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살다 보니...

3장, 변화의 조짐 I. 최악의 여름

작성자남궁|작성시간26.06.07|조회수61 목록 댓글 0

3장, 변화의 조짐

 

I. 최악의 여름

 

이튿날 아침, 인야는 친구 G를 만나 청량리 위생병원 앞의 한의원으로 향했다. 진맥을 받고 약을 지었으나, 약은 다음 날이나 되어야 나온다고 했다.

G는 회사 일도 제쳐두고 오전 시간을 온전히 인야에게 할애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 달 40만 원씩, 세 달간 이어질 적지 않은 약값까지 모두 책임지기로 했다.

결코 적다고 볼 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인야의 건강을 위해 친구가 기꺼이 지갑을 여는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인야는, 겨우 상대가 알아들을 정도의 나직한 한마디만을 내뱉었을 뿐이다.

"고맙다!" 

물론 마음속으론 어정쩡한 감동과 부채감이 뒤섞인 독백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너에게 결코 이렇게 하지 못할 텐데, 어떡한다냐?' 

 

이틀 뒤, 인야는 전북 임실 옥정호반에 자리한 친구 E의 통나무 집에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말썽이었다. 지난밤에도 속이 쓰려 괴로워하다가 두 번씩이나 일어나 토해냈다.

저녁 식사로 먹은 E의 처가 갖다준 개고기 보신탕을 고스란히 게워냈던 것으로, 몸을 보호하려고 먹은 것이 오히려 토해내느라 겪은 괴로움까지 더하면... 차라리 손해를 본 거나 다름없었다.

몸은 이토록 인야를 갉아먹고 있었지만, 지난밤 커다란 창 너머로 쏟아지던 달빛만큼은 유난히도 맑았다.

속쓰림에 눈이 떠질 때마다 그 맑은 달빛이 눈에 들어왔으나, 밀려드는 통증 때문에 아름답다는 생각조차 품을 여유가 없었다.

그 탓에 아침이 밝았는데도 여전히 기운이 없어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큰 창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투명했고, 호숫가 특유의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부드럽게 스쳐... 모처럼 느껴보는, 때묻지 않은 자연의 상쾌한 아침이었다.  

쓰린 속이지만 무어라도 채워 넣어야 했기에 인야는 달걀 두 개를 삶았다.

그러고는 전날 먹다 남은 감자 두 개가 놓인 접시 위에 달걀을 가지런히 올려두고는, 뜨거운 김이 식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켠 FM 라디오에서는, 그날도 무척 맑고 더운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삶은 감자와 달걀 두 개로 아침을 때운 뒤, G가 지어준 한약을 데워 마셨다.

인야는 창밖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스케치북을 꺼내 펜으로 스케치를 시작했다.

세상일을 다 잊고 호수 위에서 잔잔하게 움직이는 물살과 살랑이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보니, 눈앞의 세상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 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나를 할퀴어대는구나. 전시를 실패한 화가의 처지에 휴양을 하러 온 것도 아니고, 그저 단 며칠이나마 쉬어보겠답시고 무리해서 내려온 길인데... 제발 편하게 지내다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자신의 몸 상태를 통감할 때마다, 인야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날은 점점 더 후텁지근해졌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배어 나올 만큼 더위가 짙어졌지만, 짙푸른 초록 속을 이따금 날아다니는 나비들만이이... 이곳이 깊은 산골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어느새 하늘에 구름이 한 꺼풀 덮이기에, 인야는 기분 전환 삼아 집을 나와... 큰길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돌아왔다.

터덜터덜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의 경치가 새삼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규칙하게 밀려오는 속쓰림 때문에 힘없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지만, '막은댐'까지 간 김에... 거기 구멍가게에 들러 과자 한 봉지를 샀다.

돌아오는 길, 멀리 산자락이 겹겹이 보이고 호수도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인야는 마치 소풍을 온 어린아이처럼 언덕에 앉아 과자를 아작아작 먹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다시 통나무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녁은 굶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속을 비워두면, 적어도... 토해낼 괴로움은 없을 테니까.'

