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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론과 정보

20세기의 오페라들 (7)

작성자심박|작성시간07.08.30|조회수126 목록 댓글 0
20세기의 오페라들 (7)

알반 베르크 (1885-1935)

‘보체크 (Wozzeck)’

3막의 오페라

리브레토: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 ‘보이체크’를 알반 베르크 자신이 편집.
초연: 1925년 12월, 국립 오페라 극장, 베를린

3. 알반 베르크 (계속)

알반 베르크는 뷔히너의 희곡을 직접 오페라의 리브레토로 사용했고, 전체 26개의 장면을 15개로 축약해서 각각 5장씩으로 구성된 3막의 오페라로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작품을 구상한 직후 오스트리아는 제 1차 세계대전에 휘말렸고, 군에 입대한 베르크는 작품의 완성을 무기한 연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베르크는 드뷔시보다도 더 천천히 작곡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었고, ‘보체크’가 완성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37세였지만 이 작품의 작품 번호는 겨우 Op. 7 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긴 베르크는 이후 작품에는 작품 번호를 붙이지 않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바이올린 협주곡’은 ‘보체크’로부터 세면 7번째 작품이 됩니다.

4. 에리히 클라이버

베르크는 ‘보체크’의 초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아무도 이 정신 질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무조 음악 오페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처음으로 이 작품이 알려지게 된 것은 1923년 잘츠부르크 국제 현대 음악 협회 축제에서 베르크의 현악 사중주 (Op. 3)를 듣고 깊게 감명한 헤르만 셰르헨의 노력에 의해서였습니다. 셰르헨은 오페라를 바탕으로 한 짧은 조곡을 작곡할 것을 권유했고, 그 결과물인 ‘보체크에 의한 세 개의 단편’을 1924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연주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 무렵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었던 에리히 클라이버가 이 작품의 초연에 관심을 보였고, 드디어 1925년 12월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 ‘보체크’는 초연되었습니다.

사실 초연은 대 성공이었고, 이후 베르크의 명성은 전 유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보체크’는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의 여러 극장에서 연주되었으며 1930년대에는 신생 소비에트 공화국의 레닌그라드에서도 ‘보체크’의 무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베르크는 이 작품에 대한 강연으로 적지 않은 수입을 얻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작품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전성기의 베를린이 모더니즘의 메카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론은 결코 호의적이지많은 않았고, 실제로 이 작품의 초연을 둘러싼 논쟁은 거의 스캔들 수준으로까지 비화되게 됩니다. ‘동물원을 탈출한 동물들의 울부짖음….정신 장애를 유발시키는 음악….’ 등등의 저속한 비난이 난무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문화계를 둘러싼 좌파와 급부상하기 시작한 우파 사이의 정치적인 갈등 역시 개입되어 있었으므로,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격렬한 투쟁의 양상을 띄게 됩니다. 결국 에리히 클라이버는 국립 극장의 음악 감독직을 사임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는 1930년대 나치가 정권을 잡자 아르헨티나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얼마전에 타계한 대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낳게 됩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독일 혈통임에도 라틴계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5. 칼 뵘/클라우디오 아바도/다니엘 바렌보임/라이프 세거스탐

1925년 ‘보체크’가 초연된 이후 많은 지휘자들이 이 작품에 도전해서 훌륭한 녹음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DG에서 나온 칼 뵘의 음반입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이후의 현대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 거장이 ‘보체크’를 녹음한 것은 베르크가 슈베르트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빈출신’의 작곡가이고 이 작품이 오페라이기 떄문일 것입니다. 에펠린 레어의 마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보여 주고, 이지적인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의 보체크 역시 훌륭합니다. 안드레스 역을 프리츠 분덜리히가 불렀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DG 녹음은 아마도 이 오페라의 음반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빈 국립극장에서의 실황 공연을 담은 이 음반에서 보체크 역의 프란츠 그룬트헤버, 마리 역의 힐데가르트 베렌스, 의학 박사 역의 하아게 하게글란드 등은 모두 최고 수준의 연주를 들려줍니다. 아바도는 말러의 교향곡의 대가답게 이 작품의 표현주의적인 잠재력을 극단적일 정도로까지 확장시켜 들려 줍니다.

‘보체크’는 아마도 20세기 오페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일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놀라운 주인공의 출현을 목격하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조 음악과 12음 기법을 이용한 베르크의 음향 세계는 이런 굴절되고 왜곡된 보체크의 인지-사고 체계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이 작품이 이후 20세기 오페라에 미친 영향은 심대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20세기 오페라 작품군에 들어갈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무첸스트의 멕베스 부인’이나 벤저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즈’ 등에서는 ‘보체크’의 영향이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베르크는 이 작품 하나만으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대열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그가 다음 오페라 ‘룰루’를 미완성으로 남기고 비교적 이른 나이인 50세에 세상을 떠난 것은 무척이나 아까운 일입니다. 물론 그가 죽은 1935년 경에 신 빈악파의 음악은 나치에 의해 본격적인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쇤베르크는 미국으로 망명을 가고 베베른은 시골 마을에 은둔해 버립니다. 베르크가 다시 오페라 활동을 재개하려면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지만, 그 사이에 또 다른 걸작들을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역시 아까운 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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