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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의 향기

20세기 성악가의 흐름에 관하여....

작성자john|작성시간04.11.04|조회수213 목록 댓글 4

<20세기를 빛낸 10인의 남성 성악가> 20세기 남성 성악계의 흐름
- 아래의 글은 월간 객석 1998년 8월(제174 호)에서 빌어왔습니다.
 
 
테너 시대 뒤로 새롭게 열리는 바리톤 시대
20세기 남성 성악계의 새로운 흐름을 개척한 두 사람의 거장은 
동갑내기인 이탈리아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1873년생, 이하 괄호 안은 출생연도)와 
러시아의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1873)이었다. ‘
가극왕 카루소’라는 애칭으로 당대는 물론 사후에도 전설적인 추앙을 받은 
카루소의 목소리는 그가 1921년 급사하는 바람에 초기 레코딩의 형태로만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열악한 녹음 속에서도 레지에로와 드라마틱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대가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드라마틱 테너의 원조였다. 

베르디의 ‘오텔로’ 초연(1887년)에 타이틀 롤을 맡았던 19세기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 
프란체스코 타마뇨의 음성도 녹음으로 남아 있지만 
카루소에 비한다면 얄팍하기 짝이 없다. 
카루소는 테너에 대한 예술적 평가의 기준을 아예 바꿔버린 것이다. 
한편 샬리아핀은 카루소보다 오래 살았기 때문에 비교적 양질의 녹음이 남아 있다. 
전통적으로베이스의 비중이 높은 러시아의 토양에서 성장한 샬리아핀은 
저음 가수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녔으며, 
스스로도 악보를 초월한 혼이 담긴 노래를 부른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카루소와 샬리아핀의 후계자를 자처한 수많은 인물들을 
이 글에서 일일이 언급하기란 불가능하고, 
크게 이탈리아 오페라, 독일 오페라와 리트, 프랑스 오페라와 샹송으로 나누어 
아직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 가수들에 대해서만 
시대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여기에서 다루지 못한 성악가 중에도 희귀한 명반을 남겼거나 
매니어들의 열광적 숭배를 받고 있는 영웅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은 
반드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명가수들
카루소의 레지에로는 티토 스키파(1889)가, 드라마티코는 
조반니 마르티넬리(1885)가 계승하면서 이탈리아 성악의 전성기를 이어나갔지만 
오페라에서 카루소의 진정한 후계자로 인정받은 테너는 베냐미노 질리(1890)였다.
 특히 그의 메사 디 보체(음을 길게 끌면서 크레셴도시켰다가 
다시 디크레셴도시키면서 끝내는 창법)는 청중을 열광시켰으며, 
카루소가 세상을 떠난 후 20여 년간 이탈리아 오페라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아주 매끈한 목소리이면서 드라마틱한 배역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질리의 강점이었다. 

질리의 뒤를 이어 1940년대의 오페라계를 평정한 가수는 
뜻밖에도 스웨덴 출신의 유시 비욜링(1911)이었다. 
비욜링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음색과 인상적인 공명을 지닌 테너였다. 
술고래로 알려진 무대 밖 인생과는 달리 그는 정말 따스하고 인간적인 음성을 들려준다.
 한편 20세기 전반기의 베이스로는 영화 ‘남태평양’에도 출연했던 에치오 핀차(1892)가 
가장 두드러진다. 
모든 레퍼토리에 정통했지만 
특히 그의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는 이탈리아 오페라로 분류됨)는 
아직까지 정평이 나 있다. 

스테레오 시대가 열린 1950년대와 60년대 중반까지는 
필자가 오페라의 최고 황금기로 꼽는 시기로서 전설적인 명테너들이 무더기로 등장한다. 
잘 익은 감이 톡 떨어지는 듯 감칠맛 나는 음성의 
페루치오 탈리아비니(1913), ‘황금의 트럼펫’이라 불린 
금세기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1915), 
마리아 칼라스의 영원한 파트너이자 나폴리 민요에서도 최고의 가수였던 
주세페 디 스테파노 (1921), 그
리스 조각상 같은 잘생긴 외모로 피를 토하는 듯한 격정적 가창을 들려준 
프랑코 코렐리(1921),
 베르디와 푸치니의 가장 탁월한 해석가로 이탈리아 오페라에 높은 품격을 불어넣은 
카를로 베르곤치 (1924)가 바로 그들이다. 

