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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위버멘쉬 Overman/Übermensch 超人

작성자바닷가우체국|작성시간12.02.11|조회수472 목록 댓글 0

 

초인/위버멘쉬 Overman/Übermensch 超人

 

 

 

  차라투스트라가 삼십이 되었을 때 그는 그의 집과 그의 집에 있는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시작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 - 1885)에서 니체는 배화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Zoroaster, BC 630? - BC 553?)의 이름으로 초인/위버멘쉬에 대해서 장광의 설교를 한다. 니체에 의하면 벌레나 원숭이에서 진화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다. 현재의 인간을 ‘넘어서고 극복하여(Über)’ 대지의 힘을 가진 존재, 영혼으로 육신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 자기가 자기의 주인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특이한 글은 철학적 산문 형태로 기술되어 있으며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깨우친 자의 설교로 진술되어 있다. 이 책에는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신의 종말, 주인과 노예, 가치의 전도 등이 복합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초인사상(超人思想)이 잘 드러나 있다.

 

  니체는 기독교 체제와 도덕의 종말을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독교적 가치가 폐기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현재, 현실, 현세를 부정하고 사후(死後)와 천상의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허무주의에 빠진다. 따라서 금수와 초인의 중간형태 또는 결합형태인 인간은 초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런데 초인에 이르는 인간의 길이 있다. 첫째, 낙타의 정신을 가진 인간은 순종, 인내, 절제, 근면을 지키는 노예이다. 둘째, 사자의 정신을 가진 인간은 용기, 결단, 무자비를 행사하는 주인이다. 하지만 이 존재는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지 못하며 허무주의에 빠진다. 셋째,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진 순진무구한 자유인이자 창의적 주체성을 가진 초인이다. 현재의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초인은 사자의 용기와 어린이의 순진과 그리스도의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니체에 의하면 신은 근대의 과학기술에 의하여 부정되었으므로 자기 주체의 창조적 인간관이 필요하다. 그 인간은 기독교적 권위에 순종하면서 초월적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긍정하면서 주체적으로 가치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그는 생존본능보다 중요한 권력의지(權力意志)를 가지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다. 이 새로운 존재가 바로 영원한 시간의 원(圓)인 영원회귀를 극복하고 허무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초인이다. 그는 더이상 나약하게 신의 자식이라는 허구에 갇히지 않으면서 자기 가치를 자기가 창조하는 주체이자 진정한 자유인이다. 따라서 초인은 위대한 초능력자나 영웅적 위인이 아니고 자기반성을 거친 순수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

 

  실존주의와 생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초인은 서구사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형성된 니체 특유의 사상이다. 니체에 의하면 플라톤의 이원론과 기독교의 창조론에 의하여 지배된 서구사회와 데카르트로 대표되고 칸트에 의해서 재인식된 합리주의 사상은 수동적 약자인 노예의 사상이다. 반면 그리스와 로마의 낭만성과 역동성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주인의 사상이다. 인간은 그 자연스럽고 건강한 인간의 본성과 주인의 사상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초인은 현재의 인간을 넘어선 신인간, 예술적 광휘를 내는 인간, 아폴론적인 이성과 디오니소스적인 감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 자기 힘을 가진 강자, 바다와 같은 위대한 존재이다.

 

  초인의 반대는 최후의 인간(last man, letzte Mensch)으로 자비나 사랑을 주장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는 비겁하고 또 용기도 없기 때문에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평등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자기를 포기한 노예이기 때문이다. 한편 히틀러는 바그너와 니체에서 나치의 새로운 인간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초인에 비유하면서 폭력성을 행사했기 때문에 니체의 초인은 나치즘과 파시즘의 사상적 토대라는 오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초인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화한 사상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신비할 정도의 이상론이자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헤르만 헤세는 이 책을 읽고 [데미안]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충북대교수 김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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