 경지를 높이 끌어올렸다. 조선 말기에는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문인화文人畵의 흐름이 깊어진 가운데 근대적 감각을 보이는 참신한 화풍의 산수화가 그려졌다. 또한 일반 서민들의 민화 산수화도 유행하면서 다음 시대로 이어졌다.

 

산수화의 준법皴法

Various Brushstrokes in Joseon Landscape Paintings

준법皴法이란 바위, 산, 나무를 그릴 때 입체감이나 표면의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옛 그림에서 흔히 보이는 대표적인 준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미점준米點皴 Mi Dots

붓을 옆으로 뉘어서 횡으로 쌀 모양의 점을 찍는 기법이다. 북송대의 화가 미불이 창안하여 그의 성을 따른 것으로, 주로 안개가 끼어 있거나 멀리 있는 산을 그릴 때 사용하였다.

 

우모준牛毛皴 Ox-tail Texture Strokes

소의 털과 같이 짧고 가느다란 필선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피마준보다 짧고 가늘다.

 

단선점준短線點皴 Short-linear Texture Strokes

2~3cm 정도의 짧은 선이나 점의 현태로 산, 언덕의 능선, 바위 표면의 질감을 나타내는 준법이다. 조선시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유행하였다.

 

피마준披麻皴 Hemp-fiber Texture Strokes

마麻의 올을 풀어서 늘어놓은 것처럼 선을 반복하여 그린 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준법으로 바위 없는 산을 그릴 때 사용한다.

 

하엽준荷葉皴 Lotus Leaf Texture Strokes

연잎 줄기가 퍼져내려 간 것처럼 표현하는 기법이다. 주로 산봉우리나 물이 흘러 고랑이 생긴 산비탈 등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부벽준斧劈皴 Ax-cut Texture Strokes

도끼로 나무를 찍었을 때 생기는 단면처럼 바위나 산의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붓을 기울인 자세로 쥐고, 폭넓게 끌어당겨 형태를 만든다.

 

수직준垂直皴 Vertical Texture Strokes

예리한 필선을 죽죽 그어 내린 기법으로, 정선이 창안하였다. 강하고 활달한 맛을 내며, 금강산 내외경의 뾰족한 바위산을 묘사하는데 많이 사용하였다.

 

반두준礬頭皴 Alum Lumps Texture Strokes

백반 덩어리와 같은 모양으로 그리는 기법이다. 모서리가 마멸되거나 부식된 작은 산봉우리를 묘사할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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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엽준 荷葉皴  
하엽은 연잎이라는 말입니다. 이 준법은 마치 연잎에 보이는 잎맥을 그린 듯하다고 해 이름붙여졌습니다.


연잎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뜨려 잎맥 선이 아래로 향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 특징으로,
마치 산 위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위나 작은 고랑을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김홍도 <무의귀도(武夷歸圖)> 종이에 담채 112.5 x 52.6 cm 간송미술관 


중국 강남지역의 야트막한 산수를 표현하기 위해 고안해낸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가 이 준법을 애용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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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皴法)이란 산수화에서 산이나 바위 또는 언덕을 표현하기 위한 붓 사용법을 말합니다.
준(皴)은 '주름'이라는 뜻입니다. 붓을 일정한 형식에 따라 사용함으로써 산이나 바위의 주름진 모습을 나타내고 이를 통해 각기 특색 있는 입체감, 양감, 질감, 명암 등을 표현하는 데서 붙은 이름일 것입니다. 서양화처럼 색을 두껍게 칠하거나 명암처리를 하여 양감을 나타내지 않고 붓으로 주름을 나타냄으로써 깊이있는 표현이 가능해지도록 고안된 것이지요.
수묵산수의 시초부터 고안돼 현재까지 약 20가지의 준법이 사용되고 있지만, 자주 쓰이는 용법은 5-6종류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야기되는 준법 중 하나가 부벽준(斧劈皴)입니다.
부(斧)는 큰 도끼를 뜻하고 벽(劈)은 쪼갠다는 뜻, 그러니까 큰 도끼로 내리쳐서 드러난 단면처럼 보이는 효과를 낸 붓 사용법을 이르는 말입니다.
마른 먹을 묻힌 붓을 옆으로 뉘어 빠르게 내려 그으면 도끼로 내리친 것과 같은 단면을 보이는 거친 바위가 표현됩니다.
주로 험준한 산을 표현하는데 많이 쓰이며 매우 박력 있는 효과가 연출되지요.
중국에서는 남송 시대의 마원, 하규부터 시작돼 명나라 절파화가들이 애용했습니다.


