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까미노 입문
어쨌거나 건강한 모습으로 00이를 한국행 비행기에 태워 보낸 뒤, 인야는 마드리드의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잠시 몇 자를 끼적이기도 했다.
물론 아이가 아직 서울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보호 아래서 무사히 벗어났기에... 인야는 비로소 온전한 자유의 몸이 된 기분이었다.
요한나 씨에게 연락해 아이를 무사히 보냈다는 말을 전하려 했으나, 무슨 일인지... 녀석이 적어준 번호만으로는 통화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떴다.
하지만 녀석이 이미 자기 엄마와 연락을 취했을 게 분명했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인야는 기왕에 마드리드에 온 김에, 아직도 가보지 못한 '똘레도(Toledo)'라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수중에 남아있는 돈이 넉넉지 않았다.
돈에 쪼들리는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될 스페인에서의 여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 없이 역에서 시간을 때우다 기차에 올랐다.
이제 다시 바르셀로나(Barcelona)로 향하는 길, 그곳에서 펼쳐질 이번 스페인 여행의 '제2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어느덧 20일, 그간 여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데다 당시 스페인은 컴퓨터 사용률이 너무 낮아... 이메일조차 확인하지 못했기에 한국의 소식이 못내 궁금해지는 인야였다.
인야가 1998년 독일 생활을 하기 앞서 잠깐 들렀던 때를 떠올리면, 이번 바르셀로나 방문은 2년여 만에 온 셈이었다.
그전에 이곳에서 살다가(1990~1994) 귀국한 이래로, 그래도 2년 꼴로 한 번씩은 꾸준히 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매번 그 변화가 너무 많은 것에... 실망을 떠나 이제는 허무함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바르셀로나는 자신에게 친숙한 곳이자 외국에서 살아본 첫 번째 도시로 '제2의 고향'이었지만, 세월의 흐름과 세태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에... 이제는 조금씩 '점점 멀어져 가는 도시'로 바뀌는 느낌을 지울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야는 바르셀로나에 올 때마다 필수적으로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옛 생각에 젖어 람블라 거리를 천천히 걸어 내려가다 항구에 닿으면, 거기 바다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일이었다.
온전히 혼자서 해야 할 일이었다.
이번에도 초반에는 00이를 데리고 다녔기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가, 이제야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본 것이었다.
람블라의 분위기는 언제나 그렇듯 저녁 무렵 산책 나온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거리가 비좁을 정도로 붐비고 있었는데, 인야는 마드리드 사건 이후 이따금 뒤를 돌아보거나 등에 가방이 제대로 메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 있었기에, 더구나 여기 람블라는 그런 소매치기들의 본산이기도 하기에... 더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등에 메고 있던 조그만 가방을 한 손으로 꽉 움켜잡은 채 걸어 내려왔고, 결국 여기 '바다 람블라'에 앉게 되어서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곳은 10년 전쯤, 인야에게 난생처음이던 외국인 이곳에 도착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순간부터의 지난 이야기들을 좍 되새기면서 현재의 제 모습을 확인해 보는 장소이자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다음에야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무엇이든 행동에 옮기곤 하는데, 그것도 몇 차례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마치 '필수적인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지난날을 회상하다 보면 감상적이 될 수밖에 없고 약간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분명 마음이 깨끗해지는 효과도 없지는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인야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그 누구에게 연락도 하기 전에 이곳을 찾아왔고, 멍하니 앉아 항구의 숭어떼를 바라보기도 했고... 또 옛 생각에도 잠겼다가,
'이제, 장에게 가 보자!' 하면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번엔 '장'의 집에 머물 수 있었다.
처음에 00이를 데리고 도착했을 때는 호텔에서 머물렀지만, 그 사이 장의 처가 출산 문제로 한국 친정에 두 달 일정으로 가 있었기에... 자유롭게 지낼 공간이 생긴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스페인 사람들의 집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1990년 같은 해에 바르셀로나에 처음 도착해 수년간 가깝게 지내고 거리에서 초상화가 기억도 함께 나눈 '바르셀로나 입성 동기'인 그의 집이 가장 편했기 때문이다.
