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살다 보니...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2)

작성자남궁|작성시간26.06.22|조회수82 목록 댓글 0

c, 그 이후 (마르찬떼(Marchante) 이야기)

 

그 뒤 두 사람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차에 실려 경찰서까지 이동해 조사를 받았다.

단순한 날치기 사고였다면 서류 몇 장을 쓰는 것으로 끝났겠지만, 요석의 입가에 핏자국이 남을 만큼 목숨을 담보로 한 중범죄였기에 그들도 나름대로 심각성을 고려해 호텔 숙박을 제공하는 등 신경을 쓰는 모양새였다. 스페인 당국의 지원으로 더 오래 머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인야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딱 이틀만을 묵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인야가 스페인 경찰을 신뢰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스페인에 살던 시절에도 관광객들이 강도 사건을 당해 신고한 예를 숱하게 보아왔지만, 그 뒤로 어떤 보상이나 해결이 있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취해지는 조치 역시 형식적인 절차일 게 빤해서, 같이 여행을 하던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 싶었고, 그런 조치마저 취하지 않는다면 억울한 심정을 주체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조사를 받았을 뿐이었다. 최소한 공식적인 기록으로나마 남겨두면 언젠가 이 나라에서도 대책을 세우지 않겠느냐는, 지금의 자신과는 별 상관도 없는 바람을 가져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이미 예상했던 대로 이후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그 어떤 피해보상도 받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각자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약간의 푼돈이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권과 귀국 항공권을 넣은 큰 짐 가방을 호텔 방에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외출했던 덕에 더 큰 화는 면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수첩을 통째로 털린 탓에 스페인 내의 인맥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막막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스페인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알 수 없으니 도움을 청할 길도 끊긴 셈이었다.

형식적인 신고 절차를 밟으면서도 인야는 영영 사라져버린 삶의 한 부분—수첩, 여행 노트, 카메라 속 필름—에 대한 상실감으로 새록새록 가슴이 아려왔다. 도둑들에겐 아무 쓸모도 없을 그 물건들이 이제는 영영 보상받을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당장 필요한 것은 돈이었지만, 가장 아까운 것은 여행 초기의 소중한 흔적들이었던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나자 두 사람은 경찰에게 점차 ‘골칫거리’이자 ‘짐덩어리’로 전락해 가는 기분이었고, 그것은 눈앞의 현실이었다.

그런 애매하고 싸늘한 눈칫밥을 견디기 싫었던 인야는 서둘러 마드리드를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때 인야는 바르셀로나 ‘육마요르(Llucmayor)’의 한 은행에 근무하는 스페인 친구 ‘루이스(Luis)’를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기지를 발휘해, 경찰의 도움을 받아(경찰에게 요구해)... 우여곡절 끝에 해당 은행 지점과 통화를 연결할 수 있었다.

결국 수화기 너머로 루이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인야는 마치 부모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흥분하여 다급하게 상황을 알렸다. 표현의 한계가 있는 외국어로 긴박한 상황을 전하려다 보니 스스로도 아이처럼 일러바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깜짝 놀란 루이스는 은행원답게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인야더러, 마드리드 경찰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기네 은행 마드리드 지점에 연락을 취해 둘 테니...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인야가 그 지점으로 가 루이스가 일러준 직원의 이름을 대자, 은행원은 이미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적잖은 목돈을 현금으로 내주었던 것이다.

 

사실 이야기를 단순화하기 위해 루이스만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또 다른 스페인 친구 ‘마놀로(Manolo)’의 역할도 엄청나게 컸다. 루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던 마놀로는, 그 즉시 마드리드에 사는 자신의 친구를 인야가 있는 경찰서로 급히 보내... 현금 5만 페세타를 전해주는 의리를 발휘했던 것이다.

그러니, 더구나 인생을 총정리하는 이 엄연한 기록에서는 그 고마운 이름들을 빠뜨릴 수 없었다.

