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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다시 고개 드는 역마살(2)

작성자남궁|작성시간26.06.20|조회수70 목록 댓글 0

 

c, 하늘이 던져준 밧줄

 

지독했던 책 문제와 대학 강의가 모두 끝을 맺은 6월 초, 이른 더위가 세상을 달구기 시작할 무렵 인야에게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오랫동안 인야에게 호의를 베풀어온 요한나 씨였다.

처음엔 인야의 근황을 묻더니, 이내 조심스러운 말투로 본론을 꺼냈다.

"이 선생님, 혹시 우리 아이 데리고 스페인 여행 갈 생각 없으세요?"

깜짝 놀란 인야는 말문이 막혔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 녀석이 '보이 스카웃'인데요, 그래서 이미 중학생 시절부터도 해외 여행도 다녀온 녀석이거든요? 근데, 선생님은 스페인 통이신데, 녀석이 그 쪽에도 너무나도 가고 싶어해서......" 하고 말끝을 흐리더니, "그렇다고 녀석 혼자 스페인까지 여행을 보낼 수는 없는지라... 그냥 저 혼자 생각해 본 건데요, 혹시 선생님께서... 여름 방학에...... 선생님도 대학 강의가 끝나면 방학이잖아요?"  

"예, 곧... 강의가 끝나면요." 

"혹시, 선생님께서 스페인에 가실 계획 같은 게 있다면... 그 애를 데리고 가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제가 비행기표 등 여행 경비는 부담해드릴 테니, 한 번 생각해 보시지 않겠어요?"  

그동안 그녀가 베푼 친절을 생각하면 마땅히 그 당장 들어주어야 할 부탁이었다. 더구나 전에 한 번 만났던 녀석은 나이에 비해 의외로 자기만의 여행관이 뚜렷했고, 미래에 여행과 연관된 일을 하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어... 기꺼이 마음이 동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의 학업을 고려해 ‘보름’이라는 짧은 일정이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잠시 고심하던 인야는 기발한 역제안을 던졌다.

"그럼, 출발은 함께하되... 보름간의 여행을 마친 00이를 현지에서 혼자 한국행 비행기에 태워 보내도 되겠습니까? 저는 스페인에 더 남아서.. 뭔가 하고 싶은 일도 있어서요." 

이미 혼자 비행기를 타 본 경험이 있는 영리한 아이였기에 요한나 씨는 흔쾌히 동의했다.

늘 입버릇처럼 떠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의 돈 문제로 공염불에 그칠 뻔했던 유랑의 기회가, 마치 하늘이 준 선물처럼 인야의 눈앞에 뚝 떨어진 순간이었다.

독일에서 돌아온 후 1년 반 동안 꼼짝 못 했던 인야의 몸 안에서, 거역할 수 없는 역마살이 다시 세차게 소용돌이쳤다.

 

 

사실 이 대목은 인야가 훗날 집필한 자전적 소설 '정상적인 생활'의 배경이 되는 부분이다. 소설 속에서는 서사가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행자를 '한 친구'로 각색하고 단순화했었다. 당시에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이토록 뼈대 깊게 정리하게 될 줄 몰랐기에 소설 속 허구 뒤로 슬쩍 숨겨두고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다 보니(소설, '살다 보니...'), 이 '사실'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고, 또 그래서도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요한나 씨가 내민 손길은 인야의 인생 궤도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사실에 충실해야 마땅할 삶의 이정표였기 때문이다.

 

 

현실화된 스페인 행으로 인야의 일상은 급격히 분주해졌다.

요한나 씨가 경비를 지원한다 해도, 인야 혼자 현지에 남아서 쓸 개인 경비는 스스로 마련해야 했으니까.

7월이 시작되자 스페인 행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행사에서 최종 산출된 왕복 비행기표와 유레일패스 값만 해도 두 사람에 270만 원이라는 거금이었다. 여기에 현지 숙박비와 식비까지 더해지면 비용은 눈더미처럼 불어날 터였다.

인야는 이 액수를 요한나 씨에게 전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겸연쩍음과 미안함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아이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대가라지만, 남의 돈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묘하게 건드렸던 것이다.

어쩐지 그 집의 고용된 일꾼이 되어 들어가는 기분마저 들어,

‘괜한 짓을 시작했나?’ 하는 자책과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마음 한구석이 빚을 진 듯 무겁고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뒤였다.

보름 뒤면 그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스페인 대지 위에 서 있게 될 것이었다.

