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계속되는 스페인과의 인연
I, 내 자리, 정착하기
새로운 주거지로 자리를 옮긴다는 사실은 당시의 이 인야에게 너무나 절박하고도 간절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미리 '내 자리'라고 이름까지 붙여두고 손꼽아 그날을 기다렸던 것이고, 이사한 직후에도 꽤 들뜬 기분으로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꿈이 아닌 현실로 그 민낯을 드러내는 법이었다.
사실 '내 자리'는 새로 건설된 썰렁한 원룸 아파트에 불과했다. 인야가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에 있던 가구 배치부터 이것저것 설치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물론 당장 돈을 들여 새 가구를 구입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짐들을 모으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내 자리'로 입주한 시점은 11월 말이었다.
세상이 온통 '새 밀레니엄 2000년'이라는 구호로 떠들썩하던 때였고, 그 역사적인 순간까지는 한 달 남짓한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인야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곳 내 자리에서 새천년을 맞이하는 것 역시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 이 한 달 동안 살아갈 준비를 단단히 마치고 알차게 밀레니엄을 맞이해야 한다.'
어쨌거나 이제는 편안하고 안락한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고, 더 이상 작업 공간에 대한 불평이나 핑계를 댈 구실도 사라진 셈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이 세상과 당당히 싸워 이겨나가야만 한다는 절박감이 그를 단단히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오랜 꿈이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마쳤다.
세상이 새 밀레니엄으로 들끓기 한 달 전인, 그의 나이 마흔넷에 이뤄진 기적 같은 꿈이었고... 오랜 세월을 떠돌이로 살아온 인야에게 그것은 눈물겹도록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내 자리'에서 꿈같은 첫날밤을 보낸 바로 다음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1년 가까이 더부살이를 했던 누님네 큰딸의 결혼식이 열렸다. 고향 군산에서 형제들과 친척들이 대거 서울로 올라왔고, 결혼식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그들 대부분이 인야의 새 아파트를 방문하게 되었다.
좁은 문을 열고 들어서던 친척들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질렀다.
"야, 집이 너무 좋다!" "전망까지 아주 끝내주네!"
다소 떠들썩하게 치러진 그들의 축하 속에서, 인야의 새로운 출발은 세상에 밀리듯 선포되었다.
하지만 조카의 결혼식장에서 인야는 묘한 당혹감을 맛보아야 했다.
외삼촌으로서 당연히 참석한 자리였지만, 일가친척들의 눈에는 여전히 혼자 살고 있는 '미혼의 외삼촌'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정작 자신은 무덤덤한데도 친척들은 유난히 관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넌지시 압박을 가해왔다.
"조카는 결혼을 하는데, 삼촌은 언제까지 그러고 지낼 거야?" "아예 안 할 생각은 아니지?"
뜻밖의 질문에 가볍게 당황하기도 했지만, 인야는 의외로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글쎄요, 어쩌면…… 안 하게 될 것 같은데요."
툭 던진 말에 스스로도 조금 놀랐지만, 그것은 내심 숨겨둔 그의 본심이기도 했다.
'이제 내 자리도 생겨 혼자서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결혼을 해서 무엇하랴?' 하는 마음이었다.
이사했다고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도 아니었고, 사전에 계획된 다짐도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확신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집이 없이 떠돌 때보다, 앞으로는 결혼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화가로서의 작업에 결혼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오롯이 자신의 작업만을 위해 살아야 할 때였으니까.
이제 편안하고 안락한 독립 공간이 생겼으니 과거 지하 작업실 시절처럼 작업 환경을 탓할 핑계거리는 완벽히 사라진 셈이라, 이곳은 살아가는 보금자리인 동시에 숨 쉬는 일터였다.
잠은 집에서 자고 작업은 다른 곳에서 하던 예전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이었다.
작품이란 언제나 끝없는 고뇌를 동반한 뒤에야 슬그머니 찾아오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기에, 인야는 느슨하게 풀려 있던 작업 리듬을 다시 바짝 조여야만 했는데......
