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법성게

복습-법성게 (31차) 생사열반상공화

작성자일화|작성시간26.06.15|조회수31 목록 댓글 0

복습- 법성게 제30차 생사열반상공화 (生死涅槃常共和)

: 생사윤회, 열반해탈 항상 함께 조화롭네

 

생사열반상공화나 지난주 배웠던 초발심시변정각 이나 다 같은 말이다.

생사, 나고 죽는 것, 열반은 그걸 초월한다. 그런데 상공화다.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초발심시변정각 역시 깨달음이다.

 

생사는 윤회를 가리키며 열반은 이런 생사의 종식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을 무한히 되풀이 하는 윤회에서 해탈 하는 것이다.

, 생명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열반이다.

(삼계에서 사라지는 것, 결국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

열반은 산스끄리뜨어로 니르바나(nirvana)의 음사어로 훅! 불어서 끄는 작용

촛불을 훅 불면 꺼진다. 그 꺼지는 것, 즉 탐진치 불길이 꺼지는 것이다.

적멸(寂滅)이라고도 부른다. 생명의 세계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열반이다.

삼계 즉 욕계, 색계, 무색계에 대한 설명은 교재를 참조, 혹인 이미 정리된

자료를 찾아보면 여러번 발견 될 것이다. ^^

 

열반을 어떻게 나누는지 보자,

유여의열반 : 남아 의지할 것이 있는 열반이다. (육신이 남아 의지)

무여의열반 : 남아 의지할 것이 없는 열반이다.

그렇다면,

삼계에 있으면서 열반을 얻었다는 것은 뭐냐?

탐진치의 소멸이다. 이게 열반이다.

 

부처님은 출가후 6년의 수행을 통해 35세에 이루신 열반은 유여의열반이었고,

그 후 45년 동안 남아 의지할 육신을 이끌고 교화의 삶을 사시다가 80세에 사라쌍수 아래서 오른쪽 몸을 땅에 대고 누운 채 시현(示現)하신 열반은 무여의열반이었다.

무여의열반에 들면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이 모든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적멸에 드는 것이다. 굳이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객관의 시점에서는 이 세계에서 내가 사라지지만, 주관의 시점으로 말하면 내 앞에 나타난 이 세계가 사라진다.

 

부처님은 유여의열반을 이루신후 45년동안 객관의 시점에서는 3280종호를

그대로 갖추시고 행주좌와(行住坐臥)의 모습을 보이시고 교화의 말씀도 펼치신다. 무명에 물든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부처님 당신의 시점, 주관의 시점에서는 아무것도 없고,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신다.

말을 해도 말을 한 것이 아니고, 걸어가도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45년동안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한 걸음도 떼지 않으셨다.

유여의열반을 체득하여 무명이 사라졌기에 이 사라지고, 행이 사라졌기에 식()이 사라지며, 궁극적으로 세상 전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십이연기 환멸문의 가르침이다.

 

금강경에서는 공성을 얘기한다.

반야, 공성, 본래면목, 무득, 무설.. 부처님은 열반을 얻었나?

무득이다.’ 말씀을 하셨나? ‘ 무설이다.’

우리는 금방 이해가 안된다.

?

무상을 모르고(제상비상이면 즉견여래라 했다)

무주를 모르고(머무는 게 없다 우리는 물론 색성향미촉법에 머문다)

우리는 항상 어디에 머문다. 어디에? 보는데, 듣는데, 냄새 맡는데...

무주다.

무상, 무주를 알면 묘하게 있다고 했다. 묘유다 자유자재하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뭔가 얻은 게 있나?

뭔가 얻었다 하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

깨달음은 마음이 바뀐 것 뿐이다. 무소득이다. 얻은 바 없이 얻는 것이다.

어리석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것도 없는데 잃은 것이다.

부족한 것 없고, 항상 다 가지고 있으면서 잃은 것처럼 허전한 것이다.

뭔가 자꾸 얻으려고 하는 이게 중생이다.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나!

따로 있지 않다. 형상으로 자꾸 찾고 있다.

자기가 부처인 줄 꿈에도 모르고 있으니!!

얻은 거 하나 없이 다 얻은게 부처다. 부처님의 설법은 손가락이다.

땟목이다. 확실히 알아 놓으시라!!

 

수없이 많은 얘기를 했던

열대과일 “파파야을 떠 올려보라.

이 열대과일의 맛에 대한 설명 열심히 했는데, 여러분은 이 파파야의 맛을 알겠는가?

마르고 닿도록 설명해도 모르다. ?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다. 그 진리는 설명으로 못한다.

 

그런데 아무리 말을 해도 말한바가 없다. 말을 하지 마라! 는 것이 아니다.

분별없이 말하면 말한바가 없다. 중도로 얘기하면 말한 바없다.

진리의 세계에서 길고 짧은 것이 없듯이....

분별 없으며 말한 바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말하지 마라! 하니 묵언한다.

말은 내 생각을 표현한다. 내 생각은 내 식으로 본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본 것이 아니다.

자기식으로 보고, 느끼고 한 것이다.

내 생각은 뭐냐?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한 것이다

이게 . ‘오온말이다

그러니 자꾸 변한다. 오온,12,18.. 이게

내가 본 이걸 표현하려니 말로 해야 한다.

 

? 묵언 하라 하겠나!

내 생각을 말로 자꾸하면 경계에 자꾸 뜨달리니까 더 끄달리게 되고 그런다.

자꾸 자기 경계에 끄달리는 것을 하지 않으려면 조견해라’ ‘돌이키라

망상을 말로 표현하지 마라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묵언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알겠나!!

 

그 원리를 이해를 해야 묵언에 대한 원리를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래서 공부 하라는 것이다. 어려운 얘기 아니다.

조견오온개공하라!

돌이키면 극락이고 끄달리면 고통이다.

제상비상, 색즉시공이면 끄달리지 않는다.

 

마음은 대상따라 일어난다고 했다.

대상이 공하면 마음도 공하다.

경계가 공한 줄 모르면 온갖게 다 끄달린다.

법공이면 심적이다

 

자,

윤회와 열반이 전혀 다르지 않은 이유는 윤회든 열반이든 그실체가 하기 때문이다.

윤회의 세계, 우리가 체험하는 현상세계가 원래 열반에 들어 있다.

그 어떤 번뇌의 개입도 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법들은 본질적으로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용납하지 않고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때문이다.

수많은 법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윤회의 세계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윤회의 세계가 그대로 열반의 세계인 것이다.

또 많은 예를 들었던 꿈의 비유를 다시 한번 기억해 보자!

꿈속에서는 내가 그냥 꿈속에서처럼 자기인줄 알고 살아간다.

그 꿈은 내가 여태까지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다시,

믿음은 신심이다. 믿음이 공 지혜다. 지혜가 없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지혜가 생긴 만큼 믿음이 생긴다.

불교의 지혜는 내가 수행한 만큼 밝아지고 믿음이 생긴다.

산다, 죽는다. 인연따라 일어났다 그러나 하나뿐이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온 세계가 맑아지고 마음이 혼탁해지면 계속 혼탁하다.

 

그래서 윤회의 세계가 그대로 열반의 세계인 것이다.

열반이 언어도단이고, 불가사의하듯이 생사윤회의 세계 역시 말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끊어져 있고 우리의 생각을 붙일 수가 없다.

생사윤회, 열반해탈 항상 함께 조화롭다.

생사열반상공화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