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 '실패'는 내 운명?
전시가 시작됐다.
지하 작업실에서 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전시 작품들을 싣고 예술회관에 가면서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모르게 종일 전시장에서 준비하느라 진을 다 뺀 기분이었다.
그중 현수막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애간장을 다 녹이기도 했는데, 오프닝 한 시간쯤 전에 도착해... 어쨌거나 건물 외부에 현수막을 설치하는 것으로 전시는 시작되었다.
오프닝은 간소하게, 그렇지만 성의껏은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이 와주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인야 자신의 능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쓸쓸한 오프닝을 치르다 보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어쩌겠는가.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지.'
그런데 가장 기대를 걸었던 오프닝에서의 작품 판매는 전무했다.
적어도 한두 점 정도는 팔릴 수도 있으리라 여겼었는데, 막상 전시를 열어놓고 보니... 팔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값 싸게 내놓은 판화마저도 사가질 않았으니까.
친구 P가 삐쩍 골은 모습으로 나타났고, 오프닝을 끝낸 뒤 고교 동창 여럿이 와서 같이 저녁을 먹으며 소주도 했다.
그러나 인야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들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포까지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교통거리가, 너덧 시간은 걸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시가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사람도 없는 전시장에서 인야는 다시 우두커니 앉아있는 전례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끔 오가는 사람들의 눈초리도 무덤덤하기만 했다.
훤한 전시실에서 몸도 안 좋은 인야는 멍청히 앉아있는 것으로 힘들게 준비한 전시를 하고 있었다.
'괜히 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관람객들의 반응에 얽매이지 않으려 마음먹었는데도, 눈앞에 훤히 보이는 현상에 무관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그걸 '무관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인야는 이 전시에 너무나 많은 정성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전시장은 커서 좋은데, 그 안에 사람이 없으니... 전시장만 더욱 커 보일 뿐이었다.
옛날 미술학원에서 가르쳤던 제자 부부가 왔다 갔고, 아침에는 옛 직장 동료인 K 선생이 와서 이번 전시회의 비디오 촬영을 해주었다.
그리고 대학 동기 K씨도 왔다 갔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그는 많은 얘기를 해서 힘든 인야를 축 늘어지게 했다.
그가 싫었다는 게 아니고, 인야가 너무 지쳐있어서... 그의 얘기를 다 받아들여주기가 힘들었다는 뜻이었다.
다섯 시 반이 넘어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작품의 매기는 전혀 없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나는 쓰라림만 맛보게 될 것인가? 어째,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럴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며칠이 지나가버리면 이번 전시도 그 전의 전시들과 마찬가지가 될 것만 같았다.
인야는 마치 '독백'이라도 남기려는 듯, 잠시 이런 메모를 남기고도 있었다.
| 이런 것도 고통이 될 줄을 당신은 모를 겁니다. 고통에는 이런 종류도 있고, 이 고통 역시 아픈 것이라는 걸 당신은 모를 겁니다. 텅빈 전시장에 혼자 앉아 있는,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은 화가의 마음. 당신은 그런 걸 아십니까?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그것들을 소중히 옮겨 전시장에 걸어 놓았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 화가는 웁니다. 소리없이 그림 앞을 맴돌며 웁니다. |
그 다음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토요일인데다 휴무라 부근 대학로에서는 백일장 대회도 있고 뭔가 바자회도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이런저런 부대행사로 시끌벅적했다.
인야가 전시장에 도착해 보니, 예술회관 계단은 꽉 메운 중고등학교 학생들 때문에 전시장 들어오는 통로도 막혀 있었다.
그렇게 전시장 밖은 인산인해였는데, 전시장 안에 들어온 인야는 혼자 앉아 있었다.
날씨가 좋고 휴일이고 사람들이 많고, 그런 요소 하나하나가... 전시를 열고 있는 인야에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판명나고 있었다.
그렇게 정말 파리만 날리다가, 오후가 되면서 전시장은 도떼기시장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주된 관람객들은 중고교생이었고 애를 데리고 온 젊은 부인들도 있었지만,
'도대체 이건 웬일이라지?' 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자 녀석들이 열 명 가까이 몰려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왔던 건 좋았다. 그렇지만, 오만 원짜리 판화 한 장을 팔았을 뿐이다.
