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1.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마태22:34~40
마가는 이 율법사를 한 서기관이라고 말했으며 주님을 변론의 귀재로 인정한 상태에서 시험코자 질문했다 합니다(막12:28)
이 사람은 방금 전 예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두개인들의 논리를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여 생긴 오해의 산물이라고 명확히 말씀해 주신 것에 매우 기뻐하는 바리새인중의 한 사람입니다
정죄하여 당장 감옥에 쳐넣어도 여전히 분한 판국에 성경을 오해 해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라며 어찌해서든지 성경으로 이해시켜 주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분의 긍휼하심을 사모하게 됩니다
또한 오늘날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 권능도 몰라 생긴 오해와 오류와 왜곡과 치우침의 현상들을 불쌍히 여기사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정오의 햇살 같이 비쳐 주시길 기도합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께서 가장 큰 계명을 유일하신 하나님을 근거로 답해 주자 서기관도 "옳소이다"로 예수께 화답한 걸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 보다 나으니이다"막12:32~33
이에 예수께서는 그가 지혜롭게 대답함을 보았다 하십니다
지혜가 지혜를 본 것입니다
나아가 지혜 되신 주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한그에게 하나님 나라를 던져 주십니다
"네가 하나님 나라가 멀지 않도다!"
"지혜로움"은 복잡하고 어렵고 실타래처럼 엉긴 과제를 꿰뚫어 풀어 내는 천재적인 통찰력과 무관치 않습니다
누구들은 십계명을 더 잘 섬기겠다고 613개명으로 늘리는 판국에 이 사람은 열 계명도 많은 듯 가장 큰 계명 한 두개가 뭘까 고심합니다
어쩜 계명의 숫자 놀이로 하나님 섬김의 열심을 보이려는 동류들의 외식에 멀미를 느끼는 자인지도 모릅니다
누가복음에서도 한 율법사가 나오는데 예수께서는 그에게 "네가 말한대로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눅10:28)
이는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무리 계명을 옳게 말하고 쓸지라도 <행하지 않는 한 산 자가 아니고 죽은 자>라는 엄청난 충격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태,마가복음에 나온 율법사(서기관)에게는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는 말씀으로 용기를 실어 주십니다
사실 하나님 나라는 지혜로운 답변으로 들어가는 곳은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그와 하나님 나라의 간격을 좁혀주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기 확신속에 있었을까요?
아마 그랬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무지 율법대로 살 수 없다는 자괴감속에 율법사로 살아 온 자신의 전 인생에 허무함을 느꼈다면 다시 일어 날 수 있는 격려의 기쁜 말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지혜로운 답변이 그로하여금 회개에 이르게만 한다면 하나님 나라 하나님 집 성전 성령의 전으로 건축되어 질 것입니다
버리고 싶은 내 죄악과 질병과 약함을 숨기거나 하얗게 덮거나 삭제하거나 망각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집 모퉁이의 머릿돌 되신 주께로 가져 오면 보혈로 씻기사 성전의 산 돌이 되게 하십니다
회개 없이 절대 못들어 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복음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4:17,막1:15)"이지 "복음을 믿어라!"가 아닙니다
성경을 몰라서 오해한 것입니다
회개하면 예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믿고 날마다 회개하며 살아가는 상태는 사실상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왜냐면 그리스도는 영원히 내 죄와 질병과 약함과 상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인 사도바울의 <죄가운데 은혜가 많도다>는 말씀을 이 율법사 (서기관)도 고백하게 되었을까요?
묵상2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마22:41:42
이 질문은 예수께서 가장 큰 계명을 질문해 온 한 율법사(서기관)에게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로 시작하여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으로 답해 주신 후 바리새인들에게 던지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유월절기를 지키려고 백성들이 모여 든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있는 중입니다
이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부터 각각 질문을 받고 답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예수의 그리스도됨을 의심하고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다고 믿는 저들을 이해시키려고 주신 것입니다
저들은 '무슨 권위로 가르치느냐'며 물을 때에 예수를<네가>로 불렀습니다.또한 일반 명사로서 <선생님>으로도 불렀습니다
내가 부르는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정확히 알고 부르는 것과 대충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부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귀신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았습니다
공생애시 예수를 알아 준 것은 귀신 밖에 없을 정도로 예수가 누구신지 많은 사람들이,특히 성경 지도자들도 몰랐습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바울을 귀신이 알아보았다는 것은 깊이 묵상할만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사 하나님을 섬기실 때 그는 이스라엘에게 주,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 유일한 주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심으로서 자신(아들)과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고 자기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다고 증거하는대로 성경을 믿고 연구한 율법 전문가들에게 본격적으로 거치는 돌(말씀), 부딪치는 돌(말씀)이 됩니다
이천년이 넘은 오늘날까지도 그들에게는 진행 중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며칠 전에 자신이 주요, 예루살렘의 왕이심을 거침없이 보여 주셨듯이 지금또 당신이 왜 주이면서도 다윗의 자손으로 왔는가를 시편110편 말씀으로 가르쳐주십니다
가장 중요하기에 직접 당신께서 당신을 계시해 주시는 주님의 마음이 아리게 느껴짐은 왜일까요?
주께서 권세 부귀 명예 외모의 찬란함을 입고 오셨더라면 다들 엎드려 경배하련만 그것은 외모를 보고 경배함이니 그가 일하시는 경륜의 깊이에 고개만 숙여질뿐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1)그리스도를 어찌 생각하느냐
2) 누구의 자손이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인 것은 밝혔지만 끝내 <그리스도관>은 밝히지 못합니다
그러니 율법자리 꿰차고 권위/명예/대접/존경/성공으로부터 늘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에게 성경이 주어지면 처음엔 갖고 싶은 부,성공,명예,지상적인 온갖 복만 보일 뿐 고난의 종,자기 부인,자기 십자가는 안보입니다
그러다 하나님 은혜로 정확한 <그리스도관>이 세워지면 성경을 봐도 <고난의 종된 형상>을 보며 어찌 이를 이룰 것인가 힘써 구하는 자가 됩니다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기만 하다면 너희는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주라 부른 건 어찌 할 생각이냐?
생각하면 예수께선 저들에게 무거운 돌 같은 숙제를 준 셈입니다
허나 저들이 성경을 깊이 상고하는 자들이라면 주 곧 유일한 한 분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죄와 질병과 약함을 친히 담당한 고난의 종으로 먼저 오셔야만 하는 자신들의 죄성에 눈을 떴을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이사야9:6
"그는 주 앞에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버림을 받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걱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더"이사야53:2~6
아버지!
열방을 한 방울의 물보다 더 훨씬 미세한 코로나균으로 다스리고 계심을 제가 보나이다
또한 열방이 주님의 피 한 방울에 능히 씻기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도 제가 믿나이다
아버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고난의 종들이 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지고 갈 때 우린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고 가신 그리스도의 슬픔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행여 질고를 받아 하나님께 벌을 받음이 마땅하다고 생각으로도 정죄치 않게 하옵소서.
그리 생각하는 저희들의 구제 불능한 율법적인 시각을 불쌍히 여기사 용서하시고 성령의 불로 소멸시켜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