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부, 엘 까미노(El Camino)
‘방랑 생활’
인야는 마을 어귀, 바람이 가장 먼저 몰아닥치는 입구에 나와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이제 이 길, '엘 까미노(El Camino)'를 걷기 시작한 지 사흘째.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때때로 아무도 없는 산길이나 거친 들판을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만약 이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지구상에 이런 마을이 존재한다는 것을 꿈에서조차 알지 못 했을, 그런 작고 외딴 산마을에 와 멀거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습기 하나 없는 담백한 바람이 불어와 인야의 심신에 쌓인 불순물을 모조리 앗아가듯, 그를 맑고 깨끗하게 씻어내리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에서 시작된 바람은 골짜기를 거쳐 다시 산을 타고 이 고즈넉한 마을로 쏜살같이 들이닥쳤다. 다시 능선을 타고 반대 편 아래로 내려갈 바람의 길목에 앉아 있다 보니, 인야는 세상의 모든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덕분인지 며칠 동안 그를 짓누르던 몸의 무게도 어느새 흔적 없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인야는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돌집들 사이로 뻥 뚫린 그 마을의 입구를 ‘바람의 통로’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스페인 말로는 ‘엘 빠소 델 비엔또(El Paso del Viento)’.
제법 그럴싸하고 아름다운 이름 같았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
인야는 그 길목에 앉아 무한한 평화와 자유를 느꼈다.
머릿속에는 그 어떤 잡념도 남아있지 않은, 완벽한 무념(無念)의 상태였다.
자신의 몸이 어디서 끝나고 바람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는 감각이었다.
왜 걷는가.
누가 오라고 손짓한 적도, 떠밀며 가라고 등을 떠민 이도 없었다. 그리고 왜 이 고독한 산길을, 숲길을, 자갈길을,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는 것인가.
인야는 알지 못했다.
사흘 동안 걸어오며 마음속 수수께끼를 풀듯 버릇처럼 자문해 보았지만, 도무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아마 산티아고에 닿을 때까지 내내 고민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아니, 꼬치꼬치 따져 묻는다면 그럴듯한 이유쯤이야 몇 가지 대어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의 인야에게 그런 속세의 이유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차라리 일부러라도 그런 구차한 속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순수한 무념의 상태, 바로 이것을 맛보기 위해... 그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오늘도 찌는 듯한 땡볕 속을 한참 걷다가, 산모퉁이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펴고 잠시 누웠을 때였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줄 때, 인야는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그것은 완전한 자유였다.
이따금 인야는 자신이 아주 먼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김삿갓 같은 방랑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주 어릴 적, 어머니에게 방랑 시긴처럼 살겠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가... 호되게 혼이 난 기억도 있었다.
그때는 어머니의 매서운 꾸지람이 그저 야속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덧 어머니의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건만, 야속하게도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
만약 인야 자신에게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이 어느 날 김삿갓처럼 방랑하며 살겠다는 말을 꺼냈다면, 인야 역시 펄쩍 뛰며... 그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을 터였다. 자식을 품은 부모의 마음이란 본디 그런 법이니까.
사람은 과연 자기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걸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저 정해진 궤도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인야는 왜 자신이 이런 이역만리 외국의 산천을 떠도는 역마살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왜 늘 낡은 지도책을 펼쳐 든 채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상상을 동경해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 그리고 그 무리 중 하나인 나. 심지어 나 자신조차 알지 못하면서.
“아, 세상사 모든 일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인야는 머나먼 외국 땅의 청청한 바람 속에서 그 깊고 아득한 질문을 다시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