그사이 하늘은 언제 흐렸냐는 듯 다시 맑게 개어 있었고, 투명한 햇살이 호수 위로 부서지고 있었다. 

 

다시 하룻밤이 지나갔다.

지난밤의 달빛은 무리를 지어 희미했고, 인야는 다행히 속쓰림 속에서도 구토 없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비가 올 거라던 예보대로 날은 온통 흐려 있었다. 달력을 보니 어느덧 6월이었다.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가는구나......'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뻐꾸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잊을 만하면 처연하게 울어댔다.

창가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때마침 길을 지나가던 옆집 농부가 인야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인야가 가볍게 목례를 건넸음에도 그 농부는 걸음을 멈춘 채 인야를 의아한 눈빛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하도 민망해서 인야가,

"왜 그러시는데요?"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려 보았지만, 유리창 밖이라... 소리가 닿지는 않은 듯했다.

농부가 이내 나무 아래쪽 길로 사라진 뒤, 인야는 생각했다. 

'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혼자 처박혀 지내는 모습이 그 사람 눈에는 미심쩍게 보였던 걸까?' 그러다가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허긴, 낮에는 늘 창가에 유령처럼 앉아 있고, 이따금 호숫가를 힘없이 걷다가... 밤에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온 밤을 지새우니, 그 사람으로서는 내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꽤나 궁금할 만도 하겠구나......' 

 

지난밤  역시 속쓰림은 있었지만, 구토 증세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약을 복용한 지 사흘째가 되니 조금씩 몸에서 약효가 도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늘은 종일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E의 처로부터 풀을 뽑으러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인야는 갑자기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통나무집의 거대한 유리창 아랫부분에 하얀 종이를 이용해 무언가 구조물을 만들어 설치한다면, 보기에도 근사할 뿐만 아니라 저 훵하고 심심한 창 공간이 한결 살아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그 길로 인야는 홀린 듯 작업에 착수했다. 버팀목으로 나무를 대고, 철사를 정교하게 고정하여 무게중심을 잡아가며 형태를 만들어가는 작업이었다.

그 얼마 뒤 조카와 함께 삼계탕이며 과일을 양손 가득 들고 들어온 E의 처는, 창가에 세워진 조형물을 보더니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머머! 인야 삼촌은 역시 예술가예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대?” E의 집에서는 늘 인야를 삼촌이라 불렀는데, 그녀는 연신 환호성을 지르며 감탄했다. 그러고는 혹여 인야의 작업 흐름이 깨질까 염려되었는지, 이내 조카의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잔디밭의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찌푸린 날씨는 계속되었다.

오후가 이슥해질 무렵, 도시에서 일을 마친 친구 E가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창가의 작품을 본 E 역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인야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너는 몸이 이 지경인데도 이런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구나. 역시 대단한 재주를 가졌어.”

E는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으니 전주 시내로 같이 나가자고 권했지만, 인야는 사양하고... 홀로 통나무집에 남기를 택했다.

 

서울에서의 전시를 끝내고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제대로 된 복기를 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조용한 호숫가에 앉아 가만히 돌이켜 보니, 참 가혹하게도 이번 전시를 통해 인야가 열망했던 일 중 단 어느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뼈저리게 다가왔다.

판화 몇 점을 제외하고는 정작 메인 작품이 한 점도 팔리지 않았고, 전시를 통해 인야의 예술 세계를 깊이 알아줄 평론가나 컬렉터를 만난 것도 아니었으며, 중앙 매스컴에 기사 한 줄 실리지 못했다.

물론 그런 세속적인 결과들이 작품의 본질적인 가치를 직접 평가하는 잣대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인야에게는 지친 생에 일말의 활력을 불어넣어 줄 ‘어떤 사건’이 이번 전시를 통해 단 한 가지만이라도 벌어졌어야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실마리는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가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능력을 쥐어짜며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구나. 이 세상이 싫다. 살아갈 기운도, 다시 붓을 잡을 의욕도 없다. 어디서부터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다가 스러져야 하는 건지…….’