 

하늘이 꺼져라 걱정만 하고 있던 아이는 인야의 스페인 인맥이 빛을 발하는 극적인 반전을 보며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표정이 점점 평온해졌고, 어찌 됐든 이 사고로 인해 꼬여버린 후반부 스페인 북부 지방의 여행 경비는 인야의 스페인 친구들의 경제적 도움으로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드리드에서 악몽 같은 이틀을 보내고, 두 사람은 다음 행선지인 ‘팜플로나(Pamplona)’로 가기 위해 호텔에서 나왔다.

호텔 카운터의 여직원은 친절한 듯 아무 문제 없으니 그냥 가도 좋다고 말했지만, 인야는 굳이 고집을 부려 자신이 사용한 전화 요금만큼은 지불하고 떠나겠다고 했다.

한국에 안부 전화를 건 요금만 해도 4천 여 페세타였는데, 아무래도 몸만 빠져나오는 게 얌체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당한 피해자로서 그 정도는 무료로 지원받을 수도 있는 입장일 수 있었다.

그런데 없는 돈에 굳이 전화비를 내겠다는 인야도 참 고집스러웠지만, 말속에 담긴 신사적인 호의를 뒤로 감추고 실제로는 고스란히 그 돈을 챙겨 받아 간 여직원의 이중적인 모습에는... 왠지 모를 배신감과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은 그렇게 마드리드를 벗어나, 지인들을 거쳐 연락이 닿은 친구들의 도움을 이정표 삼아 스페인 북부 '나바라(Navarra)' 지방의 한 작은 마을로 향할 수 있었다.

 

인야에게 이 사고는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가장 심각하고 위험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원래도 '지하'나 '음침한 통로' 같은 장소를 싫어하긴 했지만, 그날 이후로 인야는 더더욱 그런 곳을 기피하게 되었다. 지하도를 건너야 할 때도 굳이 빙 돌아가거나, 어두운 곳을 통과할 일이 있으면 주변과 뒤를 꼭 살피는 버릇이 생기는 등...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트라우마'라는 것이 인야에게도 각인된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무거운 마음으로 마드리드의 ‘차마르틴(Chamartín)’ 기차역에서 보까딜료(스페인식 샌드위치) 두 개와 ‘환타 리몬’ 두 개를 사 들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유레일패스마저 털려버린 탓에 현금을 지불하고도 억지로 2등석 기차표를 사야 했다.

사고만 당하지 않았어도 1등석에서 편히 갈 수 있었을 텐데, 좁고 답답한 좌석에 앉아 가야 하는 현실이 야속했다. 설상가상으로 좌석마저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 쪽이어서 커튼을 꼼꼼히 친 채 답답하게 가야 하는 불운이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인야의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일이 있었다.

지난 금요일 안달루시아에 있을 때, 인야 대신 싱가포르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주었던 친구 ‘뻬드로(Pedro)’의 통화 내용을 기억해 낸 것이다. 당시 옆에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항공사 담당자 ‘젬마(Gemma)’라는 이름을 떠올린 인야는, 직접 그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그녀를 추적했고, 결국 통화에 성공하여... 역으로 뻬드로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공중전화로 뻬드로에게 전화를 걸어 마드리드에서의 참상을 알리자, 그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당장 돈을 보내주겠다고 소리쳤다.

인야는 이미 바르셀로나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아 괜찮다며 그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지만, 수화기를 내려놓는 인야의 마음에는 뭉클한 감동이 고였다.

'아, 내 지난 날의 스페인에서의 삶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았구나!'

가뜩이나 황량하게 얼어붙어 있었던 인야의 마음에, 감동은 물론... 따스한 위안이 번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길고 불편했던 기차 여행 끝에 두 사람은 마침내 ‘투델라 데 나바라(Tudela de Navarra)’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 반대편 역 플랫폼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이가 보였다.

서울에서 요한나 씨와도 매우 가깝게 지내던 ‘마리아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은 마침 몇 년 만에 휴가를 맞아 고향 집에 내려와 있던 차였고, 동생 부부와 함께 인야 일행을 마중 나온 것이었다.

원래 두 사람은 마드리드 사건과 상관없이 계획되어 있던 방문이었지만,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직후였기에... 마리아 수녀님의 등장은 마치 구원처럼 반가웠다.