혼자 살든 여럿이 살든, 사람이 거처를 꾸리려면 기본적인 살림살이는 갖추어야 했다. 인야는 누님의 조언에 따라 냉장고는 커다란 것으로 할부 구입했고, TV는 아예 없이 살기로 마음먹었다. 세탁기는 형수네 친정에서 쓰다 남은 구형 모델을 얻어 실어왔고, 마침 새 아파트 입주 기간이라 단지 내 재활용 센터에 내놓은 장롱과 탁자 등을 주워오는 등 의외로 빠르게 살림을 채워나갔다.
그러나 새 아파트인 '내 자리'는 주거용으로는 썩 좋았을지 몰라도, 작업을 병행하며 수많은 작품까지 보관해야 하는 일터로 쓰기에는 열두세 평의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말 그대로 붙박이장만 덩그러니 있는 사각의 텅 빈 원룸 구조였기에, 공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배치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구조를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그동안 누님 집에 보관해 두었던 대형 그림들을 눈에 띄지 않게 정돈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방 안의 붙박이장을 뜯어 새롭게 배치하고, 지하 작업실의 짐들을 옮겨왔으며, 주변 친지들의 도움으로 얻은 살림살이들을 차례로 들여놓았다. 이처럼 어설프기 짝이 없던 텅 빈 사각 공간은, 몸을 움직여 하나씩 살아갈 준비를 해나감에 따라 점차 안락한 안식처이자 일터로서의 형태를 갖추어 갔다.
이건 조금 멋쩍고 우스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여태껏 제멋대로의 방랑을 이어온 사람이었음에도, 이곳 '내 자리'로 들어오면서 인야의 머릿속은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지배당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나 혼자, 내 멋대로의 진짜 삶을 살아가는 거야.'
그러다가는 픽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여태까지의 삶은 가짜였단 말인가? 누가 나를 말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하는 자조(自嘲)의 반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인 그에게 이 시작은 참으로 엄숙한 일이었다.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오며 가장 가슴 부풀었던 것은, 앞으로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해 갈 것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명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각오였으나, 그 뒤편에는 정체 모를 거대한 불안감과 압박감이 그림자처럼 동반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핑계 없이 '작업 다운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이제는 정말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감이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는 가짜 화가로 살았단 말인가?'
다시금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지만, 이것은 앞으로 정말 한눈팔지 않고 작품 세계에 몰두하겠다는 인야만의 엄격한 채찍질이었다.
툭하면 각오를 다지는 이들이 대개 작심삼일로 끝난다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리고 마침내, '내 자리'에서 첫 작업을 시작했다.
며칠간 손을 푸는 드로잉을 두어 점 그리긴 했지만, 스스로 마음에 드는 제대로 된 작품을 건진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림의 제목마저 '내 자리'였다.
사실 이곳으로 이사 온 이래 의무적으로 펜을 끄적이면서도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었다. 하루하루 날은 잘도 가는데 제대로 된 그림 한 장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숨통을 조여왔던 탓이다.
그날도 저녁을 챙겨 먹은 뒤, 의무감에 젖어 스케치북을 펴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선 하나 긋지 못하고 헤매던 바로 그때, 언뜻 벽에 벗어 걸어놓은 외투와 목도리가 인야의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거다!'
전기처럼 찾아온 직감과 함께 연필이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혹시 망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없지 않았다.
최근 지하 작업실을 정리하느라 제법 오랫동안 붓을 놓았기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무서운 집중력으로 선을 완성하고 마침내 서명까지 끝낸 뒤 벽에 붙여놓고 보니,
아, 실로 좋았다.
온전히 자신만의 영혼이 담긴 작품이었다.
이사 온 이래 마음의 벽처럼 높게 쌓여가던 압박감이 단숨에 허물어지며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젠 할 수 있어. 이제부터 시작이야!"
인야는 마음속으로 세차게 쾌재를 불렀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고통스럽던 밤이 순식간에 세상 살맛 나는 행복한 밤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얼마 후, 인야에게 반가운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직업전문학교에서 진행하는 '국비 무료 컴퓨터 교육'에 합격했다는 통보였다. 이 역시 '내 자리'에서의 초기 생활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준 사건이었다.
