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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III, 변화의 조짐

작성자남궁|작성시간26.06.09|조회수78 목록 댓글 0

 

III, 변화의 조짐

 

처서가 지나고 가을이 왔다.

며칠 사이에 바람은 달라져 있었고, 햇살도 따갑도록 눈부셨다. 조금씩 가을이 오고 있다는 현상들이었다.

그 주에 인야에겐 중요한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었다. 물론 생활 계획표처럼 일정이 차례로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리고 우연히도 그 주에 다 몰려있는 것이... 어찌 보면 희한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가능성이야 다양할 것이었다. 다 이뤄질 수도, 다 안 이뤄질 수도, 일부만 이뤄질 수도 있을 테니......

전날 하루는 신촌 작업실에 가서 J선생님을 만났다.

00 대학 캠퍼스 조형물 건 때문이었는데, 총장과 가족이라는 그분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인야의 뜻을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만약 그 일을 맡겨준다면, 개인적인 수고비 없이 재료비와 인부들의 인건비만으로 작품을 설치하겠다는 선언까지 해두었다.

당장 어딘가 다닐 교통비마저 없는 인야가 호기롭게 그 일을 하겠답시고 덤벼든 꼴이긴 해도, 그렇게라도 해서 이 세상에 자신의 조형물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의도 조각 공모에도 작품을 내러 갔다.

모형도 두 점을 그려놓긴 했는데, 잘 됐다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할 것 같았다.

그중 한 점은 그런대로 괜찮긴 했는데, 나머지 한 점은 다소 미흡해 보였기 때문이다. 작품 자체가 주변 환경과 밀착돼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인공개울에 설치할 가상도를 그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내 의도를 알아채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물론 딴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지만.

 

기능대학 멀티미디어 강좌 면접도 보러 갔다. 

화곡동 산에 있는 대학 캠퍼스는 현대식으로 시설이 좋아 보이긴 해도 교통이 불편했다. 그래도 되기만 한다면, 열심히 할 것이었다. 뭔가를 배운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버텨낼 이유가 생기는 것이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신청을 해 밀려서인지 오전 10시라던 시간이 오후 1시로 조정되었다고도 하니, 미리부터 긴장이 아니 될 수가 없었다.

 

시작은 '서민 임대 아파트 추첨'이었다. 인야가 걸고 있던 몇 가지 일 중에서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던 것이었는데......

다른 아침처럼 인야는 지하작업실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시간은 넘어 아파트 당첨 결과는 나와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인야는 두려움 때문에 조금 뜸을 들이고 있었다.

'되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안 되면 어떡한다?'

그렇게 너무 간절하게 바라던 일이다 보니, 떨어지고 나면 그에 따른 실망이 두려웠고, 그 절망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전화 걸기마저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지하철 역에 들어가면서 공중전화를 이용했는데,

떨어졌다.

"합격자 명단에 없는데요." 하기에,

"그런가요?"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만 속으론,

'뭐라고? 또 안 되었다고?'

순간 인야의 머리는 백지가 돼버렸다.

 

지하철에 올랐다.

비어있던 앞좌석 뒤의 유리에 인야의 모습이 비춰졌다. 억지 웃음을 지어 보았지만, 스스로가 안타까웠다.

지하철이 두 정거장을 지날 때 인야는 바삐 내렸다.

'혹시 내가 번호를 잘못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번엔 통화 중이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안내양이 컴퓨터를 조회하는 듯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명단에 없습니다."

"아, 그러세요?" 하면서 다시 전화를 끊었다.

'틀림없는 일이리라. 운도 없는 내가, 되는 게 있을라구?'

인야는 자학하기 시작했다.

'어서 지하작업실에나 가자. 내가 갈 곳은 거기밖에 없다.'