요즘도 가끔 노익장을 과시하는 베르곤치를 제외한다면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은퇴한 지 오래된, 
그래서 신세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벌써 빛바랜 이름들이지만 
이들이 남긴 녹음이야말로 진짜 이탈리아 오페라답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
것은 바로 가수들의 오페라요, 해석보다는 소리 그 자체로서 관객을 도할 수 있었던 
그런 음악이었다. 
델 모나코를 예로 든다면 비음이 지나치고 음정도 부정확할 때가 있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극에 몰입하는 거인이었으며, 
‘오텔로’나 ‘팔리아치’에서 그를 능가할 가수는 아마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한편 모차르트, 로시니, 도니제티라는 제한된 영역만을 불렀지만 
체사레 발레티(1921)와 루이지 알바(1927)는 티토 스키파의 뒤를 잇는 
리릭 테너들로서 감미로운 미성과 능란한 아질리타 창법으로 일세를 풍미했으며, 
바리톤으로는 목소리의 다양한 변신과 연기력에서 최고로 꼽히는 
티토 곱비(1915), 바소 부포의 대명사 페르난도 코레나(1916), 
최고의 돈 조반니요 피가로였던 체사레 시에피(1923), 
최고의 스타였지만 아깝게도 전성기에 세상을 떠난 에토레 바스티아니니(1922), 
그리고 미국의 자랑으로 메트로폴리탄 공연중 쓰러져 숨진 레너드 워렌(1911)과 
그의 후계자 로버트 메릴(1917)을 꼽을 수 있다. 

1970년대부터는 이른바 스리 테너의 시대!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 와 스페인 출신 플라시도 도밍고(1941), 호세 카레라스(1946)가 
그 주인공들이다. 
최고의 리릭 테너로서 목소리의 순도와 시원스런 고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파바로티는 로시니에서 베르디 중기에 이르는 벨 칸토 오페라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 지휘자 리처드 보닝 부부와 함께 이룩한 
도니제티 오페라의 명연은 절대적 가치를 부여할 만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도밍고는 바리톤에서 전향한 테너답게 소릿결이 두터운 가수인데, 
여기에 능란한 목소리 연기와 서정성을 더하여 베르디와 푸치니, 
그리고 베리스모의 거의 모든 작품을 소화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드라마틱 테너가 귀한 시대에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활약한 점도 
가점을 주어야 할 부분이다. 극히 드라마틱한 몇몇 배역을 제외하면 
도밍고의 레퍼토리와 겹치는 카레라스는 두 선배에 비해서는 
다소 빛이 덜 하지만 온몸을 던지는 열정파이면서도 베르곤치를 연상시키는
 이지적 가창이 돋보인다. 

스리 테너와 함께 활동한 저역가수 중에는
 이탈리아의 피에로 카푸칠리(1926), 레나토 브루손(1936), 루제로 라이몬디(1941)와 
불가리아 출신인 니콜라이 갸우로프(1929), 미국의 셰릴 밀른즈(1935) 가 가장 일급이다. 
특히 밀른즈는 실력에 비해서는 덜 평가받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 
매우 역동적이고 극에 잘 몰입하며 항상 정확한 노래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높
이 평가하고 싶다. 

독일 오페라와 리트의 명가수들
이탈리아의 성악가는 지중해의 밝음을 연상시키며, 
독일가수는 두터운 침엽수림을 생각하게 한다고 한다. 분명히 그렇다. 
하물며 게르만 민족주의의 결정체인 바그너를 잘 부른다는 가수는 오죽하랴? 

