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살다 보니...

II, 밀레니엄, 새로운 출발

작성자남궁|작성시간26.06.18|조회수64 목록 댓글 0

 

II, 밀레니엄새로운 출발 

 

a, 2000년

 

세상을 살다 보면 분명 인생 전체를 통틀어 의미가 남다른 '중요한 날'이 있게 마련이다. 최근에 여기 '내 자리'로 이사 온 날이나, 며칠 전 가슴 아프게 치렀던 어머니의 첫 제삿날 같은 날들이 인야에게는 그러했다.

그러다 문득 인야는 요즘 세상이 온통 떠들썩하게 떠들어대는 '2000년 밀레니엄'에 생각이 미쳤다.

1000년대에서 2000년대라는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어쩌다 세상에 태어나 살다 보니 이 거대한 두 밀레니엄을 한 몸으로 걸쳐 사는 행운을 누리게 된 셈이었다. 그 역시 다가오는 새 시대에 어렴풋한 희망이라도 걸어보며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일정 부분 동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방랑 끝에 이제 막 '내 자리'에 겨우 정착한 인야에게 세기의 바뀜은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 완성할 그림 아래에 '1999'라 쓰던 서명을 '2000'으로 바꾸어 적게 된다는 사실 외에는, 그저 하루가 가고 다음 날로 이어지는 딱 24시간짜리 또 다른 하루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그렇지만 인야는, 일 년 중 대중이 가장 들뜨는 크리스마스이브 역시 아무 일도 만들지 않고 조용히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시절을 함께 보냈던 조각가 L의 반강제적인 초대로 홍대 근처의 왁자지껄한 연말 모임에 끌려가게 되었다. 외국의 이국땅에 살 때도 주변의 초대를 사양하며 고독을 자처했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마지못해 수락한 자리였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며 아름답던 정취는 '광란'으로 변해갔다. L을 주축으로 모인 조각가들의 술자리는 왁자지껄하게 이어졌고, 인야는 할 줄도 모르는 노래방으로, 그리고 끝내는 인근 호텔의 나이트클럽까지 질질 끌려가 밤을 지새워야 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슬쩍 빠져나온 인야는 늦은 시각 택시를 잡아타고 '내 자리'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시계는 이미 새벽 두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 보낼 줄 알았던 크리스마스이브를, 생애 가장 요란스럽게 보내고 돌아온 셈이었다.

다음 날 늦은 아침,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깨어난 날은 공휴일인 크리스마스였다.

기독교인이 아닌 인야에게는, '크리스마스'란 그저 달력 위의 붉은 글씨, 혹은 여느 일요일보다 훨씬 더 어정쩡한 휴일에 불과했다.

 

마침내 시간은 1999년 12월 31일이라는 금세기의 마지막 날을 세상 앞에 데려다 놓았다.

온 세상이 뉴 밀레니엄의 탄생과 한 세기의 교체를 두고 들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부여한 숫자라 할지라도, 190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천 년의 문턱은 그 자체로 묘한 엄숙함을 자아냈으니까.

인야는 그 소란스러운 축제에 휩싸이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도 없이 허투루 그 밤을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고요해진 방 안에서 인야는 자신만의 엄숙한 연례행사를 시작했다.

낡은 1999년의 수첩을 펼쳐놓고, 엊그제 새로 사둔 2000년 수첩으로 지인들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한 자 한 자 옮겨 적는 일이었다.

아날로그식 기록을 옮기는 데만도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새 수첩 정리가 끝난 뒤에는 화가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2000년 '1월의 달력'을 종이 위에 그리기 시작했다. 늘 해오던 루틴이었지만, 천 년의 경계에서 그리는 첫 선은 묘한 긴장감을 동반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새해 안부를 묻는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기에, 인야는 완벽한 침묵 속에서 원하던 대로 아무런 간섭도 없이 홀로 밤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1900년대는 기어이 가버렸고, 어느새 2000년대가 시작되어 있었다.

인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덤덤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결국 천 년의 바뀜도 그에게는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하루의 끝일 뿐이었다.

 

2000년 1월 1일은 토요일로 시작되었다. 새벽 일찍 눈을 뜬 인야는 창문 너머로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 세상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아무런 부담 없는 평온한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을 챙겨 먹은 뒤에는 엊그저께 만들어둔 '극한상황' 흙 작업의 석고 틀을 뜨는 작업에 착수했다.

석고 작업이라는 것이 워낙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오전에 시작한 작업은 여섯 면의 석고 조각을 모두 떠놓고 나니 어느새 사위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창밖으로 언뜻 햇살이 비치는 듯도 했으나, 새해 첫날의 하늘은 대체로 흐리고 부옇게 가라앉아 있어 화사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가만히 돌아보니 새해 첫날 하루 동안 역시 그 누구와도 단 한 마디의 말도 섞지 않은 채 침묵 속에 눈을 붙이고 손을 움직인 셈이었다.

전화 벨소리조차 울리지 않은, 완벽하게 고립된 하루.

전날 '내 자리'로 돌아온 이후 문밖을 나서지 않았고, 다음 날은 또 일요일이니... 별일이 없는 한 방 안에만 머물 터였다.

그렇게 되면 꼼짝없이 사나흘 동안 아파트 구석에 처박혀 지내는 셈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인야는 이런 지독한 고독과 침묵에 너무나도 익숙한 사내였다. 정확히 10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절부터 뼈에 새겨진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최소한의 먹을 것만 주어진다면, 그는 몇 달이고 세상과 단절된 채 한 공간에서 버텨낼 수 있을 것이었다.

 

 

b, '음력'도 포함해서...

