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자들은 부활하신 제자들을 만나 40일 동안 어떤 말씀을 들었습니까?
이러한 말씀이 나에게 들려오는가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곧바로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 무려 ‘40일’ 동안 머무셨습니다. 이 40일은 주님에게 있어서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기회였고, 제자들에게는 영적인 ‘집중 교육 기간’이었습니다. 그 귀하고 아까운 시간 동안 주님이 오직 한 가지 주제에만 몰두하셨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바로 3절에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성경에서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때로 숫자가 문자 그대로의 숫자가 아닌 어떤 상징성을 두고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숫자가 무엇이던가요? 4, 7, 40 이런 숫자입니다. 대부분 완전함을 상징할 때 쓰이던 숫자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부활하시고 난 뒤 완전하게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40일 동안 함께 있으시면서 무슨 말씀을 하셨다고 하나요? 3절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일’,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을 떠올립니다. 대형 예배당을 짓거나, 선교지에 학교를 세우거나, 큰 이벤트를 꿈꾸든가, 밤낮없이 교회 봉사를 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제자들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영생에 관한 말씀을 가르치시니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이 질문에 예수님은 명확하게 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그 당시 말씀을 듣던 무리들도 우리와 동일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부지런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여야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일은 내 힘으로 거창한 업적을 쌓아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나의 주인으로 왕으로 메시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시며 주인이신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 아래로 내 삶을 내어드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2.제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이었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나는 어떠합니까?
그러나 40일 동안이나 이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집중 강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영적 수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질문을 보십시오. 6절입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참으로 기가 막힌 질문입니다.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배웠는데, 그들의 관심은 여전히 ‘이스라엘 나라’(내 나라)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여전히 정치적인 해방, 눈에 보이는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이 땅에서 남들보다 성공하여 기득권을 회복하고 좌의정 우의정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을 보십시오.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며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예전 직업으로 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흩어지더니, 주께서 이제 부활하여 살아나니 다시금 잊을 뻔 했던, 십자가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알았던, 예전 욕망이 되살아납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해방, 그리고 논공행상을 통하여 한 자리 식 받아서, 누구는 장관이 되고, 누구는 비서실장이 되며, 누구는 국정원을 장악하는 눈에 보이는 성공, 내 가문이 창대해지는 것, 내 나라의 회복이 관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의 관심은 무엇일까요? 주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7절이지요. “시기와 때는 아버지의 권한이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비극이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가 드리는 기도의 제목이 이 제자들의 질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 내 사업이 회복될 때가 이 때니이까?” “주님, 내 건강이 회복되고, 내 자녀가 남들 앞에 보란 듯이 성공할 때가 이 때니이까?” 물론 이 기도 제목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어야 하고, 묶인 현안들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이 ‘오직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세상 욕심에 갇혀 있던 제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3.내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이기적인 관심사와 세상 욕심을 깨부수는 일은 성령이 하십니다. 내 삶에서 깨뜨려야 할 나만의 견고한 진(게으름, 욕심, 두려움, 염려 등)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어떻게 해야 내 이기적인 관심사를 깨뜨리고 주님의 관심사인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내 결단과 의지, 노력으로 가능할까요? 단언컨대 불가능합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그들의 본성은 여전히 세속적이었습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결코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인간의 노력을 요구하시는 대신, 두 가지 강력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 1:8)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권능(Dunamis)”이라는 단어에서 ‘다이너마이트’가 나왔습니다. 주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은 인간의 세련된 말재주나 얄팍한 지식, 교양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에 바위처럼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기적인 ‘내 관심사’와 ‘세상 욕심’을 송두리째 박살내고, 세상의 박해와 두려움을 단번에 이겨내게 만드는 성령의 폭발적인 능력입니다.
이에 대해 20세기의 위대한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십자가 구속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히 죄 사함을 받는 수준을 넘어, 영적으로 죽어있던 인간의 심장 속에 하나님의 영이 힘차게 뚫고 들어오시는 ‘성령 세례’에 있다.”
성령 세례는 우리의 옛 자아가 예수와 함께 물에 잠겨 완전히 죽고, 성령의 권능으로 다시 태어나는 폭발적인 실체입니다. 이 성령을 받았을 때, 제자들의 삶에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오직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을 때, 비로소 자기를 위해서만 살던 자들이, 자기 성공과 안위만을 구하던 겁쟁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진짜 ‘증인’으로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에게는 오직 하나의 유일한 정체성만 남습니다. 그것은 바로 ‘증인(Martyres)’입니다. 놀랍게도 이 ‘증인’이라는 단어는 훗날 역사를 거치며 ‘순교자(Martyr)’라는 뜻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영적 거성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대목에서 우리를 향해 피를 토하듯 이렇게 강해합니다. “증인은 자기 철학을 우아하게 말하는 자가 아니다. 자기가 목격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피를 쏟으며 증명해 내는 순교적 사명자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 그 이후”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나의 관심사가 주님의 관심사로 바뀌는 삶입니다. 여전히 ‘내 문제의 해결, 내 가정의 안위, 내 사업의 성공’이라는 좁은 이스라엘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우리의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전 우주의 땅 끝을 향해 맹렬하게 뻗어 나가는 성령의 역사에 우리의 인생을 던져야 합니다. 내 힘과 결단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십시오. 거기서 인생이 새로 열립니다.”
4.예수의 부활과 사랑을 삶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요?
(지체,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정직하게 행동하기, 청소하기, 등등)
5.여전히 내 문제의 회복에만 갇혀 있던 시선을 돌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믿음을 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