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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II. 여름의 막바지

작성자남궁|작성시간26.06.08|조회수82 목록 댓글 0

 

II. 여름의 막바지

 

날이 몹시 더웠다.

지하 작업실의 습하고 후텁지근한 공기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인야가 밖으로 나오니, 지상에는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숨이 턱 막히는 폭염 속에서도 인야는 곧장 영등포구 신길동으로 향했다.

엊그제 TV 뉴스에서 보았던 서민용 ‘임대 아파트’의 신청 자격과 실물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현장에서 마주한 열 평 남짓한 아파트는 혼자 머물며 작업하기에 더없이 아늑하고 실용적인 구조였다.

방 두 칸에 화장실과 주방이 복도를 따라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베란다도 화분을 놓거나 짐을 두기에 제법 넓고 쾌적했다.

눈으로 공간을 확인하고 돌아와 누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자, 누님은 얼굴 가득 반색을 하며 무조건 신청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지금 지내고 있는 김포 아파트도 고맙긴 하지만, 서울로 직장을 다니는 조카들과 인야의 교통비가 매달 길바닥에 엄청나게 버려지고 있는 형편이라... 만약 인야가 그 임대 아파트에 당첨만 된다면, 조카들의 출퇴근 동선은 물론 인야의 이동 문제까지 한결 여유롭게 조율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너무나도 당연한 기대감이었고, 오히려 당사자인 인야보다 누님이 더 흥분을 한 상태로... 당장 실행에 옮기라고 성화를 댔다.

 

숨 막히는 폭염은 가실 줄을 몰랐고, 뉴스에서는 거대한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태풍이 몰고 올 바람도 걱정이었지만... 내심 비라도 시원하게 쏟아져 작금의 지독한 가뭄과 물 부족 사태가 깨끗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큰 상태였다.

그 와중에 인야는 신길동 산동네에 들어설 임대 아파트의 청약 신청을 무사히 마쳤는데, 접수 현장에는 인야 자신처럼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집 한 칸을 갈망하는 서민들이 붐비고 있었다.

‘제발 되어야 할 텐데......’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당첨 여부는 오롯이 신의 영역이자 운명에 달린 셈이었다.

그곳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인야로서는 드디어 온전한 홀로서기를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꼭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어쩌면 지금의 인야에게 ‘독립’이란 인생 최대의 화두이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생존 조건이었기에, 그 절박함은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묵직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인야가 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누님의 혜안 덕분이었다.

인야가 스페인에서 지내던 시절, 중간에 한 번 어머니를 뵈러 고국에 들어왔을 때... 누님은 인야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너,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나중에 더 나이 들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누울 방 한 칸 없으면 어쩔거야?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 '청약 저축'이라도 미리 들어놔라.”

당시만 해도 세속적인 부동산이나 저축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인야였지만, 그때도 누님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청약 통장을 개설했었다.

스페인을 오가는 고단한 삶 속에서 매달 10만 원씩 나가는 납입금을 제때 내지 못하고 거른 횟수가 채운 횟수보다 훨씬 많았지만, 세월은 뜻밖의 선물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더구나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로 주소지를 옮겼던 덕에, 인야는 ‘단독 세대주’는 물론 무려 25년 동안의 ‘장기 무주택자’라는 특수한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고 있었기에... 다른 경쟁자들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인 ‘청약 1순위’ 자격을 쥐고도 있었다.

그러니까 앞날을 알 수 없던 시절, 만약을 위해 준비해 두라던 누님의 조언이... 이토록 눈앞이 캄캄한 여건 속에서도 독립을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이 되어준 셈이었던 것이다.

 

영어 회화 수업을 하느라 시내에 머무는 동안, 시간이 남으면... 인야는 종종 대형 서점에 들러 서가 사이를 기웃거리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날도 종로 영풍문고에 들어가 이런저런 신간 서적들을 뒤적였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남미 7개국 여행기’라는 책을 집어 들고는, 칠레 남태평양의 외딴섬 ‘이스터 섬’이 소개된 장을 집중적으로 펼쳐 읽기 시작했다.

마치 조만간 그곳으로 훌쩍 떠나기라도 할 사람처럼 진지한 눈빛이었다.