사실 마드리드에서 그런 사고를 당한 뒤 인야와 00이는 의기소침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돈까지 털린 다음에 남은 일정을 보내야 했기에 암울한 현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으나, 다행히 스페인 여기저기에 지인들이 있어...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대를 받았는데,
본래 손님을 환대하는 풍습이 강한 스페인 사람들에게, 목숨까지 위협받으며 탈탈 털린 한국인 피해자 둘에게는 각별한 보호 본능이 작용했던지... 그 뒤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신들의 죄인 양 미안해하며, 평소보다 더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영어만 조금 할 줄 아는 00이를 안쓰러워하며, 어린아이처럼 보살펴주려고 난리들이어서... 인야의 시선으로서도 미안할 정도였는데,
녀석 역시 그들의 본심이 느껴졌는지,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흡족해하여... 무척 다행이었다.
그러니 인야는,
'‘전화위복’이라더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안 당했을 때보다 훨씬 더 대접을 받네!' 하며 머쓱해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과거 1993년 바르셀로나에 살 때도 한 번 집(침묵의 집)이 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하나같이 미안해하며 못 도와줘서 난리였던 기억마저 새롭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만약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서 서울에 온 스페인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인야 역시 똑같이 미안했을 것이기에...
'동양사람이든 서양사람이든 그런 정은 다름이 없나 보네......' 하는 '인지상정'을 느끼며, 인야는 여기 바르셀로나에 와서도 여전히 이번 일을 좋은 경험이라거나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다독이고 있었다.
이번에 스페인으로 올 때 인야는, 뭔가 새로운 시도라도 해보려고 했었는데... 마음 한편에 미국행을 염두에 두고 있던 인야로서는, 또다시 바르셀로나에 완전히 눌러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보니 장기간의 포석을 깔 수도 없었기에, 결국 옛 친구와 지인들을 찾아다니는 일 외에는 크게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스페인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노는 정이 끝내주는 나라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마드리드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감사하면서도, 인야는 금전적인 도움을 받았던 루이스(Luis)와 마놀로(Manolo)에게 신세만 진 채 그대로 떠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이상, 어떻게든 그 고마움에 따른 보답을 하여 인간관계의 도리를 다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루이스에게는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가져왔던 ‘목각 신랑신부 인형’을 선물로 주었는데, 이 선물이 뜻밖에 더욱 빛을 발하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인야는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이번에 와서 보니... 루이스가 한 여자와 동거 중이었던 것으로,
비록 정식 결혼이 아닌 동거 생활 중이었지만, 마치 맞춤형 선물이라도 받은 듯... 루이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어디 그 뿐이던가.
루이스는 인야가 과거 한국으로 귀국하기 직전 선물로 주었던 자신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말을 건넸다.
“인야, 우리 집 거실 제일 눈에 띄는 곳에 이 초상화를 걸어놓고 나는 날마다 당신 생각을 해.”
그러면서 루이스는, 인야가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에도 돈이 필요할 테니 더 융통해 주겠다는 제안까지 해왔다.
인야는 펄쩍 뛰며,
"내가 맨날 너한테 빚만 지고 살겠냐?"고 화까지 냈지만,
루이스는, 현실이 그러니 화만 내지 말고 돈을 받으라며 거듭 강조했고...
결국 인야가,
"만약 정말 힘이 들면, 그때 이야기하겠다!"고 딱 잘라 거절하며 겨우 상황을 마무리 지었지만,
그런 루이스의 마음 씀씀이를 모를 인야가 아니었고, 마음 속 깊은 감동까지를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고마운 친구, 마놀로(Manolo)를 찾아갔다.
인야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뒤 장에게 도움을 받고, 일본 친구 야마시다의 일을 조금 도우며... 간신히 마련한 현금 5만 뻬세따를 마놀로에게 내밀었다.
그가 마드리드에 살던 친구를 통해 인야에게 보내주었던 바로 그 돈의 액수였다.
“마놀로, 지난번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일은 너무 고마웠어. 여기, 그때 그 돈을 갚으려고 해.”
그러자 마놀로는,
"내가 그 돈을 갚으라고 보낸 줄 아느냐?"며, "인야, 지금 너에게 무슨 돈이 있다고 이걸 가져왔냐?"고 화를 내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마놀로가 워낙 펄쩍 뛰는 바람에 인야는 쭈뼛쭈뼛 돈을 다시 거둘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신세를 진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인야는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어느 하루 마놀로의 집에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인야는 그동안 바르셀로나에 머물며 그렸던 몇 장의 드로잉 중 스페인 여행 중에 세빌랴(Sevilla)에서 보고 느꼈던 ‘투우’ 드로잉 한 점을 챙겼다.
