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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보기 연습 : 입문 9, 10(完)

작성자고요2| 작성시간17.10.29| 조회수171|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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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은하의 돛 작성시간17.10.31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하는 것을 사띠라고 하고요. 우리가 드러난 법을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 위해서 즉 드러난 법 앞에 깨어있기 위해서는, 불법에 대한 신심과 그 신심을 받쳐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사띠란.. '신심과 지혜를 바탕으로' '지금 드러난 법'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 되겠죠
    그러니까 고요2님이 사띠의 정의를 [선함과 유익함을 향하고 기억하는 마음의 바탕과 함께하는 정신차림] 이라고 하셨는데요. 여기서 선함과 유익함을 향하고 기억하는 마음은 신심과 지혜에 해당하는 것이구요. 정신차림이란 그러한 신심과 지혜로 드러난 법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한다 라는 뜻이 됩니다.
  • 작성자 은하의 돛 작성시간17.10.31 사띠가 바로 알아차림(있는 그대로 봄, 정신차림 등)이라구요. 그러니까요. 사띠를 확립하고 그 후에 신념처 수행을 한다는 말은 이상한 말이 되는 거예요.
    [선삼과 유익함으로의 향함]은 바른 사띠를 하기 위한 조건인 거예요.

    우리가요 바른 사띠(알아차림)를 하기 위해서는요.. 처음에 둘이 대화했던 것처럼 법에 대한 얼마간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법에 대한 이해는 또 그 이해만큼의 신심을 가져다 줘요. 이해와 신심은 우리를 당연히 선함과 유익함으로 향하게 하고 그것을 기억하게 할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러한 바탕에서 이제 부처님이 제시하신 바와 같이 사띠(알아차림, 호흡법 등)를 해보자는거예요.

  • 작성자 은하의 돛 작성시간17.10.31 사띠라는 단어 갖고 길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구요. 그런 단어에 대한 논쟁이 호흡연습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호흡연습을 하려면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목표를 미리 정해야 한다고 알아요.
    만일 신념처에 대한 마음챙김을 하겠다고 정한다면.. 우리의 감각기관을 사띠하겠다는 것이 되잖아요. '안이비설신' 이 다섯가지의 감각기관중 하나를 정해 사띠하겠다는 말이되죠.
    혹은 오온에 대한 마음챙김을 하겠다고 정한다면..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중 그 어떤 것을 정하여 사띠하겠다는 것이 되겠지요.이렇게 하나의 방향을 잡고 그것에 대한 확실한 알아차림을 목표를 세워 사띠를 해야만이 바른 사띠가 되는 거죠.
  • 작성자 은하의 돛 작성시간17.10.31 고요2님의 글에 딴지걸 마음은 전혀 없구요. 그냥 궁금해서 질문했던 것 뿐이고요.
    콧구멍 주위의 호흡의 들고 남에 집중하였다면 '안이비설신'중 '신' 즉 '감촉'에 대한 알아차림은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질문했었구요. 그것을 알아차림 했다면 '연기'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 작성자 은하의 돛 작성시간17.10.31 마지막 댓글들을 지우셨네요. 읽고 있노라니 서로 소통이 잘 안되고 있구나 싶어 그만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마침 댓글도 지우셨으니 제가 더 이상 뭔가를 말해야할 필요는 없는건데요. 한가지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고요2님께서 [신촉, 감촉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건 출가자등 수행이 깊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글을 적으셨었죠?
    그에 대해서는 마지마니까야 분석 품에서 여섯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을 올려놓았으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보시면 [촉각과 감촉을 경험하고] 등 촉각, 감촉, 인식되는 감촉이라는 표현들이 나와요.
  • 작성자 은하의 돛 작성시간17.10.31 호흡연습 입문하시는데 들숨과 날숨을 콧구멍 주위에 집중을 하여 본다고 하신 것 같은데요... 콧구멍 주위에 집중하여 본 것이 뭔가요? 바로 촉감, 감촉이예요. 이건 출가하여 특별히 수행을하는 수행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다 경험되는 사실이예요.
    이와 같은데 [신촉 촉감 등을 나는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요?
  • 작성자 은하의 돛 작성시간17.10.31 그리고 제가 '연기' 운운한 것은요... 오늘 올려놓은 니까야에서 보면 이런 말이 나오지요? [여섯 내적 감역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여섯 외적 감역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여섯 의식의 무리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 등등 이하 생략]
    여기서 여섯 내적 감역은요.. 반드시 여섯 외적 감역에 조건지어질 때 알려지는거예요. 내적 감역은 외적 감역과 연기하기에 드러난다는 뜻이되죠. 그 유명한 경구인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인 거죠. <내적감역이 있으므로 외적감역이 있고...>
    일체의 드러남은 조건지어짐 즉 연기에 의한 것이거든요. 이것이 바로 제가 호흡연습으로 알아차림한 그 첫번째 것이거든요
  • 작성자 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11.01 어떤 부분들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져서 서로를 설득할 수 없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댓글을 썼다가 지웠습니다. 또 그 댓글에는 신념처 앞부분에 대한 제 견해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그릇된 것을 들려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이 나의 견해를 지적하면서, 나는 바르다고 생각하는데 남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하니,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나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좋다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댓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작성자 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11.01 1. 연기는 이렇지 않을까요?
    * 연기는 늙음과 죽음을 철저히 알아야 하고, 태어남을 철저히 아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중생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괴로움들을 철저히 아는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연기의 정형구가 나오는 경전을 찾아보면, 그 정형구 다음에 어떤 것이 그 정형구의 뜻인지 부처님께서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알려주시는 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M137에는 연기의 정형구가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11.01 2. ‘호흡이 남기는 감촉을 잡는다’에서
    * 저는 호흡이 남기는 감촉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럼 이렇게 물을 수 있겠습니다. : ‘몸-감촉’을 조건으로 ‘신식(身識)’이 생기는데, 호흡이 남기는 감촉을 모르고서 어떻게 그 호흡이 긴지 짧은지를 알 수 있습니까?
    *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 눈이 나쁜 사람은 저것이 나무인지 바위인지는 잘 안보여서 모르지만, 저것이 소리, 냄새, 맛, 감촉은 아니고 뭉뚱그려 어떤 모양이 있는 것이라고 압니다.