인야는 수녀님을 만나자마자 마드리드에서의 전말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요한나 씨에게는 이 일을 비밀로 부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며 의견을 구했다.

상황을 전해 들은 수녀님은 깊이 공감하며 그것이 아주 현명한 대처라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수녀님의 동의를 얻고 나니 인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짐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그렇게 인야와 수녀님이 엄숙하게 합의하는 모습을 보며, 00이 역시 엄마에게 입을 다물기로 마음을 단단히 굳힌 모양이었다.

 

‘마르찬테(Marchante)’라는 인구 3천 명 남짓한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왔다는 수녀님의 부모님과 고모님은, 인야와 00이를 가족 이상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수녀님이 멀리 한국에서 봉사하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한국에서 온 손님은 남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워낙 가족 간의 화목을 중요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이 가족은 정말 소박하고 구김살이 없어 제3자인 인야가 보기에도 마냥 부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특히 일흔여덟 살이라는 수녀님의 아버지는 어찌나 정정하신지, 집안의 매 끼니 요리와 서빙을 도맡아 하면서도... 유머 감각이 대단하여 식사 시간마다 온 집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코미디언을 하셔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런 유쾌한 분위기 덕분인지 한국에서는 늘 경건해 보이던 수녀님 역시 이곳에서는 영락없는 활달하고 밝은 딸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이 세상에 걱정 근심 없는 집이 어디 있겠냐만은, 적어도 이 집안에서만큼은 어두운 흔적을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인야는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입맛을 완벽하게 사로잡은 어느 음식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저 큼직하게 썰어놓은 날 토마토 위에 알싸한 생마늘 조각을 얹은, 생소하면서도 극도로 단순한 샐러드였다.

스페인 어디를 가나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상추나 다른 채소는 눈을 씻고 봐도 없어서,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일까?’ 하는 심정으로 포크를 가져다 대었는데,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예상을 뛰어넘는 상큼함과 깔끔함에 인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인야가 연신 감탄하며 접시를 비워내자, 수녀님의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게 입에 잘 맞나요, 리(Lee)?”

“이런 샐러드는 평생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습니다!”

“그래요? 한국 사람 입맛에도 맞는 모양이네.”

노인은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이튿날 점심 무렵, 아버님이 부엌에서 인야를 부르셨다.

“리, 나 지금 토마토 샐러드 만들 건데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줄까요?”

“정말요?”

인야가 반색하며 일어섰다.

“이것처럼 쉽고 간단한 게 없거든. 자, 나를 따라와요.”

아버님은 인야를 데리고 집 뒤편의 아담한 텃밭으로 향했다.

밭에는 토마토, 상추, 피망, 호박, 근대, 가지 등 온갖 채소들이 정성스러운 손길로 자라나 풍성한 초록빛을 뽐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정화되는 풍경이었다.

아버님은 사람 키보다 훌쩍 크게 자란 토마토 줄기 사이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탐스럽고 붉은 토마토 세 개를 뚝딱 따내더니 인야의 손에 쥐여주며 앞장섰다.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 아버님은 인야에게 눈짓을 건넸다.

“잘 봐두라고요.”

방금 따온 싱싱한 토마토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뒤, 꼭지를 따고 주변의 딱딱한 부분을 칼로 능숙하게 도려냈다. 그리고 커다란 접시 위에 토마토를 큼직하게 투박한 가로 썰기로 잘라 가지런히 펼쳐놓았다.

그러고는 굵은 소금을 손가락으로 집어 그 위에 슥슥 뿌렸다.

오랜 세월 몸에 익은 연륜이 묻어나는 손놀림이었다.

“여기에 마늘만 좀 얹으면 끝나요. 한국 사람도 마늘을 많이 먹는다고 들었는데, 우리 집도 마늘 없으면 못 살거든.”

도마 위에서 납작납작하게 편으로 썬 생마늘 조각들이 붉은 토마토 조각 위에 보기 좋게 놓여졌다.

“마지막으로 이 위에 올리브유를 듬뿍 두르고, 식탁에 내어가기 직전에 식초를 살짝 첨가하면 끝이에요. 어때요, 아주 쉽지요?”

정말 그랬다.