‘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지상에서의 삶이 끝나기 전에... 꼭 한 번은 이 신비로운 모아이 석상들이 서 있는 고독한 섬에 발을 디뎌보고 싶은데......'

당장 서울 시내를 오갈 지하철 교통비마저 바닥을 드러내는 빈털터리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인야는 지구 정 반대편으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스스로도 멋쩍어,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움츠린 몸짓으로...

'나란 인간은, 참... 철도 없어!’ 하기도 했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지......' 하던 이 인야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 한 편으론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얘긴데...... 근데, 그 때가 몇이었었지?' 하면서는 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마흔 셋인가 넷일 때였다. '그랬던 내가 그 뒤로 20 년이 지난 재작년, 예순 다섯의 나이로... 역시 넉넉하지 못했던 형편에도 남미 여행을 강행했었고, 결국 그 '이스터 섬'에도 가보았던 건데......' 하다간, '그러고 보면 나도, 보통 집요하고 독한 사람이 아냐. 그렇게 한 번 맘먹은 일은 꼭 이루려고 하니...... 근데, 돈도 없이 그러려고 하니... 실제로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 ' 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도 하늘이 잔뜩 흐린 것이 비가 내릴 조짐이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무서운 집중호우가 쏟가질지도 모른다는 예보를 들으며, 지하 2층 작업실에 홀로 앉아 있던 인야는 문득 이 깊은 공간에 물이 가득 차오르는 불길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만약 이곳이 잠긴다면, 내가 빚어낸 저 흙 작업물들은 형체도 없이 풀어져 사라져버리겠지? 벽에 걸린 드로잉 작품들도 흙탕물 속에 젖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을 테고......’

작품의 유실도 끔찍했지만, 더 소름 끼치는 것은 목숨의 위협이었다. 지하 2층의 폐쇄된 공간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탈출할 방법마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압 때문에 육중한 철문은 열리지조차 않을 것이며, 물은 순식간에 천장까지 차오를 터였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혀, 인야는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마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건물의 관리소장과 마주쳤다.

인야는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고,

"소장님! 이 지하 건물이 혹시 폭우에 잠길 위험은 없나요?" 하고 물었다.

소장은 인야의 안색을 살피더니,

"여기는 원래 지대가 높은 데다, 배수 시설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텐데요?" 하며, 오히려 허허 웃는 것이었다. 

이토록 막막한 상황 속에서도 인야는 스스로가 여전히 삶에 대한 애착을 품고 있음을 느꼈다. 어쨌든 그런 무력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뒤 인야는 흙을 쥐고 화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상으로, 내부를 비워 나중에 흙을 채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잘 말려두었다가 다른 작품을 구울 때 함께 가마에 구워내면, 그 안에 꽃을 심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즈음 들어 늘 일찍 김포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인야는, 그날만큼은 진종일 지하 작업실에 머물렀다.

이제 영어회화 수업마저 나가지 못할 처지가 되었으니, 자신은 공식적으로 어디론가 나갈 일조차 완전히 사라진 사람이 된 기분이었으니까. 

그렇게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 달이 지나고 7월도 다 갔다.

인야는 7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다가올 8월의 달력을 만들었다.

 

지하 작업실에 홀로 앉아 지낸 일요일, 인야는 잡념을 지우기 위해 묵묵히 목판을 깎으며 시간을 보냈다.

전날부터 붙잡고 씨름하던 목판 위에, 부조 형태로 새겨 넣는 ‘일기’ 연작 중 하나를 마침내 완성했다.

칼 끝에 온 힘을 실어야 하는 고된 육체노동이었고 시간도 엄청나게 잡아먹는 일이었지만, 작업을 다 끝내고 조각도를 내려놓는 순간 밀려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했다.

한지와는 또 다르게, 거친 나무 표면 위에 부드럽게 밀착되어 표현된 인간의 형상에서 묵직한 내면의 깊이감이 배어 나왔다.

모처럼 스스로의 작업 결과물에 깊이 만족하며, 인야는 가슴 가득 차오르는 순수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화가로서의 희열이었고, 그 순간만큼은 작업실의 눅눅한 더위조차 깨끗이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육체는 영혼의 기쁨을 시샘하는 모양이었다. 가라앉는가 싶던 몸이 이번에는 엉뚱한 곳에서 말썽을 부렸다.