 

그러나 매일 아침 정신없이 직업학교로 향해야 하는 평일의 일상이 시작되면서 침묵은 이내 깨어지고 현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요즘은 컴퓨터 교육에 하루의 절반을 빼앗기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림에 몰두할 물리적 여유가 턱없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붓을 잡으려 의무감으로 밤 시간을 내어보아도, 다음 날 아침 일찍 등교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잠을 청해야만 했다.

화가로서의 생활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었고,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작업을 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예술가로서의 갈증과 불만이 증가하고 있었다.

 

며칠 뒤, 고단한 컴퓨터 교육을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오던 인야는 아파트 1층 우편함에 삐죽이 꽂혀 있는 하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왠지 모르게 손끝으로 서늘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봉투는 얼마 전 서류를 접수했던 어느 여자대학교에서 발송한 것이었다.

서류 봉투를 뜯자 '선생님을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정중하고도 차가운 문구가 인쇄된 불합격 통보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손에는 방금 우편함에서 함께 꺼낸 또 다른 공과금 고지서들이 쥐어져 있었다.

이번 달 월세, 아파트 관리비, 도시가스 요금 등을 합치니 당장 내야 할 돈이 28만여 원에 달했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기한 내에 어떻게든 아파트 월세와 대출 이자를 마련해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이었다.

불행은 언제나 이처럼 한꺼번에 무리를 지어 찾아오곤 했다.

여기 '내 자리'로 입주했던 첫 달인 지난 연말에는 어떻게든 주변에서 가까스로 20여 만 원을 융통해 위기를 모면했었다.

누님네 보낼 이잣돈을 겨우 부쳤고 아파트 임대료까지 채워 납부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진짜 지옥은 그다음부터였다.

현재 인야의 수입은 완벽한 '전무(全無)' 상태였다. 어떻게든 하루하루 입에 풀칠은 하고 있었으나, 앞으로 다가올 달의 생계를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지 눈앞이 까마득한 절벽 같았다.

 

돈 걱정으로 짓눌린 마음을 안고 음력 설 명절을 맞아 고향 군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명절 당일, 인야는 홀로 어머니의 산소를 찾았다. 양지의 남향인 묘소는 노란 잔디로 따스하게 덮여 있었다.

인야는 어머니 묘소의 잔디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대화를 건넸다.

서울에서의 가난과 절망에서 제발 좀 구원해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왠지 죽은 어머니 앞에서 자식의 안위만을 구걸하는 것이 속 보이고 부끄럽다 못해 죄스러운 짓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인야는 그저 묵묵히 절을 올린 뒤, 묘소 앞에 펼쳐진 황량한 겨울 논둑길을 따라 쓸쓸히 발걸음을 돌렸다. 

 

산소를 내려와 금강 강둑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얗게 얼어붙은 강물 위로 철새 떼가 무리 지어 앉아 있었고, 뺨을 스치는 강바람은 시원했으며 햇살은 눈부시게 맑았다.

광활한 대자연의 풍경 속에 홀로 서자, 뜬금없이 목구멍을 타고 노래 한 자락이 흘러나왔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노래를 부르던 인야의 목이 갑자기 턱 메어왔다.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뺨을 타고 쏟아져 내렸다.

정작 어머니 무덤 앞에서는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덤덤했던 감정이, 황량한 강둑길을 걸으며 청승맞게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아, 이 세상은... 이토록 허무한 것이었던가.'

이 강둑길은 인야가 아주 어린 시절, 추석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군산 시내에서부터 조잘거리며 걸어오던 바로 그 추억의 길이었다.

이 오래된 길이 어린 날 가족의 단란했던 모습을 전부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 그 따뜻했던 두 분은 세상에 계시지 않고, 무기력한 아들만이 어느새 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어 이 길을 홀로 걷고 있었다.

자신 역시 이렇게 정처 없이 살아가다, 언젠가는 저 강물처럼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이토록 고통스럽고 허무한 삶이라면, 애당초 인생의 신산함을 알지 못하도록, 아니 이런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걸......'

극단적인 허무가 둑길 위로 길게 늘어졌다.

인야는 눈물 젖은 눈으로 뉘엿뉘엿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나포 강변까지 꼬박 걸었다.

해가 다섯 시를 넘어 완전히 자취를 감출 무렵에야 버스를 타고 군산 시내로 돌아왔다.

 

그렇게 쓸쓸한 음력 설을 보내고, 이제 혼자 사니 밥 굶지 말라며 형수님이 바리바리 싸주신 명절 음식을 양손 가득 든 채 인야는 다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어찌 보면 참 부질없는 기다림이었다.

잔인하리만치 힘들었던 1999년이 가고 2000년이 올 때, 세상의 소란에 묻어 혹시나 무언가 풀려주기를 바랐던 인야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직 양력일 뿐이니, 우리 한국 사람으로서는 진짜 새해인 음력 설까지만 기다려보자!'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막바지엔 흘러가는 날들이 아깝기는커녕, 어서 빨리 가라고 세월을 재촉하기까지 하며 맞이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고향을 다녀와 서울의 '내 자리'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흘러가, '내 자리'에서 두 달의 시간을 넘기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생계 압박은 날이 갈수록 사납게 목을 죄어왔다. 

밀레니엄이라는 거창한 세기의 전환은 물론이요, 늘 꿈꾸던 번듯한 새 아파트에 입주해 마침내 ‘내 자리’를 틀었다는 엄청난 외양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실질적인 인야의 삶에 달라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끝내 지난 1월분의 아파트 임대료와 대출 이자를 내지 못한 연체 상태로 어느덧 2월 중순을 넘어가고 있었다.

양력이든 음력이든, 인간들이 제아무리 거창하게 밀레니엄을 떠들며 달력의 숫자를 고쳐 쓰고 삶의 공간을 바꾸어 놓아도 현실은 냉정했던 것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인야는 여전히 희망 없는 나날을 묵묵히 보내는 중이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