요리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단순했지만, 방금 밭에서 따온 생명력이 부엌 가득 번지는 가장 자연 친화적인 음식이었다.

아버님은 인야의 어깨를 툭 치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이 샐러드는 일반 식당에 가면 절대 안 팔아요. 오직 이 지역 사람들만 아는 소박한 가정식인데, 우리 집안이 오랫동안 즐겨 먹어온 비밀 메뉴지. 리가 너무 맛있게 먹으니까 한국에 돌아가서도 꼭 해 먹으라고 비법을 전수해 주는 거요, 하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세뇰. 한국 가서 꼭 제 손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인야도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날 점심 식탁에 오른 토마토 마늘 샐러드는 인야에게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을 선사했다. 스페인 음식 특유의 고기 중심의 기름진 느끼함을 생마늘의 알싸함과 토마토의 상큼함이 단번에 잡아주었다.

한국에서 자타공인 ‘김치 대장’이라 불리던 인야의 식탁에 평생을 함께할 새로운 소울푸드가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어찌나 배불리 먹었는지, 게다가 달콤한 스페인 와인 ‘비노(Vino)’에 기분 좋게 취해 인야는 식사 후 나른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마치 끔찍한 조난 끝에 아늑한 천국으로 휴가를 온 것만 같은 아침이었다.

 

훗날 한국에 돌아온 인야는 즉시 부엌에서 토마토 샐러드 실습에 들어갔고, 비록 스페인 시골 텃밭에서 따온 그 큼직하고 육즙 가득한 토마토를 구하긴 힘들었지만... 워낙 조리법이 간단한 덕분에 현지의 맛을 비슷하게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인야는 쾌재를 부르며 이 요리를 만들어 먹었고,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선보일 때마다... 모든 이들이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노인에게 배운 투박한 요리는 인야의 인생 메뉴로 굳건히 자리 잡았는데, 

인생을 살다 보니 요리 하나를 온전히 익혀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삶의 기쁨이자 영양분이 되는지, 인야는 이 소박한 접시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마드리드의 잔인한 강도 사건 직후에 이 청량한 음식을 만난 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상처받은 인야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 고마운 인연임은 분명했다.

그 영감님 말씀대로 그 뒤로도, 그 이전에도 스페인의 그 어떤 세련된 레스토랑에서도 오직 토마토와 마늘만으로 이만 한 감동을 주는 샐러드를 접한 적이 없었으니, 인야의 자서전에 이 특별한 요리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d, 똥파리들과 대서양의 노래

 

이틀 정도를 마르찬떼의 수녀님 집에 머물며 기력을 회복한 두 사람은, 이제 다른 스페인 북부 지역 여행을 위해 다시 출발해야만 했다.

어차피 아직도 남은 일정이 있었고, 00이 녀석을 서울로 보낼 때까지는 부단히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발길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와는 기후도 풍광도 전혀 다른 북부 도시들로 향했다. 당연히 빰쁠로나(Pamplona)를 지나, 인야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는 대서양의 진주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을 거쳐, 마침내 빌바오(Bilbao)에 닿았다.

 

이 스페인 북부 지방의 구체적인 여행 내용은 소설 정상적인 생활의 내용과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렇게만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 여정의 끝에는 산탄데르(Santander)의 소중한 인연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빌바오 역에 내렸을 때, 하늘에서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찌 됐거나 산탄데르에 사는 호아낀(Joaquin) 씨와 아말리아(Amalia) 부부에게 자신들이 간다고 알려야 했다.

이미 바르셀로나에서부터 그들의 여름 휴가용 집에서 며칠 함께 지내기로 약속이 되어 있던 터였다.

인야는 산 세바스티안에서부터 줄곧 전화를 걸었으나 이상하게도 받지 않았고, 이곳 빌바오 역에서도 몇 차례나 전화를 시도했으나 마찬가지로 불통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우리가 간다는 걸 뻔히 알고 있을 사람들이 왜 전화를 안 받지?’