항문에 심한 통증과 염증이 생겨, 의자에 제대로 앉아 있기는커녕 똑바로 걷는 것조차 불편해진 것이다.

인간의 신비로우면서도 저주스러운 구조회로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고작 항문 주변이 조금 아플 뿐인데, 가벼운 기침 한 번을 할 때마다 척추를 타고 온몸이 찌르르하게 울리는 극심한 방사통이 밀려왔다.

당당하게 살아간다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구차하게 목숨줄만 연명하고 있는 꼴 같아... 인야는 스스로가 무척이나 혐오스러웠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하 작업실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구형 카세트 오디오의 모터마저 수명을 다해 고장 나 버렸다.

더 이상 어떤 음악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야에게 여간 서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어둡고 컴컴한 지하 공간에서 인야가 미치지 않고 하루를 버텨낼 수 있도록 지탱해 준 유일한 버팀목이 바로 낡은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인야는 지난 학기 모 예술대학교에 시간 강사로 출강하면서부터, 학교 중심부에 위치한 한 거대한 콘크리트 벽면을 유심히 눈여겨보고 있었다.

명색이 예술대학이라는 곳인데, 캠퍼스 중앙에 아무런 미적 감각도 없이 삭막하고 멋대가리 없는 대형 벽면이 턱 하니 버티고 있는 모양새가 늘 마음에 걸렸다.

‘저 황량한 공간에 볼륨감 있는 멋진 조형 미술품을 설치한다면 캠퍼스의 분위기가 완전히 살아날 텐데’ 하는 화가로서의 열망이 피어올랐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야 개인의 순수한 상상일 뿐, 학교 행정 측에서는 그런 예술적 환경 개선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을 게 뻔했다.

인야는 혼자 구상만 다듬어가다가, 어느 날 결심한 듯 그 벽면에 걸맞은 거대한 조형물 설치 가상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학구적인 사유에 잠겨 있는 인간의 형상을 인야 고유의 화풍으로 녹여내되, 정형화된 사각형의 틀을 과감히 탈피하여 구불구불한 입체감이 살아 숨 쉬도록 평면과 곡선을 조화롭게 배치한 이색적이고도 정감 어린 설계였다.

완성된 밑그림을 보니 화가로서 전율이 일 만큼 만족스러웠다.

이 근사한 구상을 대체 누구에게 보여주어야 현장 설치라는 기적 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고심하던 중, 마침 인야를 이 대학 강사로 추천해 주었으며 대학 총장 가문과도 깊은 친인척 관계에 있던 J 선생님께 슬그머니 가상도를 보여드렸다.

그림을 확인한 J 선생님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아니, 이 선생…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해냈어? 이 선생은 정말 보통 예술가가 아니구만!”

J 선생님은 연신 감탄하며 인야의 기를 살려주었고, 당장 이 대학교의 실무 책임자인 S 교수와 진지하게 상의해 보라고 길을 열어주었다.

인야는 힘을 얻어 이번에는 S 교수에게 기획 밑그림을 제출했다.

S 교수 역시 그림을 마주하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아니, 이 놀라운 기획을 정말 이 선생 혼자서 구상했단 말입니까?” 그는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하더니, 이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좋습니다. 내가 당장 총장에게 직접 보고를 올려서, 이 선생과 총장이 독대할 수 있는 자리를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소.”

 

그렇게 주선된 총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인야는 잔뜩 긴장한 채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젊은 총장의 관심은 인야가 밤새워 준비한 예술적 가치나 작품의 철학이 아니었다. 오직 예산, 즉 ‘돈’이었다.

총장은 다짜고짜 이 거대한 벽면 조형물을 설치하는 데 총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차갑게 물어왔다.

인야는 그저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와 가상도를 제안하러 간 자리였기에, 구체적인 시공 자재비나 인건비 같은 견적 액수까지는 사전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금액 앞에서 인야가 말문이 막히자, 총장은 묘한 태도를 보이며... 이 프로젝트를 일단 철저히 비밀리에 부치고 조용히 추진하자고 당부했다. 외부의 다른 교수들이 알면 시끄러워진다는 이유였다.

어찌 되었든 꿈에 그리던 조형물 설치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야는 가슴이 터질 듯한 희망을 품었다.

