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연금술/알 가잘리 Al Ghazali 安萨里
그는 별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저 별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눈으로 보는 별은 아주 작다. 하지만 그는 별이 아주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눈으로 보고 지각하는 별의 크기와 실제 별의 크기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이 단순한 물음은 그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때 선지자 마호메트가 한 말 ‘인간은 죽으면서 깨어난다.’라는 지혜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는 알 가잘리(Al Ghazali, 1058 ~ 1111), 이슬람 세계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기독교의 아퀴나스에 비교되는 알 가잘리는 이란의 투스(Tus)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학업에 충실하여 바그다드 니자미야 대학의 교수가 되어 신플라톤주의와 과학을 강의했고 이슬람의 경전을 연구했다. 그러나 1095년 갑자기 모든 직위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떠났다. 그 후 그는 허름한 양털 옷을 입고 이집트, 시리아, 메카, 예루살렘 등에서 수행했다. 당시 상당한 영향력 행사하던 이븐시나(Ibn Sina, Avicenna)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신플라톤학파를 비판적으로 섭렵한 후, 이슬람의 독자적 철학을 정립했다. 가잘리는 수니파와 시아파보다 소
수의 수피파였지만 이슬람의 계율과 전통을 재확립한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별의 크기에서 보듯이 과학이나 이성으로 판단한 것은 다른 차원에서 보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잘리는 경건하게 계율을 지키는 수피(Sufi)의 전통에 따라 영적 체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mysticism)를 신봉하게 된다. 가잘리에 의하면 인간은 다른 차원을 인정하면서 현재와 연결하는 보편적이면서 통찰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이 신비주의는 이성과 현실에서 보면 신비하다는 뜻일 뿐, 실제로 신성한 비밀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가잘리는 과학과 이성을 중요시했으므로 이성에 배치되지 않는 신비만을 취했다. 그리하여 신의 신비한 힘인 연금술(alchemy)을 통하여 인간이 육신으로부터 해방되고 또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70여 권의 저서를 남긴 가잘리는 빛이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신비한 체험을 한 후, 직관에 근거한 내면의 고뇌에 깊이 천착했다. 가잘리에 의하면 법학이나 신학으로 알 수 없는 영적 본질은 자기의 내면을 깊이 통찰할 때 보인다. 그는 육신으로부터 해방되는 연금술에서 자신을 아는 것, 신을 아는 것, 태어나기 전을 아는 것, 죽은 후를 아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진정한 신을 알고 신에 귀의하는 경건한 믿음을 말하는데, 이것을 낙타와 순례에 비유한다. 순례의 목적지까지 가려면 낙타를 잘 보살펴야 하지만 낙타를 보살피는 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최종의 목표는 신을 알고 신의 곁으로 가는 것이다. 한편 가잘리는 인간만이 지위를 바꿀 수 있고 하늘의 천사(天使)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영혼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온 인간은 진지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처럼 신의 부름에 따를 때 정신이 정화되면서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것이 바로 행복한 정신의 연금술이다.
가잘리는 이븐시나의 이론과 과학을 비판하여 이슬람의 종교적 전통을 확립했다. 또한 의식 위주의 종교예식을 타파하고 쿠란과 하디스를 중심으로 한 순수하고 경건한 계율을 주장했다. 그 결과 신학과 철학이 연결되면서 수피의 신비주의 전통이 이슬람 정통에 수용되었다. 또한 가잘리는 철학자들의 논리와 이성이 그 자체로 불일치한다는 것[Incoherence of the Philosophers]을 입증하면서 종교의 믿음으로 신을 경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솜이 타는 것은 불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은 시간이 끝나고 세상이 없더라도 존재한다는 보편적 절대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합리적 의지인 신의 법과 종교이론을 통하여 가잘리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가잘리의 이런 종교적 신비주의와 철학사상은 이슬람 세계의 과학발전을 저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아울러 형식적 종교의식은 타파했지만 지나치게 경건함을 강조하여 근본주의를 강화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김승환(충북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