궁금증을 넘어 이젠 커다란 걱정거리로 변해가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빌바오에서 최소한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이라도 둘러볼 참이었는데, 산탄데르로 가는 기차가 다른 역에서 저녁 6시 반에 출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이 도착한 시각이 이미 5시를 훌쩍 넘긴 때였으니 기차 시간을 맞추기도 빠듯했다. 서둘러 그 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할 겨를도 없이 비를 맞던 두 사람은 겨우 근처 큰 건물의 처마 밑으로 기어들어가 비를 피했다.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여기는 북쪽 지방이라 날씨가 서늘한 편이어서, 비가 내리자 살갗을 파고드는 한기 때문에 차라리 춥기까지 했다.

 

겨우 비를 피해 역에 도착해 산탄데르행 기차표를 사고 나니 출발까지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마땅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두 사람은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대합실 벤치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00이가 앉은 벤치 옆으로 웬 여자아이 셋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무심히 넘겼으나, 인야가 슬쩍 훔쳐본 그들의 눈초리가 영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 중 덩치가 큰 두 놈이 자꾸만 인야가 짊어진 배낭 뒤쪽으로 바짝 다가오는 것이었다.

인야가 눈치를 채고 방향을 바꿔 앉았음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등 뒤를 파고들었다.

집시들이었다.

단번에 눈치를 챈 인야가 나직하게 경고했다.

“00아, 이 애들 조심해라!” 한국말로 주의를 주자,

00이는 깜짝 놀라 벗어놓았던 배낭을 제 몸쪽으로 바짝 챙겼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신문을 보는 척하던, 그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 역시 인야의 눈치를 살피며 아이들에게 또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순간 기분까지 오싹해진 인야는 단호하게 한국말로 말했다.

“00아, 침착하게 짐 들고 일어서!”

00이 역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잽싸게 짐을 챙겨 인야에게 다가왔다.

“우리 아예 저쪽으로 가요.”

두 사람은 자리를 멀찍이 옮겨 버렸다.

인야 혼자라면 지금 당장 어디 다른 곳으로 떠나기라도 하련만, 어린 00이 녀석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했다.

다행히 그 뒤로는 집시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야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우리가 무슨 만만한 봉이냐? 왜 이리 우리 주변에 똥파리들이 득실대는지…….’

이미 가방을 통째로 털려 돈도 없는 처지였건만,

'우리를 노리는 도둑들이 도처에 깔려있구나......' 하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었고, 속이 상한 나머지,

“이젠 돈도 없는데, 우리를 노리는 도둑들이 도처에 깔려있구나!” 하는 탄식을 뱉은 게 실수였다.

아이 앞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었는데, 불안해진 00이가,

“무서워요, 선생님……”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인야는 00이의 어깨를 도닥여주었다.

“그래도 정신만 차리면 돼. 지금은 음침한 실내도 아니고... 아직은 낮이잖아?”

아이를 안심시키기는 했지만, 인야의 마음 역시 씁쓸했다.

그나마 그들에게 안전한 곳은, 달리는 차 속이거나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호텔 방밖에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산탄데르의 호아낀 씨 부부와는 여전히 통화가 되지 않았다.

인야는 궁리 끝에 다시 안달루시아의 뻬드로(Pedro)에게 전화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페드로가 살고 있는 마을이 바로 아말리아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인야는 뻬드로에게, 마침 그 마을에 휴가를 와 있을 아말리아의 올케 ‘꼰수엘로(Consuelo)’를 찾아가... 호아낀 씨 집 식구 중 누구의 핸드폰 번호라도 좋으니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렇게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몇 사람을 귀찮게 한 결과, 약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인야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번호의 맨 마지막 자리가 ‘6’이 아니라 ‘8’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번호 하나를 잘못 알고 있었으니 온종일 전화 통화가 되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제대로 통화를 마친 두 사람은 다소 안도한 상태로 산탄데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 마중을 나온 호아낀과 아말리아 부부는 인야의 초췌한 몰골과 그간의 눈물겨운 경위를 듣고는, 자신들의 일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살아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부부는 인야는 물론이고, 그의 조카로 알고 있던 00이에게 특별하게 더 신경을 써주었다.