“마놀로, 니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어? 그렇지만 나도 그냥 받기만 할 수는 없잖아. 이건, 니 고마움에 대한... 나의 성의야.”
그림을 보여주자 마놀로는 깜짝 놀라면서도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인야의 예술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야 인야도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그 집에서의 점심을 행복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로써 마드리드 사건으로 얽힌 스페인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뒷마무리가 비로소 깔끔하게 매듭지어진 셈이었다.
그런데 인야의 이번 스페인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일주일 전,
여름 휴가를 마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아말리아(Amalia)와 호아낀(Joaquin) 씨 부부의 집에서 일어났다.
막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그렇잖아도 조금 늦게 도착했던 이 집의 아들 호아낀(Joaquin. 스페인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같은 게 매우 흔한 일이다.)이,
"인야, 나 작년에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을 한 걸 아세요?" 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내가 그 길을 걸으면서, 인야 당신 생각을 참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도 한 번 그 길을 걸어보지 않겠어요?" 하는 것이었다.
본래(10 년 전 바르셀로나에 살 때도) 성지 순례길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며 별 관심이 없던 인야였다.
그렇지만, 식탁에 둘러앉은 온 가족이 '예술가에게 더욱 가치 있는 길'이라며 꼭 가보라고 목청을 돋우기 시작했다. 특히 어머니 아말리아는,
"인야! 말도 마! 작년 여름에 쟤가 그 길을 걷고 나서 거지같은 모습으로 우리가 머물던 '산딴데르(Santander)'에 돌아왔을 때, 내가 놀란 걸 생각하면... 지금도 충격이라니까!" 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도, "인야, 너도 수도하는 기분으로라도 한 번 해봐! 예술가니까, 정말 좋을 거야!" 하고 열을 올리며 다그치기까지 했다.
그제야 인야는,
'도대체 어떤 길이기에 저런다지?' 하고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들 호아낀이 밥을 먹다가 밖으로 나가더니, 자신이 작년에 했던 그 길에 대한 앨범과 안내서등 한 아름을 챙겨 가지고 오더니,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인야는, 무엇보다도 그 풍광에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의 막바지에 있다는 '철십자가' 사진을 보는 순간, 한국의 ‘솟대’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인야는 솟대를 좋아해서 서울의 아파트에 솟대를 만들어 베란다 난간에 설치해 놓고 보고있었다.)... 바로 그 순간,
'아, 바로 이거다!' 강하게 끌리는 마음에, '나도 한 번 해보자......' 생각하고 말 틈도 없이 바로 결정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 호아낀이 툭 던진 말이 있었다.
"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한 사람은,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고 해요......"
"뭐? 인생이 바뀐다고? 어떻게?"
인야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길을 걸어서 끝낸 사람들은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멀고도 긴 길을 걷다보면, 인생관이 바뀔 수도 있고, 자기가 처한 상황에 결정적인 변화를 주기도 하는 등, 그런 생각으로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생이 바뀌어있는 경우가 제법 많다는 이야기였다.
인야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인야는 바로 그에게,
"그렇다면, 너 호아낀은 어떤 변화가 있었어?"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물론 나도 변화가 있었지요." 하더니, "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났거든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인야에게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했다. 그러면서 또 바로 인야는,
'그렇다면, 뭔가 내 인생도 바뀌려나?'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면서, 더 깊이 그 길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자신의 경우를 참고로 해서... 잠 자는 문제가 궁금해,
"그럼, 그 많은 날들을... 어디 가서 잠을 자는데?"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 그런 걱정은 말아요, 인야. 그 길엔 길목 군데 군데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잠을 잘 수 있는 숙소(알베르게)가 있어서, 성지 순례길이기도 해서...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장기간 걸을 수 있답니다." 하기까지 하니,
경제력이 약한 인야에게도 그 길을 실행할 결정적인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을 만큼 충동적인 열망이 일었으나, 현실은 귀국이 고작 일주일 남은 상황이었다.
인야는 아쉬움을 머금고 다음 해로 실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꼬박 1년 동안, 인야는 마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온통 '산티아고 가는 길'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게 되었다.
마드리드에서의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기도 했지만, 여행의 막바지에 '까미노'에 대한 거대한 꿈과 열망을 품고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스페인 여행은 인야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그로 인한 스페인 친구들과의 돈독한 인간관게를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고, 나아가 다음 해부터 이어질 '까미노'로의 입문까지 획득하게 한 뜻깊은 여정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