    * 그래서 저는, 부처님께서 신념처 앞부분에서 ①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②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
  • 작성자 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11.01 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고 가르쳐 주신 대목에, 저의 생각을 적용해서 연습해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왜냐하면 콧구멍에서 호흡이 남기는 감촉을 못 느끼는 사람은 배의 불룩거림이나 숨소리 등으로 호흡의 길고 짧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제가 감촉을 못 느낀다고 한 것은, 콧구멍에서 호흡이 남기는 감촉을 못 느낀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점을 제가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아서 다른 분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
    * 저의 이런 이해와 적용은 틀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으며 이런 견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 작성자 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11.01 (다음은 증명되지 않았고, 제가 잘못하는지도 모르니까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방법은 나중에 틀렸다고 생각되면 버려야하기 때문입니다.)
    3. 제가 한번 이해한 방식의 신념처 앞부분 수행
    * 호흡이 남기는 감촉을 못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 그런 그가 신념처 수행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합니다.
    * 그러면 ‘앉는다’ ‘고요하다’라는 말이 갖는 마음 상태가 됩니다. 즉 부처님 가르침이 의미하는 마음 상태로 지향되어 일상의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 상태가 되어 갑니다.
    * 즉 마노(意)-법(法), 의식(意識), 셋의 화합 촉, 수(受)가 진행되었고, 이 수(受)에 대한 앎을 가진 마음(心)이 되었고, 이 마음
  • 작성자 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11.01 은 특별합니다.
    * 즉 이 마음(心)은 안정되었고 또렷하고 준비가 되었습니다.
    * 그러면 그에게 자연히 호흡이 드러납니다. 그에게는 배의 불룩거림이나 숨소리로 호흡이 드러납니다.
    * 그리고 이 배의 불룩거림이나 숨소리로 호흡이 긴지 짧은지를 압니다. 그러나 배의 불룩거림이나 숨소리가 호흡의 길고 짧음을 보는 것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 그렇게 신념처 앞 부분의 ①과 ②의 과정을 합니다. 숨이 긴지 짧은지를 알도록 수행합니다.
    * 그러면 어느 순간 숨소리도 가라앉고 자신의 손이 없는 것 같고 자신의 발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몸이 어디 있지?’ 해야만 비로소 ‘아, 여기 있네’ 하게 됩니다.
  • 작성자 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11.01 * 그때(몸이 어디 있는지 모를 때) 잘못 될 수 있으니, 그릇된 방향으로 갈 수 있으니, 다시 손과 발을 찾아서 ③온 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고 내쉽니다.
    * 아까부터 숨소리는 가라앉았습니다. 숨소리로 호흡의 길고 짧음을 이어본 경우라면 어떻게 합니까? 이 부분은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추측하자면 그는 여기 ④신행을 고요히 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는 이 단계에서 혹시 호흡이 주는 감촉을 알고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는 몸과 관련된 것은 모두 가라앉았고 외부의 공기 알갱이가 있다면 그것이 코로 들어오면서 남기는 감촉만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 작성자 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11.01 * 수행을 잘 하시는 분들은 바로 호흡이 남기는 감촉을 붙잡아 가르쳐주시는 대로 수행을 잘 하실 것입니다.
    * 그러나 저는 콧구멍에서 호흡이 남기는 감촉을 못 느끼기 때문에 대념처 경의 신념처에서 제시해 준 방법에 어긋나지 않게 제가 이해한 방식으로 신념처를 연습하고자 합니다.
    (이상은 제가 한번 이해한 것으로서 검증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위험하니, 그냥 안 읽으신 것으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참고로, 몸의 부위 관찰이나 부정관을 닦을 때 그냥 부정관을 닦으면 피곤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호흡과 관련하여 사띠가 생겨나서 확립된 경우라면 부정관을 닦아도 위험하지 않고 잘 닦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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