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한20:29
위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나의 주!,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도마에게 주신 화답입니다
헬라어 원문 성경엔 도마의 이름를 먼저 다정하게 부르신 후 하신 말씀으로 결코 도마를 책망하거나 부끄럽게 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합니다
제가 이 본문을 묵상하려고 자판기로 두드리는 순간 심장이 뛰는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육안으로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의 근거를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환란과 기근과 전쟁과 질병과 흉악한 죄의 사슬에 묶여 있는 이 세상을 육안으로 보고 들으며 뼈가 상하도록 느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답답한 인생에게 보이지 않는 참 소망이요,위로요,기쁨이요,구원이신 부활의 주를 오직 믿음으로 만나 교제할 수 있다는 비죤을 더욱 더 견고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주를 다만 믿음의 눈으로 보는게 "복"이라 하시니 지금 여기서부터 주를 믿음으로서 누리게 되는 "복"에 집중하여 "보지 못하고 믿는 자"로 사는 것을 비죤으로 삼습니다.
주께서 위의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알아본다면 우린 충분히 왜 주께서 도마에게 위의 말씀으로 화답해 주셨을까? 원만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제자들과 삼 년 반을 함께 하시며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통해 당신의 주되심과 하나님되심을 말씀과 더불어 이미 여러번 증거해 주셨습니다.
이는 도마가 부활의 주를 만나기 전에도 얼마든지 "나의 주!,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챤스가 있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만일 그랬다면 제자들이 다시 사신 주를 보았다고 기쁘게 증거할 때 도마의 반응은 달랐을 것입니다.
<암 부활하고 말고,나는 너희들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봐서 믿는게 아니라 주께서 죽었다가 삼일 후에 다시 살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있었으니 삼일 후 부활하셨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다만 물증으로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너희들에게 나타나셨다니 정말 기쁘다>라는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이라고 하셨을까요? 그분께서는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충분한 물증들을 기사와 표적으로도 보여 주사 경험케하셨기 때문입니다.또한 영원한 믿음을 유발시킬 수 있는 영원한 진리를 주께서 친히 그 입을 열어 말씀하심으로 충분히 들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에서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베풀어 주셨는데도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증거로 또 표적을 요구하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과 기사를 구한다고 책망하신 후 요나의 표적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로보건대 믿음은 덮어 놓고 믿는게 아닙니다. 또한 덮어 놓고 믿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왜 믿어야 하는지 충분한 근거를 풍성하게 베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고할 수 있도록 성경을 펼쳐서 열어 놓고 조목 조목 풀어 주면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자칫 잘못하면 은사나 표적을 쫓는 자가 됩니다.
허나 성경 말씀을 통해 표적과 표적 안에 깃드인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표적이나 은사를 쫓아가는게 아니라 표적과 은사가 쫓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걸 알면 표적과 기사와 은사를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실로 진리와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좌로나 우로나 아무리 치우치려해도 그리 되지 않습니다 .고개를 좌로 돌리면 좌요,우로 돌리면 우이나 그렇다고 고개를 좌로,혹은 우로 돌린체 걸어갈 것입니까?
산상팔복 중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마태5:8)."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듣고 읽던 이 말씀이 막상 제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죄송하지만 사십대 중반부터 였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원인은 제 마음이 청결치 못하기 때문이라는 주님의 책망이 참으로 위로도 되지만 아픔도 되었습니다.
위로라 함은 제가 보지 못해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절 위해 헌신해주시되 십자가에서 당신 몸을 죽기까지 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아픔이라 함은 이렇게까지 절 위해 쏟아부어주신 하나님을 제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여 매초마다 항상 보지 못하고 어쩌다 보니 진실로 부끄러워서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 강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으로 탄생된 신약 교회의 터를 선지서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성취로 닦은 사도 베드로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저는 진실로 예수님의 못박힌 손도 창 깊이 찔린 옆구리도 보지 못했고 영광스러운 부활도 승천도 보지 못했으나 주를 사랑하고,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상태를 일컬어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의 완성에 이르는 것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은 증상이라 합니다.
곧 죽음의 증후군이 아닌 영생의 증후군인 사랑과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입니다. 때론 원색적인 표현이 보이지 않으나 현존하는 영생의 세계를 쉽게 이해시키기도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11:1~2
무엇을 바랍니까? 모든 사람들이 생기로 충만하여 약동하는 일상의 삶을 바랍니까?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눈물도 고통도 질병도 죄도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믿지만 저 세상에서 일어날 일이라고 믿습니까?
모든 교회들이 함께 질문하며 풀어내야 할 겁니다
그리스도는 아멘이십니다. 어떠한 눈물도 씻겨주시는 아멘이십니다. 어떠한 질병도 끝내 주시는 아멘이십니다.어떠한 고통도 멈추게 하시는 아멘이십니다. 어떠한 죄도 없이 하시는 아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호와 샴마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성된 새성전으로 에스겔이 환상 속에 본 새성전이십니다
거기 그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께서 지금 여기 그리스도로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로 계십니다.
믿는 자는 복이 있을지어다!
아버지!
아들로 인하여 제 안에 아들과 함께 오심을 감사드리며 제 골수와 관절 뼈 마디 마디와 생각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환영하고 환영합니다
이를 영원토록 입술로 고백케 하시고 믿도록 진리의 영으로 계시해 주시는 성령님께도 동일한 감사를 드리며 날마다 분초마다 환영하고 환영합니다.
아멘!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