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접근법 번외 - 드로잉에서 한국성 발견하기, 각인각선各人各線展에 붙여…
<12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초동 한전프라자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드롱잉 전시글 전문입니다.>
흙바닥을 공책삼아 이름을 쓴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자신이 아는 모든 글자를 그린다. ‘쓴다’라는 개념보다는 ‘그린다’는 접근이 더 온당하다. 모양을 익힌 후에 글씨를 이해한다. 모양은 더 많은 의미와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소통의 연결고리가 방대하다. 반면 글씨는 전달의 의미가 보편적이고 일정하기 때문에 사회활동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아이는 광의적 의미에서 서서히 일반의 의미로 진행되는 글자(문자)로 이해된다. 자의식의 형성되면서 광의적 이미지는 서서히 사라지고 특정의 의미를 지닌 문자로의 진행이다. 이때부터 닮음이라는 자신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리기가 점차 무디어지고 스스로 멀어져 간다.
아이가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은 닮음이 아니라 무한의 감각을 활용한다. 머리카락이나 손가락은 그리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가능하다. 머리와 몸통에 팔다리가 한 획으로 붙어있다. 그러면서 아이는 누구를 지칭한다. 드로잉의 시작이다.
드로잉이란 소묘 또는 데생 등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단순히 말하자면 종이나 어떤 재료 위에 선으로 표현하는 것을 지칭한다. 드로잉이란 무엇을 정확하게 따라 그리는 것에 그리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스케치나 크로키, 에스키스와는 구분된다.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 순간의 기분 등을 짧은 시간에 스케치하는 것을 크로키(croquis)라고 하며 스케치(sketch)는 어떠한 미술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밑그림이나 대상의 요점을 간략하게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구도라고 하는 구성과 배치 등을 중점으로 그리는 작업이다. 미술용어 중에 에스키스(esquisse)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작품 제작을 위한 밑그림의 의미로 작은 종이 위에 미리 그려보는 ‘단상 잡기’를 의미한다.
드로잉은 모양의 간략화가 아니라 개념의 간략화 작업이다.
drawing은 sketch와는 개념을 달리한다. 스케치는 사물의 외양을 단순화 하는 것이지만 드로잉은 사물을 통한 개념의 단순화를 의미한다. 또한 드로잉은 색채에 의한 면보다는 선에 의한 접근을 사용하는 회화의 한 분야이다. 시각예술이거나 건축예술이거나 상관없이 드로잉은 모든 형상의 기초 위치를 선점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드로잉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로잉이 온전히 예술의 독립 장르로 인정되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 하였다. 신문이나 여타의 잡지를 보면 연재되는 소설이 늘 있다. 연재소설에는 소설의 이해를 돕는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 이것 또한 드로잉의 개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글이 없는 순수 이미지로서 드로잉이란 일러스트와는 또 다른 상태를 지닌다.
드로잉에서 한국성을 찾는다.
드로잉은 입체적일 수 없는 시각예술이다. 그러나 동양회화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것은 충분히 입체적이며 사상의 함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선을 주로 사용하지만 동양에서의 선은 line이 아니라 space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획을 정하고 사물간의 경계를 만드는 서양의 선(線)과 달리 동양에서는 여백과 사유적 개념으로서 사용되기 때문에 우린나라 미술인들이 더 즐기는 것 일런지도 모른다. 물론 시각예술로서 드로잉은 종이나 캔버스위에 연필이나 물감, 크레용, 목탄 등을 사용한 2차원적 매체를 활용한다. 때로는 입체로 만들어진 면적에 그리기도 하지만 결국 평면이라는 질료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장 일반적으로 종이를 사용하지만 합판이나 가죽, 캔버스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간혹 유리나 금속위에 긁거나 붙이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시각적 아이디어에 대한 조건 선택일 뿐이다.