그 뒤로 인야는 어떻게 지하작업실에 도착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인야는 지하작업실에서 눈을 감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렸던 일이었던가. 전철을 타고 그 근방을 지날 때마다, 차창 밖으로 보이던 그 아파트를 바라보며 당첨되길 기다렸는데. 채 열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어디 외국에 나가더라도 돌아오면 갈 곳이 있다고, 이제 누님네 눈치 그만 보고 살 수도 있다고, 새로운 환경에서 내 일을 해보려고 잔뜩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그러나 하늘은 끝내 인야의 편에 서주지 않았고, 모든 꿈이 물거품으로 끝난 것이었다.

 

그렇게 아파트 건이 떨어진 다음 날, 지하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구겨서 버렸던 아파트 안내 유인물 위에, 오늘은 기능대학 광고도 접어 던졌다.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지만, 멀티미디어 교육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합격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야는 그 지원자들 중에서도 고령 층에 들도록 젊은이들이 많았기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 교육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 떨어뜨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낙방된 안내물들이 이 지하작업실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희망도 없었다.

'그렇다면, 내일은 여의도 조각 공모 지침서도 구겨버리게 될까?'

빤한 일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단추가 어긋났는데, 세 번째 단추라고 잘 끼워질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00 대학에서 아무 연락이 없는 걸 보면 2학기에는 강의도 없나 보았다.

그 총장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신뢰해서는 안 될 인물인 것 같았다. 맨날 자기 쪽에서 연락한다 말해놓고, 단 한 번 자진해서 연락해 온 일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의 진실된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인야는 이번 경우를 통해서도 절박하게 체험하고 있었다. 이 경우엔 인야의 작품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계셔서 내심 기대를 많이 했던 일인데, 당사자인 우유부단한 총장이 전혀 관심이 없다 보니, 될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일도 이제 뜻을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아, 근데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임대 아파트 건에, 대학 캠퍼스 조형물 건에, 지금 진행 중인 조각공모전까지. 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라고 자학까지 하면서도, 나는 누군가의 동정을 바라는 건가......'

 

그러다가 하나가 걸렸다. 아니, 정확히는 반절이었다. 

다 떨어져 나가는 줄 알고, 마음 독하게 먹으려던 순간, 인야를 살려주려는 건지 아니면 최소한의 살 빌미를 던지며 놀리려는 건지... 여의도 조각 공모에 응모한 두 점 중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를 알게 된 것은 한강변에서였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인야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망설이다가 여의도 쪽으로 향했다. 아니, 바다로 가고 싶었는데 너무 멀게 느껴져 대신 한강으로 간 것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강변의 둔치공원을 지나 물가의 한 벤치에 앉았다. 날은 흐려 햇살이 없던 건 다행이었다.

인야는 불어오는 강바람을 쐬며 두어 시간을 앉아있었다.

이따금 핸드폰에 신경이 가곤 했다. 혹시 조각 공모 주최 측에서 전화라도 걸어주지 않을까 해서.

그러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고, 오전이 다 지나면서부터 인야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 강물 속으로 들어간다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물이 너무 더러웠다.

물이 맑았다면 그러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지저분한 물건들이 떠오곤 했고... 지저분한 비둘기들도 인야의 주변을 맴돌고 있기도 해서, 뭔가 자신과는 맞지 않은 분위기만 연출되고 있었다.

'그래, 두 번이나 실망했는데 세 번인들 못하고, 네 번인들 못하랴?' 하면서, 인야가 핸드폰을 눌렀다.

"접수번호는요?"

"5번요."

"아, 이 인야씨요?"

"예......"

"5번 '극한 상황'은 되었구요, 6번 '기진맥진'은 안 되었는데요."

 

전화를 끊으면서 인야는 혼란스러웠다.

'뭐, 그 중의 하나라고? 두 개가 다 됐다면 또 모를까, 하나라고? 이것들이 지금 장난하나? 붙여줄 거라면 두 개를 다 할 것이지, 겨우 하나? 그러니까 반절!'