사방이 벽으로 막힌 듯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야는, 이 세상의 낙오자로 남기는 싫었다. 

 

호숫가 통나무집에 내려온 게 어느새 닷새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고요 속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서울의 대학 강의를 나가야 했기에 서둘러 자리를 털어야 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구질구질하게 내리고 있었지만 인야는 묵묵히 떠날 채비를 했다.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감은 뒤, 며칠간 머물며 때 묻힌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내리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으며 호수 위를 낮게 날아가는 새하얀 백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E에게서 비가 와서 오늘 현장 일을 나가지 못했다며, 차로 데리러 오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6월의 짙푸른 녹음은 들이치는 비를 맞아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앞집 굴뚝에서는 점심을 짓는지 낮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것이 내리는 비와 엉겨 붙으며 산골 풍경을 아련한 수묵화처럼 연출하고 있었다.

비록 인야는 이제 이곳을 떠나지만, 저 커다란 유리창에는 인야가 매달려 만들어놓은 하얀 종이 작품들이 홀로 남아서 흘러가는 호수의 사계와 풍경을 지켜내 줄 것이었다.

 

다시 김포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몸이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아랫배가 뒤틀리듯 아파왔고, 시도 때도 없이 구토가 밀려왔으며, 세상이 도는 듯한 어지럼증이 엄습했다.

그런 엉망인 몸을 이끌고도 인야는 대학 강단에 서야 했다.

사지가 후들거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억누르며, 겉으로는 학생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농담까지 던졌다. 하지만 돌아서는 길에 밀려드는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육체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이토록 처절한 형벌이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자꾸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고개를 들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거창한 의지는 아니었으나, 무기력한 의식 틈새로 저절로 그 불길한 생각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내 인생이 고작 이 꼴이란 말인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는 생각에 이르자, 인야는 홧김에 머리카락을 바짝 깎아버릴까 하는 충동마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몸은 기이한 방식으로 움직였다.

종로로 나가 외국어학원의 영어회화 반에 다시 덜컥 등록을 한 것이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이 행동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미국행이라는 꿈을 다시 시도해 보겠다는 마지막 발악과도 같았다.

하지만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병원으로 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속옷을 갈아입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에 날려가는 한 장의 가벼운 종이처럼, 영혼이 빠져나간 허깨비 같은 몸을 이끌고 인야는 집을 나섰다.

 

인야는 병원에서의 구질구질했던 2박 3일간의 구체적인 투병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다만, 그 시절의 마지막 단상만을 수첩 한 줄에 남겨두기로 했다.

‘퇴원하려는데 브레이크가 걸렸다. 결론은 결국 돈이었다. 총 병원비가 38만 원이라고 했다. 그나마 1급 생활보호대상자 할인을 적용받은 금액이라는데, 텅 빈 통장의 잔금 10만 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누님에게 전화를 걸어 온라인으로 부족한 차액을 부쳐달라고 간청해야 했다. 모든 것은 돈이다. 병을 고치는 것도 돈이고, 인생을 이어가는 것도 돈이며, 사랑과 죽음마저도 결국은 돈이다. 돈일 뿐이다.’

수납을 마치고 병원 문을 걸어 나왔다.

인생의 끈을 거의 놓아버릴 심정으로 들어갔던 병원이었지만, 비록 만 48시간에 불과했던 짧은 입원 생활 동안 인야는 참으로 많은 인간 군상을 목격하고 체험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 희망과 포기의 교차, 타인을 향한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핏줄이라는 가족의 지난한 사랑과 소중함까지.

병원 밖을 나서자 김포 들녘의 푸른 벼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싱그럽게 인야를 맞아주었다.

다시는 살아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완전히 다른 세상의 눈으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절망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었기에, 그 초록의 들판이 눈물겹도록 반가웠다.

 

6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인야는 지하 작업실에 나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멈춰있던 일들을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잔인하게도 여전히 단 한 가지도 뜻대로 풀리는 일이 없었다.