그러나 바그너의 헬덴 테너로서 20세기 전반기를 풍미한 이는 
독일인이 아니라 덴마크의 라우리츠 멜히요르(1890)였으며, 
그 뒤를 이은 세트 스반홀름(1904) 역시 스웨덴 출신이었다. 
멜히요르는 당대에는 힘찬 목소리로 유명했다지만 
독일 국적의 헬덴 테너들과 비교해보면 기름진 목소리가 오히려 더 특징적이다. 
스반홀름 역시 풍부한 서정성과 유연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전후(戰後)에는 독일 출신 헬덴 테너의 새로운 계보가 시작되는데, 
멜히요르의 그늘을 넘어선 최초의 대가는 1950~60년대의 볼프강 빈트가센(1914)이었고, 1970~80년대의 르네 콜로 1937), 
최근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지크프리트 예루살렘(1940)이 그 뒤를 잇는다. 
한편 미국의 제임스 킹(1925)과 캐나다의 존 비커스(1926)는 
비독일계로서 일급의 헬덴 테너였고, 
특히 비커스는 ‘오텔로’를 잘 부르는 드라마틱 테너이면서 
바그너 테너로도 대성한 경우로 가끔씩 도밍고가 바그너를 기웃거리는 것도 
비커스에게서 용기를 얻은 탓이다. 

이밖에 독일 오페라의 주요 가수로 기억되어야 할 인물들로는
 바그너 베이스로 요제프 그라인들(1912), 테오 아담(1926), 칼 리더부쉬(1932) 등이 있고, 
징슈필과 여기에서 발전된 전통 오페라(‘마탄의 사수’ 같은 작품들)의 명가수로는 
테너 루돌프 쇼크(1915)와 바리톤 에리히 쿤츠(1909), 발터 베리(1926)를 빼 놓을 수 없다. 

이제 리트 가수를 살펴보자. 오늘날 리트 해석의 방향을 제시한 인물로는 
바그너 베이스로도 유명한 한스 호터(1909)와 미성의 테너 에른스트 헤플리거(1919), 
그리고 영국의 피터 피어스(1910)를 꼽을 수 있다. 물론 이들에 앞서 
독일의 카루소라는 체코 출신의 테너 레오 슬레자크(1873)와 
바리톤 하인리히 슐루스누스(1888)가 있지만 
오페라에서 목을 상한 뒤 독일 리트에 전념한 슬레자크는
 매우 시적인 낭만성이 풍부했던 사람으로 
악보대로 부르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았고, 
슐루스누스는 이탈리아 오페라식 발성으로 리트를 불렀기 때문에 
현대적 리트 연주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호터와 헤플리거는 신중한 시의 해석과 드높은 지성을 리트에 불어넣었으며, 
피어스는 작곡가이자 반주자 벤자민 브리튼의 도움으로 독자적 경지에 도달했다. 

1950∼60년대에는 그 토양 위에서 바리톤의 대명사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1925)와 
갓 구워낸 빵같이 신선한 헤르만 프라이(1929), 
테너로는 독일의 희망이었던 최고의 리릭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1930) 와 
한치의 오차도 없는 페터 슈라이어(1935)가 등장하여 서로 쌍벽을 이루면서 
독일 리트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들의 개성을 비교해 본다면 
피셔 디스카우와 슈라이어는 극히 지적인 연주 스타일이라고 할수 있고, 
프라이와 분덜리히는 이들보다는 덜 지적이지만 
리트 에신선함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겠다. 

프랑스 오페라와 샹송의 명가수들
20세기 프랑스 성악계는 특히 남성 성악가의 기근현상이 뚜렷하다. 
다만 수는 많지 않아도 프랑스 가곡의 명 바리톤 계보만큼은 착실히 계승되고 있다. 
그 첫 주자는 스위스 태생의 샤를르 팡제라(1896). 
세련되면서도 모범적인 가창으로 샹송 연주의 새로운 장을 연 팡제라의 음악성은 
피에르 베르나크(1899)에게 이어졌으며, 
베르나크는 샹송 연주의 최고봉에 오른 제라르 수제(1918)와 베르나르 크뤼장이라는
 걸출한 두 제자를 길러냈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프랑스적 에스프리는 격조, 
전아함, 몽환성… 같은 것들이다. 그렇기에 타국 성악가들이 리트에서는 성공을 거두어도 
샹송에서는 두꺼운 벽을 느끼게 마련이다. 

반면 오페라에서는 정열적이며 잘 울리는 목소리로 
전전(戰前)의 베르테르와 돈 호세를 대표했던 
조르주 틸(1897)의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그 빈자리를 외국인들이 채웠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빈틈없는 발성으로 
프랑스 어 발음이 다소 빡빡한 느낌까지 주는 스웨덴의 니콜라이 겟다(1925), 
그리고 스페인의 대표적인 리릭 테너로 구노와 마스네 
오페라의 독보적 존재인 알프레도 크라우스(1927)이다. 