인야는 대상도 없는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충동이 일었고 불만이 튀어나왔다.

'차라리 날 죽이지 그랬어. 다 떨어뜨리면,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는데... 근데, 겨우 마지막에 가서 살짝 장난질 치듯, 날 살려주려나 부지? 이게 그 알량한 하늘의 뜻이란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우습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그만 위안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아마 거기서도 다 떨어졌다면 인야는 뭔가 커다란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던 찰나에, 무엇인가가 마지막으로 한 끄나풀을 인야에게 던져준 거나 마찬가지 같았다.

더구나 그 당선의 확정으로 상금이 있기는 한데, 한 작품 당선 비용이 2백만 원이라... 그 돈으로 작품을 설치할 경우는 재료비에 불과해서, 손에 쥐는 돈은커녕 작가의 인건비도 안 되는 돈이라...

'그래봤자 뭐, 크게 달라질 거 있겠어?' 하고 다소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지만 미치도록 그런 조형물을 하고 싶었던 인야는, 그 한 작품만이라도 또 열심히 해서 이 세상 어딘가에 보여주고 싶은 욕망은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선지 어느새 인야의 머릿속은, 그 작품을 어떻게 설치해야 할 것인가에 점령당하고 있었다.

그건 작가적 양심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면 나 같은 작가는 어떻게 먹고 살라고?' 하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집을 나오면서 누님 부부한테 언뜻 그 얘기를 했었는데, 그 옆에 있던 매형이,

"처남, 우선 그 하나라도 해 놓으면, 조금이라도 처남의 선전이 될 것 아니겠어? 첫술에 배 부를 수 없으니, 조금씩 해 나가면 될 거고......" 하고 반색하면서 나서기에,

"글쎄요, 그거 하나 한다고 뭐 대수겠어요? 허울만 좋았지, 실속은 하나도 없는 걸요!"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음에도,

누님 가족 전체적으로도 아주 밝은 표정들이어서, 

그러니, 그러면 그럴수록,

'아, 기왕이면 아파트도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 커지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8월이 다 가고 있었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여름이 이렇게 가고 있는 것이었다.

지하 작업실로 향하는 인야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딱히 갈 곳도, 마음 둘 곳도 없었기에 습관처럼 찾아드는 도피처였다. 시간이 갈수록 얼마 전 국비 지원 멀티미디어 교육생 모집에서 떨어진 것이 아쉬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모두 쓸데없는 일이었다.

의욕이 가득할 때 컴퓨터라도 배워두면 삶의 활력소가 되었을 텐데, 자신에게는 그런 사소한 운조차 따르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다.

들판의 벼들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그 풍경을 보는데, 갑자기 인야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그런지는 인야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 살아있다는 것이. 이 더위를 이겨내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그것만으로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저 벼들처럼, 이 긴 여름을 버텨내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어쨌거나 9월이 오고 있었다. 인야에게도 가을이 오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그 최악의 여름이 갔던 거지.' 하고 이 인야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그 여름을 다시 읽어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었다. 피가 새고, 돈이 떨어지고, 몸이 망가지고, 기다리던 일들은 하나씩 무너지고. 그러면서도 흙을 만지고 목판을 새기고, 영어회화를 하러 종로를 오가고, 하루에 지하작업실과 김포 아파트 사이를 두 시간씩 오가며.

그때 내가 어떻게 그렇게 살았던 건지.

그러다 눈을 뜨며,

그렇지만 살았지. 살아냈지. 그게 전부이긴 해도, 그게 전부였던 거지.

 

9월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멕시코 벽화 운동 책이 드디어 인쇄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몇 년을 끌어왔던 그 일이 이제야 마지막 고비를 넘어서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의심이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진짜인 것 같았다.

