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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저의 주장을 좀 바꾸겠습니다

작성자고요2|작성시간17.11.11|조회수208 목록 댓글 21

잠이 깨어 일어나 앉았습니다. 며칠 동안 내가 주장했던 말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 기회에 좀 확실하게 알자는 마음이 일어나서 그 대목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해당 경전의 해설 부분과 인터넷의 모()카페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주로 연기( 및 연기의 정형구)와 육내입처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

 

 

연기와 관련하여

* 연기라는 말이 직접 쓰이는 곳 : S12:1, S12:2, S12:20, S12:37, S12:41, S12:60, S12:61, S12:62

 

* 연기의 정형구가 나타나는 곳 : S12:21, S12:22, S12:37, S12:41, S12:49, S12:61, S12:62 + (S55:28, A10:92, M38, S12:49)


* 연기, 연기의 정형구, 십이연기의 생성-소멸의 세 가지를 모두 갖춘 경전 : S12:37, S12:41, S12:61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이 제 견해를 유지 또는 수정 또는 페기합니다. (제 공부가 더 진행되면 또 바뀔 수도 있습니다.)

1. 연기의 범위

* 이전 견해 : 저는 연기를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나는 것만을 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지금의 이해 : 연기는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나는 것과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하는 것을 다 말씀하셨구나!’로 바뀌었습니다.


2. 연기의 정형구에서 말하는 이것저것의 범위

* 이전 견해 : 무명 명색 육입 - 노사, 수비고우뇌

* 지금의 이해 : 이전 견해 + (경전에서 배우다가 다른 항목이 나오면 추가하겠습니다.)

 

3. 연기의 정형구의 해석 방법

* 이전 견해 : ‘있다-일어난다’, ‘없다-소멸한다에서 있다와 일어난다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지금의 이해 : 제게는 지금도 이 두 개가 여기서 특별한 뜻이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전처럼 (도닦음 경(S12:3) 등의 가르침을 사유하면서)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육내입처와 관련하여

4. <‘안과 색을 조건으로 안식이 일어난다.’ 는 연기이다>에 대하여

* 이전 견해 : 연기가 아니다.

* 며칠 전에 바뀐 견해 : 연기이다.

* 지금의 이해 : 앞의 두 가지 경우의 견해를 버리고 지금부터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이 부분는 분수를 넘어 말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5. <안과 색은 서로 연기된 것이다.>에 대하여

* 이전 견해 : 아니다.

* 지금의 이해 : 저는 이전 견해를 버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부분에서 제 분수를 넘어 말하지 않겠습니다.

 

 

참고 1. 연기의 정형구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참고 2 도닦음 경(S12:3)

10.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있을 때 촉()이 있으며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촉이 있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보살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통해서(여리작의(如理作意)하여) 마침내 육입(六入)이 있을 때 촉이 있으며 육입을 조건으로 하여 촉이 있다라고 지혜로써 관통하였다.”

23.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을 때 촉()이 없으며 무엇이 소멸할 때 촉이 소멸하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보살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통해서(여리작의(如理作意)하여) 마침내 육입(六入)이 없을 때 촉이 없으며 육입이 소멸하기 때문에 촉이 소멸한다라고 지혜로써 관통하였다.”

 

참고 3 - 유심히 들음 경(S35:113)의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3. “눈과 형상을 조건으로 안식(眼識)이 있다. 이 셋의 화합이 촉()이다. 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가, 취를 조건으로 유가, 유를 조건으로 생이, 생을 조건으로 노사우비고우뇌가 생긴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한다. ...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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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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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방문객 | 작성시간 17.11.12  실천적으로요. 글자주의에서 그러한 괴상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알아요. '수행도 괴로움이면, 수행할 까닭이 뭔가'와 같은 의문이 생기는 건데요. 그래서 수행과 그 성취는, 조건지어졌더라도(형성된 거라도), 괴로움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실천적으로 차이가 나지도 않아요. '모든 조건지어진 것 즉 연기에 따르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주장하는 쪽도 수행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여러 경전에서는 오히려, 글자주의에서 핵심으로 강조하는 색계4선조차 형성된 것이며 떠나야 함을 천명합니다. 열반만 행복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는 괴로움일 뿐이지만, 열반이 아니면서 오래도록 유익한 행복도 참 많습니다.
  • 작성자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1.12 예. 알겠습니다. 제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 번째 지적하신 것
    * 앞으로는 때와 장소를 잘 가리겠습니다.

    - 예. 사성제와 연기는 다르지만 모두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이라고 봅니다.

    2. 두 번째 지적하신 것
    * 저는 지금까지 방문객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그렇게 행동해왔습니다
    * 그 이유는 경전에서 가르쳐 주시는 표현 그대로 사용해도 뜻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왜 경전에서 가르쳐주시는 것과는 다르게 표현하여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가? 였습니다.
    * 저는, 사람들이 경전에 없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면 법들이 서로 섞여서 가르침이 오래 전승되지 못하고 쇠퇴할 것이라고생각했습니다이상입니다
  • 작성자방문객 | 작성시간 17.11.12  '사성제는 연기를 풀어 놓은 것' 내지 '연기가 중도'는 맞는 말입니다. 오히려 글자주의처럼 하면, 가르침이 오래 전승되지 못하고 쇠퇴합니다. 아함부의 아리타경(빨리어 경전의 알라가뚜빠마경)에서 "법을 그릇되게 잡으면 오히려 해롭다"는 취지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고요2님과 같은 글자주의'의 주장대로라면, 부처님께서' 연기의 정형구와 12연기'만 말한 이에게는, 오직 정견만 이야기한게 됩니다. 그러한 주장은, 결국 부처님께서 그 사람에게는 부족하게 가르쳐 준 게 됩니다. 하지만 12연기등 연기를 알면, 인과의 준엄함과 무서움도 알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과를 아는 이는, 8정도도 압니다.
  • 작성자방문객 | 작성시간 17.11.12 ===
     '괴로움의 원인은 끌어모음(행위 즉 업)'이지만, 끌어모음을 조건으로 괴로움이 있지만...그러한 측면은 연기와 무관하다? 있음의 측면을 제시하는 연기의 정형구와 그 예시로 등장한 12연기에서, "이처럼 모든 괴로움이 있다 내지는 발생한다"고 서술되어 있는데도? 그런데 '괴로움의 원인은 끌어모음(행위 즉 업)'이라는 말을 연기로 이해하면, 그르다?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 연기와 사성제는 따로다?
     도대체 누가 이해를 그르치고, 누가 부처님 가르침을 왜곡해 쇠퇴시키는 겁니까? 우기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보전하는 겁니까? 그렇게 조각조각 내면, 법의 이해를 그르칩니다. 분란만 만들 뿐더러, 큰 장애가 될 겁니다.
  • 작성자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1.12 * 저는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 오늘부터 저는 지금까지 해왔던 저의 이 행위 – 이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던 일 – 를 그만 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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