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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IV, 이것도 기회일까?

작성자남궁|작성시간26.06.10|조회수72 목록 댓글 0

 

IV, 이것도 기회일까?

 

여의도 공원에 조형물을 설치해 두고 온 뒤로, 인야의 일상은 이렇다 할 목적지 없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가을빛이 아무리 눈부시게 사방을 물들여도, 그가 발을 디딜 곳은 지하작업실의 음전하고 매캐한 공기 속이 허다했다.

마땅히 할 일도, 찾아오는 이도 없는 공간, 마트에 들러 점심거리로 삼을 감자와 고구마, 토마토 몇 알을 사 들고 작업실 구석에 틀어박혔다.

 

곧 다가올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고향 군산에 내려갈 채비를 하면서도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남들처럼 명절을 쇠려면 손에 몇 푼이라도 쥐여야 할 텐데, 당장 눈앞의 경제적 결핍을 해결할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이 좋은 가을날, 왜 나는 은둔 생활을 하듯 이 어두운 지하에 처박혀 지내야 하는가.’

이 둔탁한 생활에 길들여지다 보면 화가로서의 리듬마저 아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작업이 최우선이어야 하는데, 자꾸만 가라앉는 현실이 야속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마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속이 매스껍고 울렁거리는 증세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석 달째 약을 먹어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슬며시 약이 올랐다.

무엇보다 제 목돈을 들여 한의원에서 보약까지 지어준 친구 G에게 면목이 없고 미안할 따름이었다.

태풍 ‘앤’이 올라온다는 소식과 함께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G와 여의도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그에게 여의도 설치물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원래는 작업실에 갈 일이 없었지만, 여의도로 향하기 전 시청에 들러 인터넷을 하려다 문득 어제 필요했던 워드 디스켓을 작업실에 두고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결국 발길을 돌려 작업실에 들른 김에 점심을 때우려 감자를 삶았다.

점심을 챙겨 먹고 여의도로 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G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오늘 만나지 못하겠다는 연락이었다.

순식간에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어버린 인야는 허탈하게 우산을 받쳐 들고 홀로 여의도 공원으로 향했다.

어차피 사진을 찍어둘 생각이었기에 빗속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비에 젖은 채 잔디밭 위에 덩그러니 놓인 자신의 작품을 보며 마음속에 불만이 차올랐다.

어쩐지 그 모습이 초라하고 무의미해 보였다. 원래 원했던 대로 잔디밭이 아닌 운동장 맨바닥에 세워졌어야 했다는 아쉬움과 배고픔, 원망이 뒤섞인 채 그는 김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는 또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

지루하고 암울한 기록들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며칠 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내려간 군산의 추석은 허무할 정도로 짧게 지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과 고스톱을 치거나 이런저런 집안얘기를 나누며 온통 형님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 산소에 두 번 다녀온 것이 외출의 전부였다.

풍성한 추석 음식을 먹으며 빈둥거릴 때는 좋았지만, 막상 다시 서울로 돌아오려 가방을 짊어지자 아무런 희망도 없는 스스로의 처지가 다시금 가슴을 옥죄어왔다.

심리상태가 그래서였는지, 돌아오기 전날 새벽 세 시에 깨어나 끝내 구토를 하고 말았다.

서울로 돌아와 다시 마주한 지하작업실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소득 없이 흘러간 몇 달의 시간만큼 인야 스스로가 더욱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1학기 대학 시간 강사 일이 끝난 후 경제력을 상실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존재 자체가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고요 속에서, 그는 작업실 의자에 앉아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9월 말이었다.

여전히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려 한의원에 가려던 길, 그날도 공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시청에 들러 메일함을 열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구원의 신호를 발견했다. 

독일인 마티아스씨에게서 온 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비록 대단한 일은 아닐지라도 인야 자신을 위해 조그만 어떤 가능성을 제안해 온 그였기에,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사이에 그는 여러 가지로 인야를 위해 힘을 쓰고 있었던 모양으로,

함부르크에 있는 화랑과 접촉을 진행 중이었고, 이제는 현지에 돌아가서 살고 있는 피터씨와는 이미 통화를 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1996년 기차에 뛰어들 생각까지 했었다는 얘기와 함께, 자기의 그 상황에 비하면... 지금의 인야의 상황은 훨씬 나은 거라며, 뭔가를 스스로 하기 위해 혼자 생각을 많이 해보라고 충고까지 해왔다.

'아, 그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놀라다 못해, '사람은 누구나... 국적에 관계없이 쉽게만 살아가는 게 아니로구나.'

인야는 다시 한 번 그 진리를 느낀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인야같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화가는, 그래서 작품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화가는,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성공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더구나 외국 여러 곳에서 이미 전시도 했고, 외국 경험도 풍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마저도 인야에겐 도움이 될 거라면서,

인야의 작품 '누가 왔는데? 별볼일 없는 사람이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런 작품을 해낼 감성을 가졌는지 너무 놀랐다면서, 자기는 앞으로도 피터씨와 협력해 화랑과 접촉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으니, 조금 기다려 달라는 메일이었다.

 

인야는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했다.

너무나 칭찬 일색의, 그리고 장밋빛 청사진 같은 언어의 유희에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근데, 이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이면서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나를 구름 위에 띄워놓고 있다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비록 그게 감언이설이었을지언정(그가 그렇게 허언을 할 사람은 아닌데), 그래도 마음의 위안이라도 받았던 인야는...

'아,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내 삶에, 이렇게 든든한 응원군이 생기다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을의 달 10월을 하루 앞둔 날, 몇 년간 분신처럼 메고 다니던 낡은 가방의 지퍼가 툭 떨어지며... 뭔가 불길한 징조를 드리웠다.

과거 대학 시험 날이나 합격자 발표 날 등마다 물건이 부러지거나 떨어지면 어김없이 낙방의 쓴잔을 마셨던 기억들이 떠올라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10월이 시작되자마자 마티아스 씨로부터 다소 가라앉은 소식이 날아왔다. 그림을 사줄지도 모른다던 77세의 함부르크 고령 수장가가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었고, 마티아스 씨 본인도 이빨이 부러지고 심한 감기에 걸려 고생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확실한 성과 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인야는 다시 허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이 일을 예기치 못한 '보너스'라 여겨두며 실망을 최소화하려 애썼지만, 마지막 동줄 같던 기회마저 흐려지자... 가을바람마저 유독 시리게 뱃속을 파고들었다.

 

여전히 속이 울렁거려 겨우 감자를 삶아 먹으며 목숨을 이어가던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주운 신문지 상의 ‘임대 아파트 분양 공고’가 인야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지난여름 신길동 아파트에서 떨어져 쓰라린 낙방의 상처를 입었지만, 이번 태릉 공릉동에 나온 임대 아파트의 조건은 평수도 더 넓고 주변 공기도 쾌적해 보였다.

게다가 무주택자 기간이 길어 당첨만 되면 대출을 받아 입주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누님의 예전 조언도 떠올랐다. 문제는 신청 마감이 바로 다음 날까지라는 점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인야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만사를 제쳐두고 은행과 동사무소를 오가며 서류를 떼어 강남의 도시개발공사 현장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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