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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객담

숨은 한국건축의 미,주두와 소로

작성자삼척동자|작성시간05.10.09|조회수202 목록 댓글 0

지붕의 처마는 비나 눈이 건물에 들이치지 않게하고 여름이면 그늘을, 겨울이면 햇빛을 최대한 집안으로 끌어 들일 수 있게 마련되어야 한다.

 

처마가 너무 치켜 올려진다든지 너무 숙여지게 되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공포는 지붕의 하중을 기둥에 골고루 분산 전달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처마의 내밀기를 조절하고 지붕과 기둥사이에 알맞는 공간을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길고 짧은 목부재를 가로 세로로 짜 올려서 마치 역삼각형 모양의 지렛대 받침 역할을 하게 하는 구조재이다.

 

이 공포가 기둥 위에만 짜 올려진 건물을 편의상 주심포식이라 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짜 올린 건물을 다포식이라고 부른다. 공포는 처음에는 단순한 구조재의 기능을 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장식적인 요소가 많이 첨가되어 한옥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경복궁 근정전 해체 복원 포작 광경

                                      -건축 규모에 따라 포작 규모가 큰 차이가 난다.


 


한옥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공포( 貢包, 工包)는 말 그대로 공포(恐怖)스러운 존재다.  건물마다 건축 양식마다 쓰이는 부재나 그 짜임 방식에 차이가 많아 이를 이해하고 시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에 쓰이는 부재의 종류에는 건축 양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두와 소로, 첨차, 살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부재로 공포를 짜 올리는 일을 '포작'이라고 말한다.

특히 포작을 이루는 부재중에서  '주두'와 '소로' 그리고  '첨차' 이 세 가지는 어떤 모양새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시대별 한옥 건축 양식을 구분 짓는데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첨차와 살미는 마치 '레고' 쌓기처럼 장방형의 나무토막을 가로와 세로로 교차해서 짜 올려지는 부재이다.

고대에는 첨차와 살미의 모양이 같았지만 후대에 와서 살미가 장식화 되면서 긴 날개 모양이 되기도 하고  소의 혓바닥 모양으로 되기도 했다. 날게 모양을 익공, 소 혀의 내려 트린 모양을 쇠서 그리고 위로 올라 간 모양을 앙서라고 한다.

 

정면에서 봐서 가로로 얹히는 것이 첨차이고 세로로 얹히는 것이 살미로 보면 된다.

이 때 첨차와 살미를 짜 올리면서 아래 위 전 후 좌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공포부재가 '주두'와 '소로'이다.

주심포 건물을 예로 든다면 주두는 기둥위에 올라 앉아 첨차와 살미를 연결하는 큰 연결고리이고  소로는 첨차와 살미 위에서 또 다른 첨차와 살미를 연결해 주는  작은 연결고리이다.

 

주두와 소로는 이름만 다를 뿐 그 생김새는 같다.

주두와 소로의 윗부분을 운두라고 하고 운두에 첨차나 살미를 끼우기 위해 파 낸 자리를  '갈'이라고 한다.

전 후 좌우 네방향에서  갈을 튼 것을 '사갈'튼다고 하고 양쪽 두 방향으로  갈을 튼 것을 '이갈' 튼다고 말한다.

 

 

              
      주두 @삼척동자                                                  소로 @삼척동자

      -굽이 오목하고 굽받침이 있다.                                                                                                                                                                                                

        

주두에 끼워지는 첨차와 살미를 제1제공이라하고 제1제공 위에 올라가는 첨차와 살미를 제2제공 그 위를 제3제공이라 한다. 처마를 길게 내 밀려면 첨차와 살미를 여러 겹 짜 올려서 내민 처마를 받게 한다. 제공이 많아질수록 지랫대 받침인 역삼각형의 윗변이 길어지게 되므로  긴 처마 내밀기가 가능해 진다.

 

처마가 너무  길게 내 밀게 되면  지붕의 안쪽 무게와 처마 쪽 무게가 균형이 맞지 않아 구조적으로 불안정해 질 우려가 있으므로 목수는 알맞은 처마 내밀기와 그에 따른 공포 제공의 규모를 정해야 한다.


5세기 6세기 , 고구려 초기와 중기 토총에서 기둥 위에 짜여진 주두와 소로의 모양이 나타나고 있고  백제와 신라의 석탑 그리고  불국사 석축 난간 기둥에서 주두의 모양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고래로 주두와 소로가 공포재로 쓰여 왔음이 확실하다.


주두와 소로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해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려 말 건축물로 현존하는 우리 나라 최고의 목조건축인 봉정사 극락전의 주두와 소로는 굽을 오목하게 깎아 낸 모양을 하고 있다.  이후 고려 말 조선초 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객사문의 주두와 소로의 굽도 원호모양을 하고 있지만 다른 점은 별도로 굽 받침도 가지고 있다.

후대의 대부분의 주심포 건물과 다포 건물의 주두와 소로 굽 단면은 직선으로 사절된 형식을 하고 있다.

 

굽 받침 없이 굽이 안쪽으로 둥글게 깎아 낸 형식의 주두와 소로는 통일신라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 된 양식으로 보고 있는데 봉정사 극락전 이외에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특수한 경우로 조선시대 건물인 장곡사 상대웅전에서 주두에 굽 받침을 쓴 예가 있고, 경천사지 10층 석탑에서 주두 굽이 곡선인 모양이 나타나고 있을 뿐인데 전자의 경우 소로는 주두와는 달리 사절된 굽을 쓰고 있어서 같은 건물에서는 주두와 소로가 같은 형식을 쓴다는 원칙에 맞지 않는 일종의 절충식 건물에 속하고 후자는 원나라 사람의 작품으로 보고 있어서 경우가 다른 건축물이다. 


일반 살림집에서는 주두를 쓰는 일은 드물었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서 해방 전 후로 소위 집장사들이 지은 한옥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 창방과 도리받침 장혀 사이에 바깥쪽으로 만  소로 모양을 잘라 붙인 집들이 있었는데 이런 소로를 쪽소로라고 했다. 이런 경우  소로는 공포재로 쓰이지 않고 장식재로 쓰인 예이다. 비용을 덜 들이고 집을 대갓집처럼 고급스럽게 보이기 위한 방도였을 것이다.  


작은 부재 하나를 더 썼느냐 아니냐에 따라 집의 격이 달라 보이는 요술을 부리는 게 한옥의 멋이 아닌가 한다.

 

 

                                   
                                  백제 재현단지 목탑 결구 모습@ 삼척동자

                                  -안으로 둥글게 굽은 굽과 굽받침을 두었다.

                                  -첨차와 살미의 모양이 같다.

                                  -창방과 장혀 사이에 인자대공 받침재를 쓰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나 볼 수 있다)

                                  -인자대공 받침재, 굽받침있는 주두 소로는  백제시대의건축 수법이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일본 나라의 법륭사 금당과 5층 목탑과 옥충주자에

                                    나타난 세부 양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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