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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좋은 시

엄마 걱정_기형도

작성자말근내|작성시간26.03.26|조회수68 목록 댓글 0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 목.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기형도 시인이 남긴 ‘엄마 걱정’이라는 시입니다.
시를 읽다 보면 외로운 소년이 오래 붙들고 있던
마음의 기록을 읽는 것 같아. 울컥해지죠.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던 시인은 공부를 잘했습니다.
학교에서 상장도 많이 받았지만 상장 이야기를 부모님께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하죠.
어떤 날에는 그 상장으로 종이배를 접어 떠나보내기도 했다지요.
상장이 인생을 구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알아버린 소년.
엄마 걱정은 그의 시이자 생생한 일기이기도 했을 겁니다.
청춘과 시대의 소용돌이를 동시에 건넌 기형도 시인은 졸업을 앞두고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동시에 신문 기자도 되었지죠.
걱정을 좀 잊어도 좋을 무렵이 됐을 때 그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차르트보다도 슈베르트보다도 더 젊은 나이였죠.
그래서 기형도라는 이름은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못한 청춘처럼 그가 엄마 걱정을 했듯 우리에게 애뜻한 걱정을 남긴 시인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저녁을 오래 견디던 소년의 마음을 봄이 오려는 저녁에 다시 펼쳐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둡고 서글픈 저녁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어둑한 방 안에 혼자 엎드려 훌쩍이던 소년의 모습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모습이자 모두의 기억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떠난 봄이 올 때마다 여전히 우리는 이 소년을 기억하고 기형도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리는 거겠죠.
아직도 누군가는 빈방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우리도 엄마를 기다리듯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떤 마음, 어떤 시간을 품고 있을 겁니다.
그럴 때 펼쳐보라고. 우리 곁에 시집이 있습니다. 올봄엔 얇지만 강렬한 진통제가 되어 주는 시를 자주 읽어야겠다. 생각해 봅니다.


즐겨 듣는 방송 오프닝 중에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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