깊은 한숨과 짜증 섞인 탄식만을 내뱉다가, 냄비에 감자를 삶아 점심으로 대충 때우고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 깜빡 졸았다.

적막을 깨고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드니 뜻밖에도 과거에 흐지부지되었던 '멕시코 벽화 운동' 출간 건으로, 출판사의 새로 바뀐 담당자로부터 온 전화였다.

다음 주중에 시간을 내어 만나 구체적인 출판 진행 방향을 논의해 보자는, 제법 긍정적인 제안이었다.

‘이제는 정말 책을 내겠다는 뜻일까?’

그동안 하도 속아왔기에 여전히 의구심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전화를 끊고 난 인야의 마음속에는 오랜 어둠을 뚫고 한 줄기 희미한 빛이 스며드는 듯한 아련한 희망이 싹텄다.

그 미약한 온기에 힘을 얻은 인야는 내친김에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새로운 구상은 아닐지라도, 테라코타에 한지를 덧입혀 낼 요량으로 조형의 기초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하자. 제발 이대로 늘어지지 말자. 내 실패한 작품들처럼 축 늘어져서 소생하기 힘들어 보이는 그런 처량한 삶은 살지 말자.’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렇게 숨을 쉬고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아무 탈 없이 음식을 먹고 배설하며 땅을 딛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지하철 계단을 숨 가쁘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예전에는 미처 몰랐으나 얼마나 고맙고 기적 같은 일인지를 인야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7월이 찾아왔고, 인야는 다시 종로로 나가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 강제적인 자극마저 없다면 정말 삶의 끈을 놓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장마전선이 제주와 남해안을 정점으로 밀고 올라와 전국에 장대비가 쏟아진다는 뉴스가 들렸다.

어차피 이번 여름에는 형편상 한국을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앞으로 닥쳐올 이 찌는 듯한 무더위를 또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덜컥 걱정부터 앞섰다.

끈적끈적한 열대야를 체질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인야로서는 온몸으로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작년 이맘때는 독일 체류 중이라 유럽의 선선한 여름 속에서 피서를 보냈었지만, 올해는 고스란히 이 땅의 습한 공기를 견뎌내야만 했다.

 

며칠 뒤 출판사로 향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독한 마음을 먹고 나선 길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핑계를 대며 미룬다면 원고를 통째로 돌려받아, 책 출판 자체를 아예 없던 일로 끝내버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출판사의 태도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인야의 책을 전담하게 된 새 직원은 이전의 교활했던 S와 달리 무척 선량해 보였고 진심 어린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공손한 어조로 인야에게 말했다.

“이번 주에 원고 최종 점검을 마치고 다음 주에 조판 작업에 들어가면, 늦어도 8월 말에는 책이 활자화되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 인야의 애를 먹이며 차일피일 미루던 S의 무책임한 말투와는 사뭇 다른, 신뢰가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그 한마디에 인야의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은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만약 예전의 S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속으로 의심부터 했겠으나, 눈앞의 새로운 담당자가 보여주는 언행에는 기꺼이 속아 넘어가고 싶을 만큼 진실성이 있었다.

물론 그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온다고 해서 인야의 팍팍한 삶이 대단하게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좋았다. 활자화된 책을 손에 쥐기만 한다면, 이 캄캄한 생에 작은 이정표 하나는 세울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적어도 자신이 몇 년 동안 온 마음을 쏟아부어 마음에 병이 들 정도로 고생해 온 대상이 마침내 결실을 보고 마무리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출판사 문을 나서며, 인야는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러나 세상은 인야가 온전히 기뻐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영어학원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바닥에 떨어진 신문을 무심코 주워 읽던 인야는 순간 눈을 의심하며 굳어버렸다.

신문 지면에 소개된 어느 미술 교수의 작품이, 인야가 오랜 시간 공들여 정립해 온 독창적인 화풍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현재 미술계에서 잘나간다는 그 대학 교수는 인야의 테라코타 작품을 명백히 모방한 것으로 보였다.

