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편 28편 (구약 821P)
2016.12.7(수) / 제목 : 두 개의 마음을 품고, 하나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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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악인들의 행태에 분노하는 시인의 간절한 절규가 나옵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침묵하시면 죽은 자와 같은 상태가 될 것으로 염려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는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받지 못하는 자도 죽은 자와 같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가진 위험성입니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많은 종교들에서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응답받았다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나라 간에 전쟁을 벌일 때마다 신의 이름으로, 혹은 신의 뜻으로 일을 벌입니다. 참으로 편안하게 기도하고 응답받습니다.
신의 고민이 없는 기도는 기도자와 기도의 대상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기도는 거래가 아닙니다. 기도는 산과 들, 골짜기가 있는 자연과도 같습니다. 기도는 쉽게 할 수 있지만 기도에 대한 확신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소위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은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시인이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만 쉽게 응답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쉽게 응답되었다면 굳이 부르짖는다는 표현을 써가면서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치열한 기도를 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는 침상에서, 혹은 밥상에서 편안하게 드릴 때가 있고, 차가운 겨울 산에 올라가서 치열하게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무덤에 내려갈 때까지 응답하지 않을 자유도 그 분에게는 있습니다. 기도의 산맥을 경험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시인은 왜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3절입니다.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 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시인이 목청을 높여서 기도하는 이유는 악인들의 행태 때문입니다. 그들은 악마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 천사의 얼굴로 다가오는 사람들입니다. 악인들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악마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입니다. 즉 드러난 것과 감추어진 것이 철저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악인들의 말은 비단결처럼 미끄럽지만 행동은 거친 사포처럼 타인에게 상처를 줍니다.
성도여러분! 악인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괴물이 아닙니다. 겸손한 척 하지만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온유한 척 하지만 그 안에는 폭동이 있고, 칼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거짓말쟁이들입니다.
페르시아 조로아스터 경전에 나타난 기도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여섯가지 참회
내가 생각해야만 하는데도 생각하지 않은 것과
말해야만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 행해야만 하는데도 행하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생각한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말한 것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행하 것,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소서
여러분은 이것이 기도문으로 들리십니까? 저는 기도가 아니라 뻔뻔한 책임회피로 들립니다. 죄를 짓고, 거짓말을 하고, 위증을 하고 나중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무슨 기도입니까?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행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하지 않은 것. 이것은 기도문이 아닙니다. 시인이 괴로워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시인은 어떡하든지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말과 행동에 일치를 보이려고 바둥거리는데 악인들은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미안하다고 하고, 너무 쉽게 사과합니다. 이러니까 시인이 화가 나고 부르짖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주님께서는 악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주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태 7:15-20)
악인은 이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납니다. 마치 할머니의 빨간 망토를 입고 손주를 찾아간 늑대처럼, 그렇게 위장하고 다가옵니다.
악인이 양의 탈을 쓰고 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양들을 노략질하고 잡아먹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하는 부류가 종교지도자들이었고, 위정자들입니다.
선지서를 보면 곳곳에 이런 이리들이 나타납니다. 백성들에게 평안을 외치면서 전쟁을 준비하고, 화평을 말하지만 칼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드러난 열매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통일은 대박을 외치면서 통일을 방해합니다.
성도들에게 축복을 말하지만 자신의 배만 위하는 종교인들입니다. 직원들의 복지를 말하면서 자신의 배만 채우는 기업인들입니다. 가정의 화목을 말하면서 외도를 일삼는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척 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그런 사람들이 시인으로 하여금 부르짖게 만드는 악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두 개의 마음을 품고, 일관된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을 본받아서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의 행동으로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