 

 

d, 희한한 인생 

 

7월의 뜨거운 날들 속에 마침내 인야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홈페이지를 올릴 수 있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전공자인 제자 녀석의 조언을 받아 구동한, 온전한 자신만의 가상 공간이었다. 직업학교에서 공들여 배워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대문을 장식하고, 고심 끝에 그 방의 이름을 ‘독백(獨白)’이라 명명했다.

사는 게 하도 쓸쓸하고 팍팍했기 때문에, 남들이 들어오든 말든 개의치 않고 자기 혼자 넋두리나 늘어놓을 요량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비록 임대아파트 ‘내 자리’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과 갈 길 잃은 사색이 주를 이루겠지만, 모처럼 무언가를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에 마음에 생기마저 돌았다.

앞으로 자신이 쏟아내고 싶은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공간이 열린 것만으로도 가슴이 활짝 트이는 기분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시내 여행사에서 스페인행 왕복 비행기표를 손에 쥐던 날, 떠남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은행에 들러 확인한 대학의 마지막 강사료는 고스란히 아파트 월세와 밀린 관리비로 빠져나갔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그 무렵 마침내 책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인야는 맨발로 뛰어나가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마음은 그 어떤 극적인 환희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모의 기억이 서린 그곳에 발걸음을 한 번이라도 줄이고 싶어, 담당자가 출근하는 날을 기다려 묵묵히 출판사 문을 열었다.

인야의 손에 쥐어진 책은 왜소했고, 도판의 인쇄 상태마저 마음에 차지 않았다. 고작 다섯 권의 저자 증정본을 건네며, 3~4쇄를 찍기 전에는 인세 받을 생각도 말라며 끝까지 빈정거리는 편집장을 인야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이 고통스러운 쇠사슬에서 해방되는 것만이 목적이었기에, 인야는 말없이 가볍게 고개만 숙인 채 그곳을 걸어 나왔다.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으리라는 홀가분함에 비로소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멕시코에서 시작되어 독일을 거쳐 한국에 이르기까지, 그 긴 세월 동안 어머니의 영면을 지켜보면서도 인야를 괴롭혔던 책 문제가 드디어 끝이 났다.

사람들은 이럴 때 ‘시원섭섭하다’고 하지만, 인야에게 남은 감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지독하게 앓던 이가 마침내 시원하게 빠져나간 듯한, 완전한 해방감이었다.

 

그러나 조용히 숨을 고르며 스페인으로 떠나려던 인야의 계획은 ‘내 자리’를 연거푸 이틀이나 채운 손님들로 인해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지겨운 책의 출간 소식이 기어이 주변에 알려진 탓이었다.

책이 나온 기쁨도 없고 심란하기만 한 인야를 대신해, 오랫동안 함께 애태우던 이들이 먼저 들썩였다.

떠들썩한 게 싫어 친구 J에게만 조용히 귀띔하며 입단속을 시켰건만, 눈치 빠른 옛 직장 동료들과 고등학교 동창들은 이미 ‘출판기념회’라는 거창한 명목을 앞 세워 인야의 방으로 들이닥쳤던 것이다.

좁은 방에 둘러앉아 청요리에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J의 입을 통해 번진 인야의 ‘스페인 행’마저 도마 위에 올랐다.

원래는 소리 소문 없이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너는 좋겠다, 평생 훨훨 날아다니며 살 수 있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결혼 말고 혼자 사는 건데......" 하는 부러움 섞인 농담들이 동네방네 퍼져나갔다.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어쩌겠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기어이 환장할 상황 속에서도 인생의 묘미는 찾아왔다.

친구들이 툭 하고 던져주고 간 봉투들이 쌓인 것이다. 선뜻 남의 도움으로 떠난다는 미안함이 채 가시지 않았던 인야에게, 그 봉투들은 생각지도 못한 든든한 여비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인생이란 정말 한 치 앞도 모를 일이었다.

 

7월 15일, 여의도에서 요한나 씨와 그의 아들 녀석을 만나 최종 점검을 마쳤다.

엄마의 우려 탓에 떠나기 직전에야 소식을 들었다는 열일곱의 청소년은 키만 껑충했지 아직 어린 티가 줄줄 흘렀다.

'스페인에 가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듣겠다'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녀석의 공손함이 되레 귀여울 정도였다.

사실 인야는 그 여행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내내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생기나 싶어 믿기조차 힘들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고 가슴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내 인생도 참 희한하지. 스스로는 하고 싶어도 못 하던 일을 타인의 손에 의해 떠밀리듯 하게 되다니!'

인야는 자신의 역마살과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2000년 7월 18일, 그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여행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의 푸른 청춘이었고, 인야는 그의 외유를 묵묵히 빛내줄 조연 역할의 중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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