테라코타로 사람의 형상을 정교하게 오려내거나 그 파편을 옆에 나란히 붙여놓는 기법은 인야의 전매특허와 다름없었다.

인야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도리어 인야가 저 유명한 교수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혀를 깨물고 죽을지언정 남의 것을 훔칠 인야가 아니었다. 그럴 이유도,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늘 권력과 명성이 있는 자의 손을 들어주기 마련이므로, 사람들은 이름 없는 화가인 인야를 모방꾼으로 몰아갈 게 뻔했다.

불쾌함과 억울함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들끓었다.

 

그렇게 암울하고 짓눌린 마음으로 종로에서의 영어 수업을 간신히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김포 들녘은 어느덧 푸른 벼들이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연두색과 초록색의 찬란한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마침 비가 한 차례 시원하게 쏟아진 뒤 바람이 불고 고기압이 내려앉은 덕분인지, 하늘은 가을날처럼 더없이 높고 투명했으며 공기 또한 폐부 깊숙이 상쾌하게 스며들었다.

참으로 잔인하게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 이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내 삶은 왜 이리도 남루한가.’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마 책이 출간된다는 희망의 불씨 하나로 겨우 버텨온 나날이었는데, 그 일마저 순탄하게 굴러가지 않았다.

책에 수록될 도판 자료들을 외국 서적에서 마음대로 긁어다 쓸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출판사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저작권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해외 출판사들과 복잡한 서류 절차를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로열티 비용까지 지불해야 할 판이었다.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도판 비용 때문에 차라리 책을 내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인야는 작업실 의자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채 넋을 잃었다.

그토록 애를 태우며 기다려온 일인데, 고작 이런 행정적 문턱에 걸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자 인야는 다시 처참한 나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세상의 모든 거대한 톱니바퀴가 오직 인야 한 사람을 파멸시키기 위해 맞물려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불행은 결코 홀로 오지 않는 법이었다.

며칠 뒤 비가 쏟아지는 날, 학원에서 직접 작업실로 가지 않은 상태에서 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인야는 깜짝 놀라 폰을 고쳐 잡았다.

장마철 집중호우로 인해 김포 아파트의 베란다 외벽에서 빗물이 새어 들어와, 인야의 소중한 그림들을 쌓아놓은 통로에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는 것이었다.

그 아수라장을 정리하느라 이 무더운 날씨에 누님과 매형이 온몸이 땀과 빗물에 젖도록 물을 퍼내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부리나케 김포 집으로 달려가 문을 열자, 눈앞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젖은 그림들이 거실과 방안 가득 피난민처럼 널려 있었고, 급히 부른 아파트 관리소 인부들이 외벽 벽면을 뜯어내며 보수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아파트의 알루미늄 샷시 시공 자체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수백 가구가 사는 이 거대한 단지 중에서, 하필이면 인야의 목숨과도 같은 그림들이 빼곡히 쌓여 있는 바로 이 방에 물이 들이친 것일까.

순간 인야의 가슴 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듯 치밀어 올랐다.

눈앞의 수해 상황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지독하리만치 재수가 없고 뒤틀려 있는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향한 분노였다.

‘왜 나인가. 왜 나에게만 끊임없이 이런 가혹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는 것인가. 정말 이 세상이 나라는 존재를 통째로 지워버리려고 작당이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얼마나 더 버티나 조롱하며 시험하려는 것인가. 빌어먹을 세상 같으니라고! 그래, 마음대로 해라.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나를 더 이상 이 구질구질한 지옥 같은 세상에 묶어두지 말란 말이다! 눈앞에 널려 있는, 내 평생을 바쳐 애지중지 아끼던 저 그림들을 모조리 모아놓고 불을 질러버리고 싶다. 저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제는 다 무거운 애물단지일 뿐이다. 내 삶을 구원하기는커녕,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게 만들며 물질적으로는 단 한 푼의 도움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짐 덩어리들! 다 없애버려! 다 필요 없어! 미치겠다,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