 

'아, 그때 그 책이 드디어 나왔었지.' 하고 이 인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나왔는데, 뭐 달라진 게 있었나. 책이 나와도 세상은 그대로였고,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는데......' 하다가는, '그래도 그 책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때의 나에겐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몰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9월이 왔지만 여전히 돈은 없었고, 갈 곳도 마땅치 않았고, 누님 집에 얹혀 사는 신세도 변함이 없었다.

영어회화도 계속했다.

종로를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뒹구는 신문을 주워 읽으며, 인야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IMF 이후 자살하는 사람이 두 배로 늘었다는 기사를 읽으며, 인야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가을은 깊어갔다.

어느 날 아침, 누님이 차려준 밥을 먹으며 인야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김포 들녘의 벼들이 고개를 숙인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 저 벼들은 이 긴 여름을 버텨내고 저렇게 익어가고 있는데......'

비록 자신이 익어가는 건 아니었을지라도, 힘든 여름을 버텨낸 건 사실이었다.

아직 거기까지였지만, 버텨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안도의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건 어쩌면,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올라갈 일만 있을 거라는 그 자신의 믿음도 한 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이런 가을날이면 더욱 그랬다.

어머니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아마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밥이나 한 그릇 더 퍼주셨겠지. 그것으로 충분했을 텐데.

 

'그래, 이렇게 그 해 가을이 왔던 거지.' 하고 이 인야는 자판에서 손을 떼었다. 창밖으로는 지금도 바람이 불고 있었다. 25년이 지난 지금의 가을도, 그때의 가을과 바람만큼은 같은 것 같았다. 다만 그때는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 최악의 여름을 버텨낸 뒤에도 인야의 삶은 계속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여름이 왔고, 또 버텨냈고, 그렇게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인야는 잠시 그 생각을 음미하다가, 다시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어느 날, 영어회화 학원을 알아보러 종로 2가로 나갔는데... 인야에게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그 사람 많은 거리에서 인야는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보았는데, 또 다시,

"인야(Inya)!"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는데,   

작년 베를린에서 만나 알게 되었던, 이 00씨(화가)의 남편 마티아스씨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독일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에?'

놀라다 못해 당황하기까지 했던 인야가, 말을 제대로 잊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다시 한 번,

"인야(Inya)!" 하고 큰 소리로 부르자,  

길 가던 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거짓말 같았다.

짧은 순간이기는 했지만, 인야에겐 이 세상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스쳤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앞서 가던 자기 처를 불렀고,

그제야 뒤돌아섰던 이 선생도 놀라 나자빠졌고, 셋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요?" 하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도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그 상황을 믿지 못하다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 부부는 가족 일로 급히 귀국해 아침에 인야의 작업실로 전화를 걸었으나, 부재중이라 연결이 안 됐다고 했다. 마티아스는,

"서울이 대도시인데 우리에겐 너무 좁네요!" 하며 크게 웃었다.

각자 일정이 있어 나중을 기약하며 짧게 헤어졌지만, 사람이 살다 보니 이런 희한한 일도 있구나 싶어 가슴이 묘하게 들떴다.

 

이 무렵 인야의 일상은 여의도 공원 조각 공모작 설치 문제로 쉴 틈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당선 계약을 하고 돌아왔지만 어김없이 걸림돌이 생겼다.

주최 측은 관람객의 통행과 안전을 이유로, 인야가 원했던 광장 한 복판에 설치하기로 설계됐던 작품을 잔디밭 위로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인야의 작품은 사람들과 부딪치며 바닥에서부터 어우러져야 제맛이 나는데, 잔디밭에 올리면 바닥이 보이지 않아 특유의 매력이 싹 사라질 판이었다. 남들의 평화로운 작품과 달리 인야의 조형물은 관객과의 접촉이 불가피해 생긴 마찰이었다.

게다가 관리소 측은, 인야의 작품은 녹슨 검붉은 철재였음에도... 미관상 녹슬지 않는 것을 요구했다. 철판으로 만들어 당연히 녹이 슬어야 깊이가 더해지는 작품인데도 말이다.