이것만 성공한다면 이 지긋지긋하고 절망적인 세상도 기꺼이 활기차게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명색이 예술대학이라 내로라하는 정교수 파벌들이 텃세를 부리며 줄을 서 있는 마당에, 일개 뜨내기 시간 강사 주제에 학내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대형 랜드마크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낸다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젊은 총장은 행여나 잡음이 날까 두려워 그저 인야에게 말조심만 강조할 뿐, 확답을 주지 않은 채 두어 달의 시간을 지루하게 끌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총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인야와의 면담을 교묘히 피하기 시작했고, 아무런 권력도 빽도 없는 인야는 그저 저편의 처분만을 바라보며 매일 마른침을 삼키고 목을 길게 뺀 채 간절하게 소식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세상에 조형물 하나라도 제대로 설치할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으나, 결국 그 일도 신기루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만약 자신이 조금만 더 세속적인 수완이 좋아서, 추진력 없던 젊은 총장을 감언이설로 구워삶고 설득했더라면... 어쩌면 그 벽면에 작품이 당당히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인야는 애당초 그런 비굴한 정치질을 할 위인이 못 되었고, 도리어 그의 우유부단함만 원망하며... '재수 없는 팔자에 무슨 엄청난 횡재가 따르겠냐?'고 지레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 있었으니... 일이 성사될 리 만무했다. 지금도 인야의 낡은 포트폴리오 자료집 한구석에는 그때 완성했던 캠퍼스 벽면 가상도가 빛바랜 채 잠들어 있었다. '만약 그때 실현되었더라면, 그 대학교의 명물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참으로 부질없는 입맛만 다시게 되는 과거였다.  

 

김포로 거처를 옮긴 뒤로는 서울 시내로 나오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 하는 통근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인야는 자연스럽게 지하철 객차 안의 의자나 선반 위에 뒹구는 무상 신문들을 주워 읽는 버릇이 생겼다. 활자 중독처럼 읽어 내려가다 보니 의외로 세상의 온갖 광고나 유익한 생활 정보들을 제법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최근 인야의 눈을 사로잡은 것도 바로 그 신문 광고들이었다.

자신처럼 재산이 없는 영세민들에게 자격을 주는 서민 임대 아파트 청약 신청 공고라든가, 국가에서 국비로 전액 지원하는 무료 컴퓨터 교육 정보들이 들어오는 대로 인야는 신청서를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에는 여의도 한복판에 대규모로 조성 중인 ‘여의도 공원’의 조각 공모전 광고까지 접하게 되었다.

훵한 광장에 예술적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대규모 조각 조형물을 공모한다는 소식에 인야의 심장은 다시금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사실 인야는 과거 멕시코 벽화 운동에 매료되었던 시절 이후부터, 공공장소에 거대한 조형물을 설치하는 환경 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왔다.

하지만 몇 년째 끌어온 저서 '멕시코 벽화 운동'이 출판사 사정으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마당에, 조각 전문 화단에 명함 한 장 내밀지 못하는 무명 화가의 처지로는... 어디 가서 대접을 받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더구나 한국 미술계는 학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텃새’가 유독 심한 바닥이었다. 국가적 조형물 사업을 따내려면 유력한 조각가 협회나 거대 파벌의 회원증을 쥐고 있어야만 주류 장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폐쇄적인 구조였다.

아무리 인야가 테라코타나 점토 작업에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 왔고, 몇몇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신선하다고 치켜세워 줄지언정, 주류 조각 화단의 눈에 인야는 그저 영역을 침범하려는 기이한 이방인에 불과했다.

그들은 인야를 자신들의 리그에 끼워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인야는 인맥과 파벌이 통하지 않는 블라인드 공개 공모전에 더더욱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실력만으로 당당히 당선되어 그 오만한 주류 미술계 인간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보란 듯이 작품을 세우고 싶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그리하여 인야는 무모해 보이지만 ‘여의도 공원 조각 공모전’에 정식으로 응하기로 결심했다.

총 서른두 점의 당선작을 선정한다는데, 한 작가당 최대 두 점까지 출품이 가능했다.

실제 공원에 작품이 설치되었을 때의 풍경을 정교하게 그려낸 설치 예상도를 제출해야 하기에, 인야는 요즘 눅눅한 작업실에서 온 정신을 종이 위에 집중하며 밤샘 스케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공모전의 출품 경력이라도 차곡차곡 쌓아두어야, 훗날 조형 미술가로서 자립하는 데 일말의 근거라도 마련할 수 있을 터였다.