웃음이 나왔으나, 그건 쓴웃음이었다.
이 전시를 위해 빚을 져, 이젠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는 청약저축마저 해약해야 할 시점이었는데.
그리고 일요일.
비가 내렸다. 이렇게 비가 구질게 내리는 날은 공치는 날이었다. 전시도 공치는 분위기로 나가고 있었다.
'이게 하늘의 뜻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하늘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수로 뜻을 펼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운이라는 단어가 하늘의 뜻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인야는 하늘의 뜻도 없고 운마저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고, 그렇게 비참하게 또 하나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전주에서 새벽같이 올라왔던 친구 E 부부가 점심을 산 뒤, 봉투 하나를 남기고 돌아갔다.
골이 아프고 어지럽기까지 했는데, 오후로 접어들자 일반인들과 지인들도 몇 명 와주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림의 매기는 없었고, 전시의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전시가 끝나면 빚더미 위에 앉게 될 인야였지만, 후회하는 기색은 없었다.
월요일이었다.
K선생이 비디오를 찍는다기에 아침 일찍 전시장에 나가 작품 촬영을 하였다.
그의 수고에 답하기 위해 판화 한 쌍을 선물로 주었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전시장을 보며 인야는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도 전시장에 작품 걸어놓고 시간만 떼우다 철수하는 전시가 되는 것 같아 울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일주일이라기는 해도 6일에 불과한 전시를 위해 그렇게 애를 태운 꼴이었다.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서야 J 선생님이 오셔서, 흙 작업 준비해놓은 것 하나를 드렸고... 문을 닫으려는데, 친구 G가 나타났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돈 그와 함께, 인야는 저녁 식사를 했고...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인야의 몸이 안 좋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너, 전시 끝나면... 나하고 저기 제기동에 있는 한의원엘 좀 가자!"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보약 한 재를 지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보약? 이렇게 살다가, 운명이 그렇다면... 가는 거겠지, 뭐."
인야가 담담하게 말을 하자,
"너, 왜 이렇게 멍청하냐?" 하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에이, 만약 내 동생 같았다면... 확! 패 죽여버리겠네." 하니,
인야는 깜짝 놀라면서도, 그의 표현력에(몸을 돌보지 않고 전시에 미련하게 매달린 인야를 향한, G만의 투박하고도 절절한 애정 표현에 )...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야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가 한약을 지어주면, 따라가서 먹을 것이고... 다시 회복되면, 그도 싫어하는 슬픈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될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인야는 한편으론 흐뭇했고 또 한편으론 서글펐고 허무하기까지 했다.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도 전시장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오전 내내 단 두 사람이 왔다 갔을 뿐이었다.
인야는 텅 빈 전시장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었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을 뿐이다.
미술관 전시실 문제로 잠깐 들른 김씨는 인야에게,
"매일 나오네!" 하고 혼잣말 비슷하게 하더니 동행인과 같이 나갔는데,
그랬다. 인야는 매일 전시실에 나왔다.
그것도 새벽밥 먹고 김포에서 한 시간 사오십 분의 시간을 들여, 문 열어주는 관리인보다 먼저 나와 공원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것이 전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인야는 믿고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야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니까.
그리고 전시가 끝났다. 비가 오는 가운데 오후엔 사람도 없이 겨우 인야가 아는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전시가 끝나기 전에 와보기 위해 온 사람 빼고는 별 일없이 전시는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전시장에서 작품을 철수함으로써 인야의 여덟 번째 전시, 개인전은 끝이 났다.
돌아켜 보니, 공교롭게도 딱 1년 전... 독일에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고 있었던 밤이 그날이었다.
송정역에서 내려 강화버스로 바꿔타고 내내 멍청히 오다가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던 인야는, 내릴 곳을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언뜻, 기말고사가 끝난 학생처럼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 순간, 어느덧 살기 싫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신이 비참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는 또,
'전쟁에서 지고 돌아가는 패잔병이 이런 모습이겠지......' 하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