포철 사장 출신인 정계 거물 박00이 공원에 녹스는 철 작품을 두면 한국의 철강 기술이 낙후된 줄 알고 외국인들이 흠잡는다며 질겁했다는 게 이유였다.

무식한 권력자의 뜻에 맞추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안쓰럽고도 기가 막혔다.

상금이라고 해봐야 꼴랑 200만 원, 설치 재료값도 안 되는 돈을 내걸고 요구만 까다로우니 결국 작가들을 헐값으로 부려 먹은 것이나 다름없는 문화 정책(눈속임)이었다.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이 일마저 틀어지면 삶의 의지마저 꺾일 것 같아...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압박감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가을 아침, 안개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고 습도가 높아 눅눅했다.

인야는 그날도 즐거운 기다림 없이 서둘러 지하 작업실로 향했다. 기쁨과 희망이 없다는 것은 그 아침의 안개처럼 앞날이 캄캄하다는 뜻 같아 암울했다.

작업실에 나오자마자 인야는 플라스틱 병 두 개를 들고 약수터로 향했다. 전에 산본에 살 땐 매일 약수를 마셔 항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김포로 이사한 뒤 물이 바뀌어 치질과 변비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래 살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아픈 게 두려워 귀찮아도 예방하려는 심산이었다.

 

오후가 되자 마티아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속을 정확히 지키는 독일인답게 다시 만날 약속을 청해왔고, 자원봉사 일정을 피해 일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마티아스는 인야에게, 뜻밖에도 독일 함부르크의 호텔에서 하는 드로잉 전시에 참가해 보라는 제안을 건넸다. 이미 이메일도 보냈었지만 인야가 확인하지 못하자 직접 찾으려 했던 모양이었다.

세상에 하도 당하다 보니 덜컥 믿음이 가기보다 조심스러움이 앞섰지만, 전화를 끊고 김포로 돌아오는 내내 인야의 마음은 오랜만에 새로운 활력으로 들떴다.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하던 일요일, 인사동에서 마티아스를 다시 만났다.

마티아스는 함부르크 드로잉 전시 참가를 거듭 권했고, 인야는 어떤 경우라도 시도하겠다고 답했다.

소나기를 피해 둘이는 갤러리 계단에 앉아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인야가 베를린에 간 것이 함부르크의 '피터' 씨와의 인연 때문이었다고 하자, 마티아스는 깊은 관심을 보였고, 인야는 기꺼이 피터 씨의 전화번호를 넘겨주었다.

이후 대학로로 이동해 점심을 대접하고 미술회관 전시를 본 뒤, 인터넷방에서 인야의 홈페이지를 열어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마티아스는 <기타 치는 사람> 그림을 보더니,

"이 그림이 당신을 유명하게 해 줄 것 같다."라며, 작가 스스로 확신과 자긍심을 가져야 일이 된다고 진심으로 격려해 주었다.

헤어지기 전, 인야가 여의도 공원 조각 건의 고충을 털어놓자, 그는,

"조금씩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획기적인 일이 생길 것 같다!"며 축하해 주었다.

IMF가 터진 해, 인사동 전시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이... 베를린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뜻밖의 조력자로 나타나다니, 참으로 인생의 인연이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인야는 다시 여의도 공원을 찾아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한 나지막한 잔디밭을 최종 후보지로 물색했다.

그리고 빌딩 숲을 바라보며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어 문래동에 가서 철조 예산을 알아보니 최소 100만 원은 필요한 상황이었다.

설치가 끝나고 한참 뒤에나 상금이 나오는 공모 행정 탓에 우선은 돈부터 구해야 했다.

이번 달 누님에게 줄 생활비도 없는데 여기저기 돈 들어갈 곳만 많아 살기가 너무 힘겨웠다.

 

출판사 문제도 인야의 발목을 잡았다.

