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놈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리로 인하여 그 이름이 있게 되었네.
듣는 놈을 돌이켜 소리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놈을 무엇이라 이름하랴!
하나의 근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여섯 개의 근이 해탈을 이루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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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듣는 놈을 돌이켜...) -------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지 궁금합니다.
( 혹 아래 답글의''"귀로 소리를 들을 때"의 사례로 추정할 여지는 있습니다. " 이 말씀과도 상관이 있는지요?)
산냐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산냐가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무엇이 있다고 일상적으로 산냐를 일으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Re:Re:사실 중심의 체험 서술... 그리고... )
이 글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이 글을 보니 윗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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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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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 08.07.01 [듣는 놈을 돌이켜...],,, 부정확한 좋지 않은 표현입니다. 그나마 "듣는 무엇을 돌이켜"라는 표현이, 혼동을 피할 수 있어요. "듣는 놈"이라고 하면, "참 나"등으로 산냐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듣는 무엇"은, 결국 "소리를 감지하는 무엇"입니다. 그런데 "소리의 감지(이식)"와 "무엇"이 분리되어 있죠? 그러면 "무엇"이, 아래 본글의 마나식카라에 상응하기에...역시 기법과 관련하여, 혼동이 일어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소리를 듣는다'는 것에도, 이미 감각기관인 마음이 개입할 수 밖에 없거든요. 기법과 관련해 혼동이 없으려면,,,[소리를 감지함에...소리가 아닌, "소리의 감지(식온)"를 붙잡아라]고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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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 08.07.01 식온은 상이 없습니다. 상이 없다...산냐가 없다...결국 소멸입니다. 식온을 붙잡으면, 그 경계가 (선정의 마지막 경계인) 멸진정입니다. 그래서 "(멸진정으로 나아가는) 삼매수행으로 심해탈을 이룬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멸진정은, 오온 중 식온에 대한 삼매에 준하는 알아차림이라고 말할 수도 있죠? "삼매에서의 사띠" 즉 "삼매에서의 알아차림"을...삼마빠띠라고 이름했었죠? 그래서 "니로다 삼마빠띠"라 이름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기법에 따라 수행함에 있어서는...아래 아래 본글 [이근원통]의 꼬리말에서 적었듯, 소리를 알아차림하다 우연히 들어가길 바라거나...(특히 간화선에서의) 화두로 삼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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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 08.07.01 물론 소리를 집중의 보조수단으로 하여, 삼매수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Re:Re:사실 중심의 체험 서술... 그리고...]에서 옮긴 내용... ["있는 그대로" 본다]고 하여, "있는 그대로"를 보는 어떤 주체가 있지는 않습니다. '견성'이라 이름한다 하여, 자성을 보는 주체가 있지는 않습니다. 선정의 경계에서...산냐가 있을 때, 주체라 이름할 감지작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산냐가 없을 때, 주체라 이름할 감지작용도 없습니다. "견성"이란..."자성이라 이름할 무엇"은 물론, "자성을 보는 무엇" 즉 "자성의 감지"가 없는 경계가 알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본성 혹은 자성에 계합"도 마찬가지예요. 계합이 없을 때, 즉 소멸일 때...계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