다가오는 21세기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홈페이지'가 필수라고 믿었던 그에게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늘 좋은 소식 뒤에 풀리지 않는 해묵은 숙제들을 함께 던져놓곤 했다.
이사한 지 어느덧 보름이 넘어가면서 경제적 능력이 없던 그에게 혼자 독립하며 짊어지게 된 '생활의 무게'가 본격적으로 목을 죄어왔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나갈 궁리를 해야만 하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동안 짐 정리를 핑계로 현실의 압박을 외면하고 등한시해 왔던 대가가 찾아온 것이다.
당장 다가올 매달의 월세와 대출 이자, 공과금과 생활비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거대한 벽이 되어 앞을 막아섰다.
오직 작품에만 몰두하며 화가로 살고 싶었지만, 인생은 결코 그런 순진한 소망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컴퓨터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인야의 일상은 겉잡을 수 없이 바빠졌다.
혼자 살다 보니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시장을 보는 가사 노동부터 모든 대소사를 홀로 결정하고 처리해야 했다.
일분일초를 아쉬워하며 시간을 빼앗기듯 정신없는 일주일의 컴퓨터 교육이 끝나고 주말이 되자, 인야는 서둘러 고향 군산행 버스에 몸을 실어야만 했다.
일요일 밤이 바로 어머니의 첫 기일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음력으로 제사를 지내다 보니 올해는 12월 중순으로 날이 잡힌 것이었다.
그렇게 내려간 고향 군산은 그야말로 거대한 눈 속에 푹 파묻혀 있었다. 만 이틀 동안 꼬박 설국(雪國)에 고립되었다가 올라온 기분이었다.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새벽 첫차를 타러 나설 때에도, 시내는 여전히 자욱한 눈발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최근 갑작스럽게 바빠진 일상 탓에, 자칫하면 어머니의 제사마저 그 분주함에 떠밀려 덤덤하게 넘어가 버릴 수도 있었던 여정이었다.
그런데 서울 '내 자리'로 돌아온 인야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붙박이장 문에 소중히 붙여둔... 그의 생전 첫 번째 전시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찍으셨던 어머니의 사진이었다. 제사를 온전히 지내고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 어머니를 마주하자 그리움이 썰물처럼 밀려와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지금 인야는 이곳 '내 자리'에서 나만의 작업을 하며 혼자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나 이 안락함 속에 정작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팠다. 만약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분명 이 작고 소중한 아파트에서 나와 함께 머무셨을 터였다. 생전의 어머니는 막내아들과 함께 사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하셨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인야는 어머니가 살아생전 그토록 원하셨던 소박한 소망 하나를 끝내 들어드리지 못한 천하의 불효자였던 셈이다.
예전에는 언제 어느 때고 고향 군산으로 내려가는 길이 그저 푸근하고 좋기만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재하는 고향은 아무리 채우려 해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지독한 허전함과 쓸쓸함만을 남겼다.
이번에도 군산 거리를 걸을 때마다 자꾸만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보며 두리번거리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맘 둘 곳을 찾지 못해 가슴이 아려왔다.
텅 빈 방안에서 이 묵직한 마음에 무엇이라도 끼적이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어, 그는 결국 늦은 밤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조금 전, 군산의 형님으로부터 서울에 잘 도착했냐는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군산은 그동안 내린 눈이 아직 녹지도 않았는데, 오늘 밤 또다시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고향의 눈 소식을 듣는 순간, 당장이라도 다시 군산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격정적인 충동이 일었다. 그렇지만,
'아, 만약 어머니가 그곳에 살아계신다면, 이 깊은 밤을 새워 밤차를 타고서라도 당장 내려갔을 텐데, 기꺼이 그럴 수 있었을 텐데......' 그 생각과 동시에,
"어머니도 안 계신데, 내가 대체 어딜 간단 말인가."
나지막한 혼잣말과 함께, 인야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홀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