오랜 집필 끝에 결실을 보나 했던 책의 저작권료 조절액이 600만 원이 넘는데, 1,500부를 찍어 인야에게 주는 인세는 200만 원도 안 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3년을 끌어온 책인데 도리어 큰 적자를 보게 된 셈이었다.

그래도 출판하겠다는 의사를 전하자 편집장은 돈을 더 들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참다못한 인야는 소장을 찾아가 최종 담판을 지었다.

소장이 저작권료는 출판사가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담당자에게 묻는 사이 편집장이 올라왔다.

그녀는 소장 앞에서는 천사처럼 굴면서도, 인야가 자신을 건너뛰고 소장을 먼저 찾은 것에 격분해 떨리는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약자 앞에서는 하이에나처럼 굴고 강자 앞에서는 표리부통한 그 여자에게 하도 당했던 터라, 인야도 이제는 그녀를 철저히 무시하기로 했다.

소장이 다음 회합에서 문제를 논의해 보겠다고 하여 다시 2주를 기다리게 되었지만 속은 후련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누님이 인야의 낙심한 안색을 보고 내일 돈을 해 주겠다고 말했다.

여의도 공원에서 돈을 받아 갚으면 되지만 결국 빚을 내어 작품을 설치하는 꼴이었다. 상금을 받아 형수님과 누님에게 진 빚을 갚고 나면 작품 설치비조차 모자랄 처지였다.

 

이후 인야는 문래동 철공소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는 철판에 밑그림을 그렸고, 오후에는 사장이 철판 자르는 모습을 넋을 잃고 지켜보았다. 과거 실내 전시용 합판 작업과 달리 야외용 철판이라 스케일이 커서 가슴이 후련했다.

마음껏 작품만 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어 모처럼 기뻤다.

집에 돌아오는 길, 선선해진 바람과 노란 들판을 보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했다.

예전 병원에 가면서 이 가을을 못 보고 죽을 거라 체념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 가을을 맞는 것 자체가 다행스럽고 행복했다.

 

다음 날 인야는 철공소 사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 약수 한 병을 들고 찾아갔다.

재단된 철판 조각들을 싣고 용접소로 가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철판의 무게 때문에 등판을 바닥에 놓고 기둥을 역으로 세워 붙이자, 웅장하고 강한 철판 인간이 탄생했다.

평면 그림과는 다른 묘한 흥분과 쾌감이 일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조립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며 기쁨에 차올랐고, 이제 여의도에 설치만 하면 이 일도 끝이 난다며 안도했다.

 

마침내 다음 날 오전 11시 무렵, 여의도 공원에 조각 설치를 무사히 끝내고 신촌 작업실로 향했다.

동료들이 모이는 날이라 와보았으나 문은 잠겨 있었고, 뒤늦게 J 선생님이 기운 없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선생님은 인야가 내심 고대하던 OO대학 캠퍼스 조형물 건이 학교 예산 삭감으로 전면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결국 그 일도 없던 일이 된 것이었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최종 결론을 들으니 다시 다리에 힘이 좍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무슨 복으로......'

자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그동안 절 위해 수고가 참 많으셨는데요, 저는 그 은혜도 못 갚게 생겼네요......"하고 머리를 조아리자, "내가 힘이 있어야죠......" 하시기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를 도와주시려 한 그 마음만으로도, 저는 선생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리고 있는데요......" 하고 뒷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신촌 작업실에서 나와 광화문까지 무작정 걸었다.

 

심한 피로감에 광장 계단에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왜 이 광장에 앉아 있는 걸까?'

여의도 조각 설치도 끝났으니 이제 할 일도, 갈 곳도 없었다.

이 세상에 없어도 될 사람 같았고,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허전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으나 차가 막혀 서서히 굴러갔다.

대낮에 텅 빈 손으로 누님 집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가급적 늦은 저녁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인야는 밀리는 버스 안에서 길어지는 정체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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