드로잉은 시각예술의 한 부분으로 특별히 그리는 방법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을 사용하면서 선과 선의 이어진 부분에 다른 용재로서 칠을 잘 하지 않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드로잉을 회화작품을 위한 기초 수단이거나 기술 습득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오인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와 표현양식이 자리하는 현대미술에서 드로잉의 적합한 위치를 고양할 때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화단에서도 드로잉에 대한 적합한 조명이 시작되고 있다. 물론, 이전에 많은 미술인들이 드로잉 관련 전시와 서적을 발간하였지만 한국성의 발견이라는 접근에서의 드로잉 화집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드로잉이란 말을 동양의 묵화(墨畵)혹은 선묘화(線描畵)로 써도 되긴 하나 미술작품의 표현 장르로서 드로잉이라는 말이 일반명사로 자리하기 때문에 그대로 따를 뿐이다.
동양회화에서 나타나는 드로잉의 개념을 이해하자면 사물의 의미를 이해하는 범위에서 선을 사용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line의 개념보다는 space의 개념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도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정체성을 발현시키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체를 중심으로 자신의 심상에서 출발하여 인체에 대한 의미를 강화시키거나 자신의 심적 관계를 대유(代喩)하는 방식을 취한다. 먼저 자신과 인체와의 관계를 조망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관조(觀照)의 미가 있다. 인체를 관조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인체가 지닌 참됨을 찾는 일이다. 인체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작가로는 이근표, 최화삼, 박순철, 소영란, 김해성 등이 있다. 삶에 대한 철학적 접근과 해석에 대한 여유를 찾아간다. 생을 살아가면서 다가오는 다양한 사건과 상황들에 대한 인간의 가치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두 번째로는 직관(直觀intuition)으로서의 접근이 있다. 직관은 추론에 의한 판단을 배제하면서 인물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다. 인체가 지닌 역동성과 운동, 다양한 포즈를 통한 힘의 흐름이 작품의 기조를 이룬다. 인체를 보면서 즉각적 반응과 자신의 감흥을 전달한다. 여기에는 구명희, 양정무, 장현우, 조혜숙, 최정길의 작품이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음율(音律)에 의한 리듬의 미가 그것이다. 인체와 미술가 사이의 교감을 통한 감흥에 의한 작업이다. 이러한 접근은 인물의 생김새에 대한 묘사나 인물이 처한 상황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한 미술가의 감각적 요소가 강화된다. 지각적 요소와 보편성이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강규성, 김성규, 문인상, 박경구, 백범영, 안호균 등의 작품이 그러하다. 현실과 괴리되어 있거나 비구체적 상황에 의존한 추상적 개념으로서 관념은 철저히 배제된 미술가적 접근인 것이다.
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인물화라 한다. 인물화는 인물이 지닌 정신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론적 접근과 인물의 외관이나 상황 또는 사건의 소재로서 사람이 등장한 것으로 나뉠 수 있다. 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닮았다고 하는 것은 인물의 외양도 그러하지만 그리는 미술가의 입장에 따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미술가 개인의 관점에서 사건이나 입장의 부분으로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와 인물 자체의 정신적 개연성이나 인생관 혹은 가치관을 드러낼 것인가의 접근성이다. 그러나 인체 드로잉(특히, 누드 드로잉)은 인물화의 일종이나 인물의 닮음으로서 초상화나 풍경의 일부로 등장하는 회화 작품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다. 드로잉은 사람이 그려진 인물화 이면서 인물화가 아니다. 자연의 일부로 자리하는 인간에 대한 개념적 접근이다. 기쁘거나 슬픈, 혹은 어떠한 감정의 요소를 드러내기 보다는 개체의 정신적 접근을 더 중요시 여긴다.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에 속한 인간 그대로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선택된 것이 누드 드로잉이다.
인체와 관련한 누드드로잉은 한층 더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술작품의 기초 작업이라는 오인에서도 꾸준히 작품에 몰두하고 발표하는 미술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순간의 기분이나 회화작품의 기초 도안이 아닌 독립된 예술장르로의 접근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한국 드로잉의 위상을 새롭게 점검하는 일이며, 인체를 중심으로 개인의 철학성과 창의성을 발현하는 미술인으로서 드로잉에 대한 미학적 접근이다.
2012년 12월 박정수(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