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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쳐] 정부 향해 돌직구 날리는 간 큰 연극 '천안함 랩소디'

작성자바나나문프로젝트|작성시간13.10.01|조회수40 목록 댓글 0

윤경민 기자


돈도 안 받겠단다. 연극을 보고 마음에 드는 만큼 내고 가라고 한다. 티켓 대신 달랑 봉투 하나를 받아들고 공연장으로 들어가니 “널리 퍼트려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이 보인다. 허름해서 초라하기까지 한 공연장에는 어딘가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연극 ‘천안함 랩소디’(연출 김태수)가 이처럼 필사적으로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저절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검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낡은 소파,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든 구식 냉장고가 놓인 무대 저편에서 서글픈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다 어디로 숨어 버린 거야? 나 혼자서라도 한다! 가자고 가자!”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박달(명계남 분)이 비틀비틀 들어온다. 드디어 논란의 작품이 첫 발걸음을 뗀다.
 
어두울 거라는 예상을 깨고 무대는 활기차고 유쾌하다. 박달과 함께 고물상을 운영하는 조수 억수(조영길 분)는 빨간 머리에 호피 무늬 바지와 얼룩무늬 상의를 입은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청년이다. 그는 “천안함 사건은 화성인들이 범인이야!”라며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박달과 억수가 한창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다방에서 일하는 연자(윤국희 분)가 커피를 들고 이들을 찾아온다. “벗으라면 벗겠어요~”라며 당돌한 포즈를 취하는 연자는 이들에게 자신의 꿈이 영화배우라며 영화를 찍자고 조른다.
 
연자는 구성진 노래와 간드러진 연기를 선보이며 자신이 기획한 영화 ‘전설의 고향’을 들려준다. 갑자기 무대를 감싸고 있는 흰 천막에 인어공주, 물고기, 폭죽, 선박 등 각종 그림자가 나타난다. 아기자기한 그림자 연출이 코믹하고 정감이 간다. 관객들은 연자의 이야기를 통해 천안함 사건을 되새기게 된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제2함대사 소속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여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연극 ‘천안함 랩소디’는 사람들이 말하기 주저했던 모든 의혹을 여과 없이 쏟아낸다. 박달은 “의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라며 구체적인 자료들을 준비해 차근차근 설명한다. 
     
박달은 “제대를 하루 앞둔 장병,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한 장병이 죽었어. 46명이나 죽었는데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지!”라며 절규한다. “종북은 누구고 빨갱이는 뭐니?”라고 묻는 박달에게 다방 사장(홍승오 분)은 “국가의 발표를 못 믿으면 종북이고 빨갱이지!”라며 위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는 “천안함 프로젝트? 전화 한 통이면 다 끝나”라며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을 금지한다.
 
박달과 억수, 연자는 다방 사장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실 게임을 시작한다.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공방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들의 진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공연장에는 전사한 46명 장병의 이름이 울려 퍼진다. “최정환 상사, 조진영 중사, 이상민 하사….” 끝도 없이 나열되는 가슴 아픈 이름 때문에 객석은 차갑게 얼어붙는다. 모든 조명이 꺼진 그 순간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환하게 불타는 초를 나눠준다. 공연장은 애도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연극 ‘천안함 랩소디’의 공연장은 대학로 깊숙이 숨어있다. 마음을 먹고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더라도 공연장을 찾는 동안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자. 분명 쉽지 않은 연극이다. 직설적이고 과감한 비판과 풍자가 불편할 수도 있다. 예상보다 훨씬 짙은 정치색에 뜨악하고 당황할 수도 있다. 정치 성향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피곤한 연극이 될 수 있음을 알린다.
 
연극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혹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공연 내내 한풀이하듯 이야기한다. 천안함 사건,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의혹,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혐의 등 부끄럽고 침울한 사건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천안함 랩소디’는 공연이 모두 끝난 후 관객들에게 막걸리를 나눠준다. 술 한 모금이 간절하게 생각나는 연극이다.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천안함 랩소디’
작: 오태영
연출: 김태수
공연기간: 2013년 9월 20일~10월 13일
공연장소: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
출연진: 명계남, 윤국희, 조영길, 홍승오 외.
관람료: 후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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