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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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문객 작성시간08.06.20 저는 처음...부처님께서 6년 남짓 수행하셨으니, 저도 넉넉 잡아 6년 정도 수행하면 충분할 줄 알았습니다. 더구나 요가기법이 아주 빨리 붙었습니다. 요가에서는...뭐...거으 일사천리...덕분에 여러가지 요가기법을 행할 수 있었죠. 이런 저런 체험을 잡다하게 하다 보니, 반야심경의 내용은 나름 대로 파악이 되더군요. 그런데도 뭔가 미진하더라구요... 그래서 상좌불교에 눈을 돌리게 된 겁니다.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사리푸타 존자는, 당대의 지식인이자 빼어난 요가행자였음에도,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다시 수행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상좌불교를 건드릴 차례라고 판단한 겁니다. 밀고 나감에 있어, 제가 좀 무자게 단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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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문객 작성시간08.06.20 "반야심경을 알기 위해, 먼저 사리푸타 존자의 수준이 되어야겠다"는 처음의 다짐 대로, 밀고 나간 셈입니다. 그런데..."사띠"라는게...참...선명한 측면에 있어서는, 삼매보다 무자게 떨어지는 편이거든요. 뭔 표가 잘 나지 않다 보니..."이게 뭔가? 이래 가지고 뭘 알게 되기나 하나?", 이런 의심이 줄기차게 일어났습니다. 의심이 일어나면, 힘이 빠지고 수행에 정열을 쏟기가 어렵죠. 그런데 걍 포기하자니, 뭔가 자존심 같은게 무지 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던 중 "좋다. 화끈하게...불법으로 나를 세뇌시키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를 세뇌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없다. 무조건 불법 대로 판단하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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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문객 작성시간08.06.21 무슨 일을 접하면...무조건 조건을 살피고, 오온 중 무엇인지 살피고, 인과를 살피고... 등등... 어떻게 보면, 그게 제가 처음 일으킨 신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을 불법으로 세뇌시키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는, 신심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 식으로 생활하다 보니...뚝뚝 떨어져 있던 지식이나 판단들이, 점차 나름의 체계들을 이루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화엄의 기초가 성립하기 시작했던거죠. 처음에는 이치를 이해하지만, 점차 이치를 발견합니다. 어느 정도 확고한 신심과 함께 한다면...신심이 확고한 만큼 그렇습니다. 이치를 발견한다...본다...확연하게 안다... 신심과 서원을 알게 되었을 때, 대승의 불자일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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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문객 작성시간08.06.21 선불교에 "평상심이 도"라는 표현이 있죠? 불성, 색즉시공 내지 공즉시색, 일심 혹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등등...얼마든지 그럴싸한 교학을 가져다 붙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오묘한 뜻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특별함에 대한 갈망을 놓는 겁니다. 달라붙어 위로 올려 놓은 이것이, 저것과 평등할 수 있도록...연기의 이치에 따라, 내려 놓는 것이죠. 특별하다면, 형성을 여읠 수 없습니다. 달라붙어야만 특별해 집니다. 불법조차 '방편이라는 방편'의 이치에 따라 내려 놓는 마당에, 알량한 성취야 말할 바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방편이라는 방편'을 설하심에, "법조차 버려야 하거늘 비법임에야..."라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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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문객 작성시간08.06.21 이전에 적은 바 있는데...'비구'의 뜻이, '거지'입니다. 성직자를 거지라고 이름하는 유일한 종교가 불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재가신도라고 함은, 거지가 아니라는 뜻이죠. 모든 이가 거지일 수는 없어요. 모든 이가 거지가 되면, 거지 즉 비구도 있을 수 없거든요. 불법을 보존할 가장 일차적 의무를 부담하는 전문집단이 존립할 수 없는 거죠. 그러면 불법이 보존되기 어렵죠... 저는 비록 거지는 아니지만, 거지가 아니기에 저의 알량한 성취로부터 보다 자유롭습니다. 수행의 관점에서...재물 보다 수행의 성취를, 소유하려는 작용이 더 위험할 겁니다. "앎, 선명하게 이치를 본다"는, "서원을 담은 확고한 신심"의 과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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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문객 작성시간08.06.21 어떤 관점에서...'스스로를 세뇌시키는 것'은 '광신'의 다른 말 아니겠습니까?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작업이 유쾌하지는 않죠. 저도 처음에 그랬거든요. 그런데 저같은 경우...모르고 지나간다는 사실과 함께 하는 유쾌하지 않음이, 스스로를 세뇌시킨다는 사실과 함께 하는 유쾌하지 않음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죠.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제 자신을 세뇌시켜서 알게 된 것이, 어떻게 저의 성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저를 불법으로 세뇌시켰을 뿐인데 말입니다. 화엄의 이해로 부처님께 철저하게 승복한 후...'스스로를 세뇌시켰다'는 사실에서 일어나는 별 다른 유쾌하지 않음은 없습니다. 불자가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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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잊지않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6.21 [특별함에 대한 갈망을 놓는 겁니다] .... 참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스스로 명분을 잃는 것이라는 겠지요. 시작이 그것과 함께 했으니까요. 그 기저에는 타인을 의식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시작이 요란하고, 그 신념에 맞춰 삶의 형태를 결정하였으니, 어느 시점에 어떤 식으로든 '어때? 내 선택의 결과가........'......' 하고 내보이고 싶겠죠. 본말이 전도되는 이 어처구니 없음에 참으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말씀들이 예리하고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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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문객 작성시간08.06.21 돌아가기에는...이미 너무 먼 길을 왔다는 사실을...문득 발견할 때...그것을 조건으로, 여러 사실들이 일어납니다. 뭐...하루 24시간 중 그러한 조건이 유지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만...그것을 조건으로 형성된 경향성은, 상당히 지속적일 수 있습니다. 후회, 오기, 조급함, 분노, 슬픔등...의도와 결합한 것들... 잠이 든 아이가 겪을 험난한 인생을 예견하며 측은해 하듯, 험난한 인생을 버텨 왔고 버틸 자신도 측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 스미는 슬픔...그러한 슬픔은 후회, 오기, 조급함, 분노등을 평안으로 인도합니다. 그러한 슬픔에 침잠하는 것은, 살아 남은 것들의 평안입니다. 슬픔도 화두일 수 있죠...