바리톤으로는 가브리엘 바키에(1924)가 간신히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켰고, 
벨기에 출신으로 섬세하고 모나지 않은 음성의 호세 반 담(1940)은 
현재 프랑스 오페라계의 가장 소중한 원로급 성악가로 대접받고 있다. 

현재의 상황
스리 테너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린 오늘날 음악애호가, 
음반회사, 매스컴은 여전히 다음 테너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두드러진 테너는 별로 찾을 수 없고, 
 대신 스타급 바리톤들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라고 하는 편이 옳은 것이다. 

앞으로 수십 년 후에도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대표하는 가수로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이 확실한 차세대 테너는 
이탈리아 혈통의 프랑스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가 유일하다. 
그나마 알라냐도 스리 테너나 그 이전의 대 테너들이 들려준 
원초적 감흥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프랑스 오페라에서 계속 훌륭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고,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므로 베르디와 푸치니에서도 
나름대로의 성취를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미국이 강세인 그밖의 테너들, 즉 제리 해들리, 
닐 쉬코프, 리처드 리치, 벤 헤프너, 크리스 메리트와 이탈리아의 윌리엄 마테우치, 
독일의 페터 자이페르트는 테너 음색의 다양한 맛을 일깨워 준 공로자들이지만 
이 시대를 대표하기에는 분명히 부족한 면이 있다. 
최근 등장한 아르헨티나의 호세 쿠라의 경우 
오랜만에 보는 대형 드라마틱 테너란 점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스리 테너 시대의 드라마틱 테너였던 프랑코 보니졸리나 니콜라 마르티누치가 
더 이상의 성가를 얻는 데 실패했듯이 
현재 수준에서 머문다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러나 요즘 바리톤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미국의 토머스 햄슨, 독일의 올라프 베어, 볼프강 홀츠마이어, 마티아스 괴르네, 
프랑스의 프랑수아 르 루, 웨일스의 브라인 터펠, 
러시아의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키, 
북유럽의 호칸 하게고드 같은 존재들은 과거의 명 바리톤에 비해 
결코 실력에서도 밀리지 않고 스타성은 오히려 훨씬 뛰어나다. 
더욱이 이들은 공통적으로 오페라뿐만 아니라 
예술가곡에 아주 강한 면을 보이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렇다면 21세기는 바리톤의 시대가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훌륭한 바리톤들을 스타로 키워주지 못한다면 음악산업이라는 측면에서 
클래식 음악계의 장래는 결코 밝지 못할 것이다. 

*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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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초록이 | 작성시간 04.11.04 내일쯤엔 아마도 <20세기를 빛낸 10인의 여성 성악가>도 올라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 해봅니다. 유익한 자료 감사합니다^^
  • 작성자미류나무 | 작성시간 04.11.04 ^^*~ 저도 초록이님 생각과 같아요~^^ 이 자료 올려볼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아~니~!, 왜~! , 나의 크라우스는 등외인지...도체 이해가 안된다니까요.ㅎㅎ 제가 이 자료 보면서 최고의 가수가 부른 최고의 곡들만 올려 보고 싶었거든요.함께 모아서...그런데, 여건이 안받쳐 주네요.^^;; 좋은자료 감사드려요~
  • 작성자joh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11.04 ㅎㅎㅎ 미류나무님~! 크라우스 넣어서 나중에 멋지게 꾸며서 올려주실거죠? 제가 그렇게하시라고 지금 요렇게 심기를 살짝 건드리잖아요~! 영국 돌아가시면 자신의 컴이니 그때 많이 올려주세요~! 내일 뵈요 미류님~! 초록이님 감사!
  • 작성자초록이 | 작성시간 04.11.04 미류님...참 이상해요 언제나 한발 앞서가심을 느낍니다. 이 자료 실은 제게도 있는 자료라 그냥 한말씀 드렸구요...혹시 낼 아침에 안올라오면 저라도 10대 여성 성악가중 최고인 칼라스의 대표적인 노래 한곡 정도만 올려볼까 했었거든요...학구적인 울 미류님을 언제나 흉내도 못내 보네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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