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은 육조시대 중국 최초의 본격적 직업화가 이었던 고개지가 인물화에서 강조한 이론이다. <논화>와 <위진승류화찬>에서 인물화를 중심으로한 전신사조론을 제시하면서 ‘인물 표현에 있어 그 주된 목적은 인물의 정신을 그리는데 있다’는 인물화의 개념으로 ‘전신’을 강조하였다.
전신사조에서 전신이란 그 대상에 숨겨진 신, 즉 정신을 그려내는 것을 의미하여 사조란 대상의 형상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전신 사조란 대상을 재현하되 마치 카메라의 사진과 같이 기록하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인물의 인격과 정신까지 담아내어야 한다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신 사조’의 방법으로는 ‘이형사신’, ‘천상묘득’, ‘불점목정’이 있다. ‘이형사신’은 형상으로써 정신을 그린다는 의미로 전신은 반드시 객관적 형채의 묘사를 기초로 하여 정신을 그려내야 함을 뜻한다. ‘천상묘득’은 이러한 ‘이형사신’의 과정을 나타내는 말로, ‘생각을 옮겨서 묘를 듣는다’는 의미인데, 작가가 대상이 되는 인물의 사상과 감정에 대해 체험한 것을 기초로 전신의 예술형상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불점목정’은 눈동자 속에 전신의 생명력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눈동자를 통해 전신의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렇듯 고개지는 인물화의 표현에서 전신의 가치를 강조하되 형사에서 조차 그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됨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이러한 전신을 구현한 (가)와 (나)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인물의 형태 표현, 필묵법, 색채 등을 중심으로 표현 특성의 차이를 살펴 볼 수 있다.
먼저(가) 김명국의 <달마도>에서 인물표현은 상반신만을 4분의 3 측면관으로 두건을 쓰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강렬한 시선, 짙은 콧수염의 표현으로 내면적 정신세계를 표현한 선종 인물화 이다. 이는 간결하면서 변화감 있게 표현하며 그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반면 (나)<이채 초상>은 치밀한 화면 구성과 묘사법으로 대상의 사실성을 극도로 표현하고 선비의 기운과 정신을 강하게 드러내는 인물표현을 보여준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은 정신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듯 날카롭고, 정확한 윤곽을 중심으로 묘사된 눈썹과 코, 굳게 다문 입술에서 강한 의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이처럼(가)와 (나)는 내면적 정신세계를 표현 즉 전신을 나타내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간결하게 인물을 표현한 (가)와 치밀한 묘사로서 표현한 (나)의 인물 표현에서 차이점을 드러낸다.
둘째, (가)에서 표현된 필묵법은 굵다란 옷 주름 선에서 보여지듯이 빠른 필치로 그린 감필법이 표현 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려낸 의습 에서 빠르고 힘찬 갈필의 사용과 극도의 생략과 백묘법의 사용도 보여 진다. 이렇듯 (가)는 즉흥적 필선으로 다양한 농담 변화를 표현하고 대담하고 간략한 붓질로 대상의 내면세계를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나)는 얼굴 표현에서 세필을 이용하여 눈, 눈썹, 수염을 공필법으로 묘사하여 객관적으로 외형의 사실성과 함께 인물의 당당한 기개를 강조한다. 옷의 묘사에서도 선염법과 선의 변화가 나타나며 사실적으로 표현이 두드러진다.
셋째, (가)와 (나)는 색의 표현에서도 차이를 드러내는데, (가)는 사실적으로 그린 채색화 보다는 간략화 되고, 직관적으로 수묵화로 표현하여 힘찬 필선 위주로 하고, 채색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반면(나)는 얼굴의 표현에서 살결방향에 따르는 섬세한 붓질 묘사(육리문)와 함께 훈염법을 이용한 음영의 처리로 얼굴을 더욱 입체적으로 부각시키는 채색의 기법이 사용되었다. 훈염법은 얼굴의 음푹한 부분은 붓질을 거듭함으로써 어두운 느낌을 주고 도드라진 부분은 붓질을 덜하여 밝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얼굴의 높고 낮음이 표현되어 입체적 표현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와 같이 (가)와 (나)는 공통적으로 인물의 내면적 정신세계를 추구하지만 표현 특성에서는 차이를 보이며 전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최소한의 간략한 붓질과 대담한 표현으로 그 정신세계를 표현하나 이것이 과장될 경우 광태사학파의 표현 특성처럼 지나친 기교로 빠질 수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지나친 섬세한 표현으로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여 대상에 숨겨진 정신을 놓쳐서는 안된다. 앞서 전신의 표현 방법으로 ‘이형사신’과 ‘천상묘득’에서 살펴보았듯이 지나친 정신에 집중하여 형사를 염두해 두지 않는 표현은 전신의 표현으로 알맞지 않으며 너무 형사에 치중하여 정신 즉 본질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처럼 고개지가 제시한 ‘이형사신’과 ‘천상묘득’의 방법의 개념을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지님으로써 진정한 전신이 구현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