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분덜리히 (Fritz Wunderlich)
"그가 죽음으로써 독일 성악계는 완전히 끝이 나고 말았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평론가 칼 슈만의 말처럼 분덜리히의
갑작스런 사망은 독일, 아니 전세계 성악계를 일시에
초상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해맑은 음성으로 전후 독일 성악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프리츠 분덜리히….
그 예상치 못했던 사망 소식에 사람들은 슬픔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허탈감 같은 것을 맛보아야 했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그의 노래가 지니고 있는 혈기왕성한 젊음 때문이었다.
분덜리히에게서는 독일 음악가들에게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사색적이고 병적인 구석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생기발랄하고 자연스럽게 뽑아내는 그의 아름다운 노래들은
철학적 사고를 요하는 그런 음악들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사인이 계단에서의 실족으로 인한 뇌진탕이었다니….
1966년 9월 17일 불세출의 독일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는 그를 아끼는 팬들의 눈시울을 붉게
적신 채 서른여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흔히들 분덜리히 하면 먼저 모차르트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오페라 < 마술피리>의 "타미노" 로 데뷔해서 마지막 무대도 "타미노" 로 장식한 그는 거의
운명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모차르트와 인연이 많았던 가수였다.
그리고 그가 레코딩한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수 많은 성악 팬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그의 이른 죽음을 아쉬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조금 더 살아서 좀 더 많은 독일가곡을
불러 줬더라면 하는 바람을 아직까지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두말 할 것도 없이 그것은 앞서 이야기했듯 분덜리히가 철학적인 부분을
앞세웠던 전통적인 해석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가창을 들려줬기 때문이다.
마치 나폴리 민요를 연상시키듯 자연스럽게 뽑아내는 독일가곡….
이것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결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은 독일가곡이 아니라 편안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전통적으로 독일 사람들은 남국에 대한 강한 동경심을
갖고 있다. 일년 내내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괴테도 그랬고 멘델스존도 그랬고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새롭게 태어난 것은 그 대표적인
예 가 운데 하나가 되리라.
중요한 사실은 독일 성악 애호가들이 분덜리히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런 남국에 대한 동경을
대리만족했다는 사실이다.
분덜리히의 노래 그 어디서 어둠침침한 북구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이탈리아 테너처럼 그가 나긋한 해석만으로 노래를
치장한 것은 아니었다.
단정하면서도 어둡지 않은 해석은 분명 절충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고이러한 해석은
아직까지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글 - 정만섭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