하규 <산수도>



심사정 <만폭동>에서의 부벽준


 


정선 <임천고암> 중의 부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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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마준(披麻皴) 
붓의 표현이 피마, 즉 꼬인 마의 올을 풀어놓은 것 같이 보여 이름 붙여진 준법입니다.
옅은 먹으로 얇고 가는 선을 평행하게 여러 번 그어 중복된 선 전체가 입체적인 산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도록 한 것으로,
흙이 많은 토산을 표현하는 데 주로 쓰였습니다.  


피마준




황공망(黃公望, 296~1354)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 부분.  33 6cm×39.9cm 원(元)


이 피마준은 오대의 문인화가 동원(董源)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명대 동기창이 남종화론을 주장하며 동원을 대표화가로 꼽은 이후부터 문인화가들이 애용하는 기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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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준(折帶皴)

절대(折帶)는 띠를 꺾었다는 뜻입니다. 절대준은 붓을 옆으로 뉘어 그은 뒤 끝에 가서 직각으로 짧게 그어 마무리함으로서 붓자국이 ㄱ자처럼 보이도록 한 필법을 가리킵니다.


 

원나라 때 문인화기 예찬(倪瓚 1301-1374)이 자주 사용하던 기법으로,  옆으로 갈라지기 쉬운 편암으로 이뤄진 산을 그릴 때 적합합니다.
조선시대에서는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 많이 사용했습니다. 


예찬 <고목석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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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화, 청록산수와 금벽산수

 

먹으로만 그리지 않고 채색 안료를 사용한 그림을 채색화라고 합니다. 채색화로 그린 산수화 가운데 광물질 안료인 '석록(石綠. 공작석malachite)'과 '석청(石靑, 남동광Azurite)'을 주로 사용해 그린 그림을 '청록산수(靑綠山水)'라고 합니다. 중국 당나라 때 유행했고, 조선시대에는 숙종이 좋아하여 청록산수가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청록산수는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그려져 궁정화풍인 것이 많습니다.


작자미상 <어초문답도> 비단에 채색, 58.7x43cm, 조선 숙종 41년(1715년) (부분)


청록산수와 비슷한 용어로 '금벽(金碧)산수'가 있습니다.
금벽산수는 청록산수보다 먼저 사용되었는데 남송시대 조희곡(趙希鵠)이 지은 『동천청록집(洞天靑祿集)』에는 북송말기의 산수화가인 왕선(王詵)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금벽산수'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설명에서 조희곡은 당나라때 화가 이소도(李昭道)가 처음으로 금벽산수를 그렸다고 전하며, 
금벽산수라는 말은 돈황 벽화에 보이는 산수화 등에 금니(金泥)를 비롯해 돌에서 채취한 푸른 색(碧)의 광물성 안료를 주로 사용해 화려하게 그린 그림을 가리키면서 붙은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원나라때 탕후(湯垕)가 지은 『화감(畵鑑)』에는 ‘이사훈(李思訓, 이소도의 부친)의 저색(著色)산수는 금벽을 사용해 광채가 빛났다’고 하며 ‘남송의 조백구, 조백숙이 청록산수를 구사해 이름을 떨쳤다‘고 써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금벽산수라는 용어가 이후 청록산수로 정착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전 이소도 <명황행촉도> 송대 모본, 타이페이 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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