 

돌이켜 보면 최근 들어 인야의 삶은 온통 도박 같은 신청과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의도 공원 조각 공모전’과 ‘예술대학 캠퍼스 조형물 설치 건’, 그리고 ‘신길동 임대 아파트 접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보다는 조금 가벼운 것일 테지만, 오늘은 화곡동 산자락에 위치한 기능대학의 무료 ‘멀티미디어 강좌’ 수강 신청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기능대학 캠퍼스는 번쩍이는 최신식 현대식 기자재와 시설을 갖추고 있어 좋아 보였지만, 통학하기에 교통이 몹시 불편해 보였고 언뜻 봐도 배움을 갈망하는 실업자들이 몰려들어 경쟁률이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

아무튼 서류 접수는 해놓았으니 이제 면접 심사만이 남은 셈이었다.

이 역시 합격 여부는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듯, 가만히 세어 보니 현재 인야의 삶을 송두리째 쥐고 흔드는 하늘의 처분만 해도 벌써 여러 개였다. 이 중 단 한 가지라도 제때 풀려준다면 앞으로 인야의 남루한 인생은 새로운 활기를 띠고 대전환의 계기를 맞이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 서너 가지의 굵직한 일들 중, 도대체 어떤 것이 합격의 승전보를 울리고 어떤 것이 잔인한 낙방의 고배를 마시게 될지 인야는 몹시 궁금하면서도 가슴이 터질 듯 초조했다.

그렇다고 그 모든 행운이 온전히 자신에게 쏟아지리라는 허황된 기대를 품지는 않았다. 세상이 그렇게 자비롭지 않다는 것쯤은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모든 희망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불합격이라는 절망으로 돌아오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인야의 처지는 그 중 단 한 가지라도 반드시 성사되어야만 하는 벼랑 끝이었다.

여기서 또다시 모든 문이 닫히고 고꾸라진다면, 정말이지 더 이상 삶을 지탱해 낼 일말의 희망조차 완전히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잔인하게도 인야 인생 전체의 향방을 가를 그 모든 중대한 결과들이 바로 다음 주 한꺼번에 발표를 앞두고 몰려 있었다.

인야는 온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선 채, 목숨줄을 쥐듯 그 일들에 온갖 희망과 기도를 걸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이제는 한여름의 악독한 더위가 지나가고 제법 서늘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새벽이었다.

인야는 다가올 결과들을 생각하며 설레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새로이 다가오는 9월과 가을의 길목에서는, 내 남루한 생활도 제발 가치 있는 예술인의 삶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무엇이든 단 하나만이라도 꼭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인야는 정말 오랜만에 사당동에 사는 작은형님 집에 들렀다. 워낙 오랜만의 불쑥 찾아온 방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가족이 인야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형수님이 차려준 따뜻하고 맛있는 집밥을 배불리 얻어먹고, 후식으로 깎아준 커다란 복숭아 한 조각을 입에 베어 물었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인야는 한참을 망설이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마침내 가장 꺼내기 어려운 무거운 돈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냈다. 형수님은 군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그 자리에서 선뜻 거금을 융통해 주었다.

현금 백만 원.

빳빳한 지폐 뭉치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형님의 집 문을 나서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 인생이란 참 이런 것이로구나…….’

결국 막다른 길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부모 형제의 핏줄밖에 없다더니, 그 모진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형제는 끝내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손을 잡아주었다.

비록 언젠가는 갚아야 할 무거운 빚이었지만, 그 돈 덕분에 당장 차비마저 없어 굶주리던 인야의 꽉 막힌 일상에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여유가 생겨났다.

‘이 위기를 어떻게든 헤쳐 나가자. 나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하 바닥에서 눈칫밥만 먹으며 살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어느새, 정말이지 인야도 모르는 사이에 김포 들녘의 성급한 어떤 논들에는 초록빛이 가시고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끔찍한 폭염이 영원할 것처럼 기세를 부렸어도, 계절의 섭리 앞에 가을은 이미 코앞까지 엉금엉금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들판을 바라보며, 인야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나도 이 가을에는... 절대로 지금처럼 구차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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