마드리드 사건 이후 줄곧 그늘져 있던 녀석의 얼굴에 마침내 환한 미소가 돌아오는 것을 보며, 인야는 비로소 마음의 짐을 다소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부와의 만남은 이번 여행의 시작점부터 예정되어 있던 축복이었다.

처음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옛 산동네 '깐 까라예우'에 올랐을 때, 부부는 두 사람의 여행 계획을 듣고는... 대뜸 손을 잡아채며 말했었다.

“인야, 마침 잘됐네! 자네들이 스페인 북부 지방을 여행할 때는 우리가 마침 산탄데르 여름 집에 휴가차 가 있을 텐데, 무조건 그리로 와. 우리 집에서 며칠 함께 지내자고!”

그 고마운 약속 덕분에 두 사람의 스페인 북부 지방 여행은 이래저래 지인들의 따스한 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산탄데르에서도 참으로 안락하고 안전한 며칠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 날, 호아낀 씨가 직접 자기 차로 이 주변 관광까지 시켜줘서 한 바퀴 크게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워낙 늦게 귀가한 탓에 밤 10시가 넘어서야 저녁 식탁이 차려졌다.

호아낀 씨는 옛 바르셀로나 시절에 늘 그래왔듯, 오직 인야를 위해 특별히 사 온 고급 하몬(Jamon)을 지극한 정성으로 열심히 자르고 있었고, 아말리아는 그녀 특유의 맛있는 샐러드 등을 부엌에서 뚝딱뚝딱 요리해 냈다.

이 집 아들과 딸은 다음 주에나 바르셀로나에서 내려올 예정이었기에, 넓은 식탁에는 네 사람만의 단란한 온기가 감돌았다.

두 사람은 향긋한 스페인 와인 ‘비노(Vino)’를 곁들이며 오늘도 행복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집에 온 이래 인야는 매일 밤 반 병도 넘는 비노를 마시고 있었다.

마드리드에서 목이 졸려 기절했던 사람치고는 신기할 정도로 속이 편안했고 탈도 없었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상태로 옛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며 스페인에 있는 것을 즐기고 있노라니 가슴이 벅찼다.

문득 한국에 있는 인야의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전혀 모른다. 그것도 내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해서야 겨우 추상적으로 상상이나 해볼 뿐, 가슴으로 전해지는 그 생생한 실제감은 전혀 알 수 없을 것인데......'

과거 스페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스페인에서 어떻게 살았어?” 하고 물어올 때마다, 인야는 성의 있게... 마치 군대 이야기를 하듯 또는 은근한 자랑삼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 이야기 중에는 바로 호아낀 씨의 이런 따뜻한 행동과 모습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했는데……

그러나 이젠 인야가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를 해봤자, 그들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아예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조차 않는다. 인야 자신이 아무리 설명을 잘한다 해도, 그들에겐 그저 허공만 맴도는 다른 세상의 일일 뿐이라서……

그래서 언제부턴가 인야는 이런 상황이 되면, 그저 하얀 공책 위에 글을 쓰는 것으로 혼자 즐길 뿐이었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인야가 처음 바르셀로나의 산동네 ‘깐 까라예우(Can Caralleu)’에 도착해 스페인 삶을 막 시작하던 때의 옛 기억들을, 서로의 시각에서 맞춰보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눈으론(특히 아말리아) 인야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았으면서도, 참 황당하고 대책 없는 젊은이’였다는 것이고, 인야의 눈엔 그들이 ‘참으로 따뜻한 이웃’이었던 일로부터……

그런 이야기는 정말 책으로 써도 몇 권은 족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한순간, 기분 좋게 와인이 오른 인야는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취흥이 치밀어 올랐다.

졸음을 참지 못하고 먼저 제 방으로 올라간 00이의 빈자리를 보며, 인야가 부부에게 불쑥 제안했다.

“내가 노래 한 소절 할까?”

“정말이야? 당장 해봐!”

부부가 식탁을 두드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인야는 바로 옛날 중학교 영어 시간에 배웠던 나직한 멜로디 하나를 입 밖으로 꺼냈다.

당시 영어 선생님께서 이 노래가 ‘칠레 민요’라고 소개해 주셨던 곡이었다.

“아, 세월은 잘 간다. 아이~ 아이~ 아이~”

노래의 간단한 한 소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부는 난리가 났다. 박수를 치며 어서 다시 부르라고 채근했다.

인야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다시 부르기 전에... 왜 그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지 그 이유부터 나직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호아낀 씨는 말을 하면서 이따금 말끝에 “아이 아이(ai ai)……” 하는 넋두리를 붙이곤 했다.

인야가 까마득한 중학생이었을 때, 하필이면 영어 선생님이 그 노래를 부르실 때... 영어로 ‘나(I)’가 아닌, 그렇지만 발음이 똑같던 ‘아이(ai) 아이(ai)...’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일까 몹시 궁금했었다.

그렇지만 그저 궁금하기만 했을 뿐 그 뜻을 알 도리조차 없어 그냥 세월을 흘려보내고 말았었다.

그런데 인야 나이 서른다섯에 스페인에 와서 살다 보니, 특히 이웃인 호아낀 씨가... 그 말을 늘 사용하는데도, 처음엔 역시 전혀 이해를 못 하다가... 결국 몇 년이 지나면서야, 그것이 스페인 사람들이 ‘넋두리’를 하거나 ‘한탄’을 하면서 사용하는 고유한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표현(“아이 아이(ai ai)……”)을 이해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자,

부부는 깊은 감동어린 눈빛을 보냈다.

“이 노래는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면서, 그저 별 뜻도 없이 뒤에 붙이는 한탄조의 후렴구일 뿐입니다.”

인야는 여세를 몰아 다음 소절까지 이어서 불렀다.

“아, 세월은 잘 간다. 아이~ 아이~ 아이~ 내 살던 곳 그리워라. 아이~ 아이~ 아이~”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호아낀 씨가 무릎을 치며 스페인식 감탄사를 내뱉었다.

“홀린(Jolin, 세상에나)!” (이 표현 역시 호아낀 씨가 놀라는 상황에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뜻하지 않게 감탄을 하면서 놀라는 호아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인야의 행복은 대서양의 밤하늘을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인야는 한국에서는 웬만해서는, 아니 거의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른 주변 사람들이 너무나들 노래를 잘하다 보니 그 기에 치여서, 노래의 ‘노’ 자도 못 꺼내는 실정이었다.

주눅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남들이 노래방에 가자는 것조차 손사래를 치면서 질겁을 하는 사람이 바로 인야였는데......

 

그렇게 흥이 올랐던 인야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혼자 좋아서 자청해서 노래까지를 부르는 사람이 돼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일주일 전만 해도 죽을 뻔했던 사람이......

'글쎄, 이런 내 심정과 행동을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감정을, 이렇게 글로라도 풀고 싶은 것이다......'하고 있었다. 

 

 

스페인 북부 대서양 연안 깐따브리아(Cantabria) 지방의 산탄데르에서 꿈 같은 며칠을 보낸 뒤, 두 사람은 마침내 00이의 항공 일정에 맞춰 그를 한국에 보내기 위해... 그 가기 싫던 마드리드로 다시 가야만 했다.

그 엄청난 사고를 당했는데도 00이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연신 아쉬운 탄식을 뱉어냈다.

“너무 빨리 돌아가는 것 같아 아쉬워요, 선생님.”

마드리드에서의 잔혹했던 반나절만 제외한다면, 열일곱 소년에게도 이 스페인 여행이 매우 성공적이고 의미 깊은 모험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결국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할 때, 인야는 창구의 승무원들에게 00이를 인도하며 특별한 부탁을 건넸다.

“이 아이가 키만 장대처럼 컸지, 아직은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니, 경유지인 싱가포르에서 내린 뒤 한국행 비행기를 무사히 갈아탈 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세요.”

인야의 간곡한 당부에 노련해 보이는 여자 승무원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컸던 00이의 손을 꼭 쥐고 탑승구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멀어지는 아이의 등판을 바라보며, 인야는 비로소 요한나 씨가 맡긴 거대한 임무를 무사히 끝마쳤다는 안도의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 스페인 땅에, 인야는 홀로 남겨졌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